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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은 절 한 채, 아니 지금도 잘 늙어가고 있는 절 한 채가 있다. 불명산화암사(佛明山花巖寺)다. 화암사는 전북 완주군 불명산 깊은 산속에 있다. 화암사중창기에 의하면 "비록 나무하는 아이, 사냥하는 남정네라고 할지라도 도달하기 어렵다. 골짜기 어귀에 바위벼랑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에 이른다"고 한 화암사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화암사는 고요하고 깊은 성처럼 잠겨있다
▲ 화암사 정경 돌담으로 둘러싸인 화암사는 고요하고 깊은 성처럼 잠겨있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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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곳'에 자리한 절이다. 이런 화암사를 찾은 건 일요일(4일) 오후.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간 모양이다. 화암사 앞마을격인 구재마을 시냇물이 오늘은 성을 잔뜩 내며 매섭게 흐르고 있다.

화암사 가는 길

표시목이 예뻐서 표시대로 누구나 가고 싶어진다
▲ ‘화암사’ 표시목 표시목이 예뻐서 표시대로 누구나 가고 싶어진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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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마을을 지나 논과 밭, 띄엄띄엄 있는 농가 몇 채를 지나면 주차장에 닿는다. 여기부터는 모두 걸어서 올라야 한다. 왼쪽으로 찻길이 나 있지만 누구 하나 그 길로 가려하지 않는다. 주저 없이 예쁜 '화암사' 표시목이 가리키는 숲길로 발길을 옮긴다. 

비가 단단히 오긴 온 모양이다. 흙길이 촉촉하고 계곡물소리도 요란하다. 얼마 가지 않아 물길이 길을 막는다. 사람이 만든 길이라는 것이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렸을 뿐 원래 자연이 주인이라는 사실을 오늘에야 깨닫게 된다. 사람길은 물에 묻혀 물길과 사람길이 따로 없다. 오늘은 사람이 아니라 물이 주인인 모양이다.

물길이 사람길이요, 사람길이 물길이다
▲ 화암사 가는 길 물길이 사람길이요, 사람길이 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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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산은 높지는 않으나 깊다. 사방을 둘러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제멋대로 자란 나무는 한 뼘 하늘마저 가리고 있고 옆에는 바위벼랑뿐이다. 오가는 사람은 드물고 적막하여 심산유곡에 온 느낌이다. 길 잃은 물이 여기저기 폭포수 되어 떨어지니 오늘 내로 절에는 도착할 수 있으려나, 정신이 아득해진다.

길 잃은 물이 모여 폭포를 이루었다
▲ 화암사 가는 길 길 잃은 물이 모여 폭포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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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계곡 길을 헤쳐 나오면 철 계단길이 나온다.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한 보답이고 배려의 길이다. 이런 곳에 철 계단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오늘 옛길은 물에 묻혀 폭포가 되어버렸다. 오늘만큼은 철 계단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해묵은 묵객들의 시구 대신 계단 한가운데에 안도현 시인의 시 '화암사, 내사랑'이 붙어 있다. 쇳덩어리와 안도현 시라, 참 잘 어울린다. 숨을 돌리며 시를 음미하고 있으면 저 앞에 굵은 폭포수 소리가 발길을 재촉한다.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폭포수에 몸과 마음을 씻고 오라는 의미일 게다
▲ 화암사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는 것 같다. 폭포수에 몸과 마음을 씻고 오라는 의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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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에는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다. 폭포수가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다. 폭포수로 몸과 마음을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절에 들어오라는 의미다. 두툼한 이끼 사이로 절 앞을 흐르는 하얀 물줄기는 태곳적 신비감을 자아낸다. 옆에 난 벼랑길을 올라야 비로소 절에 닿는다. 

두툼한 이끼 사이로 흐르는 하얀 물줄기는 태곳적 신비감을 자아낸다
▲ 화암사 계곡물과 이끼 두툼한 이끼 사이로 흐르는 하얀 물줄기는 태곳적 신비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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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성과 같은 절

절에 이르러 처음 대하는 것은 우화루(雨花樓). 그러나 보통 절 집의 누각과 다르다. 기둥을 세울 자리에 벽체를 두어 막아버렸다. 문 대신 벽체를 둔 것이다. 마치 성채의 망루(望樓) 같아 오는 이를 반기기보다 경계를 하는 느낌을 받는다.  

우화루 옆 돌축대를 따라가 본다. 축대가 끝나기 무섭게 돌담이 바위와 언덕을 쉬엄쉬엄 넘어가 동쪽 어중간한 곳에서 멈춘다. 동쪽은 산등성이 시작되는 곳이어서 자연스레 방어막이 형성되어 있다. 화암사는 결국 돌담과 산등성이로 잠겨버린 깊은 성(城)과 같은 절이다. 이 절은 세상과 등을 돌린 채 그 속을 좀처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간 천주교도의 성지와 같다. 

