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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괴롭힘'을 당한 피해 학생이 자살한 경우, 괴롭힘의 정도가 폭력이 아닌 비난과 조롱의 방법이었다면 담임교사나 학교가 자살을 미리 예상하기는 어려워 교사에게 보호감독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에 따르면 2009년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A군은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약간 뚱뚱한 체격에 여성스러운 치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A군이 중학교