성채의 망루와 같은 우화루, 옆으로 이어지는 돌축대와 문간채는 화암사가 성처럼 보이게 한다
▲ 우화루와 문간채 성채의 망루와 같은 우화루, 옆으로 이어지는 돌축대와 문간채는 화암사가 성처럼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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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루 누각 아래에 문이 없으니 다른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 화암사에는 우화루 옆 문간채에 딸린 단칸문이 전부다. 그래서 내가 '유일문(唯一門)'이라 이름 지어주었다.  이 문은 축대와 우화루 사이의 돌계단으로 연결되어있는데 문밖에서 보는 것보다 문 안에서 볼 때 시야가 더 확보된다. 문 안에 들어서도 절 안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곱게 늙어 가고 있는 절

'유일문'에 들어서면 적묵당·우화루 두 기둥사이로 안마당이 살짝 보인다. 북쪽에 극락전(極樂殿), 남쪽에 우화루, 서쪽에 적묵당(寂黙堂), 동쪽에 불명당(佛明堂)이 마당을 함께 쓰고 있다. 조선시대 살림집안채와 같이 'ㅁ' 자 구성을 하고 있다. 극락전 동쪽에 철영재, 적묵당 뒤편에 산신각, 우화루 동쪽 빈 공간에 명부전이 있다. 화암사의 건물은 이게 전부다.

화암사 안마당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이다
▲ 화암사 ‘유일문’ 화암사 안마당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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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사는 그 역사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 원효와 의상에 연(緣)을 구하고 있으나 이 땅이 백제 땅인 점을 감안하면 그 이전에 존재했을 거라 짐작된다. 힌트는 극락전에 있다. 극락전은 우리나라 건축물 중에 유일하게 하앙구조를 하고 있다. 처마를 더 길게 뺄 수 있게 하는 건축구조인 하앙이 백제계 건축구조라는 것이어서 이 절의 사력(寺歷)을 백제로 올리는 근거가 된다. 

우화루에 걸터앉아 극락전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약간의 리듬감이 생긴다. 극락전 편액 때문이다. '극락전'이 아니라 '극∨락∨전'으로 되어 있다. '극'과 '락', '락'과 '전' 사이에 한 박자씩 쉬고 들어간다. 극락전이라 읽지 않고 '그윽 라악 저언'이라 읽게 된다. 이렇게 쓴 연유는 건축학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그것은 학자에 맡기고 우리는 파격미를 즐기면 된다. 극락전 편액 위의 주악상(奏樂像)도 이런 리듬감에 한몫 거들고 있다.

한 글자씩 띄어 쓰인 편액이 재미있다. 하앙구조를 한 건물이어서 이 절의 사력(寺歷)을 높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 극락전 한 글자씩 띄어 쓰인 편액이 재미있다. 하앙구조를 한 건물이어서 이 절의 사력(寺歷)을 높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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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묵당 뒤편 산신각은 바위의 높낮이에 맞게 짝짝이 다리로 바위 위에 서있다. 그 옆 장독대의 장과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 산신각은 신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살림을 하는 보살을 위한 것인마냥 살림집 후원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적묵당 한켠에 서있는 두기의 굴뚝과 '입을 놀리는 것을 삼가라'는 철영재(啜英齋), 철영재 옆에 누구의 부도인지도 알 길 없는 아주 작은 부도, 우화루 기둥에 걸려 소리 내는 법도 잊은 지 오래된 목어와 목탁은 극락전, 우화루와 함께 잘 늙어가고 있다.

동쪽 산등성이에 올라본다. 화암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덟 개 건물이 지붕과 어깨를 기댄 채 다정하게 서있다. 지붕을 같이 쓰기도 하고 지붕이 살에 닿아도 뭐라 하지 않는다. 화암사는 서로서로 의지한 채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여덟 채의 건물이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다
▲ 화암사 전경 여덟 채의 건물이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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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은 절은 이런 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돈이 생겼다하여 함부로 고친다든가, 허세를 부려 지나치게 큰 건물을 세운다든가, 사치를 부려 화려하게 꾸민다면 금세 '성형(成形)을 잘 못한 절'로 전락하게 된다.

다시 돌아와 적묵당(寂黙堂)에 앉아 철영재(啜英齋)를 보며 잘 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본다. 얼굴에는 기름기가 번지르르하나 속이 병든 사람, 욕심이 지나치거나 권력에 눈이 멀어 양심을 팔아버린 사람, 말을 함부로 하거나 우기기 좋아하고 감언이설로 백성을 속이려하는 사람들은 잘 늙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자들은 고요하게 앉아 깊이 생각하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을 삼가는 '적묵(寂黙)'과 '철영(啜英)'의 철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절이 나중에 어떻게 변할까? 세상에 알려지면서 다투어 '성형'을 하는 절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두렵다. 안도현 시인의 시구말미, "화암사, 내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 않으렵니다" 처럼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pressianplus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화암사, #우화루, #극락전, #하앙구조, #철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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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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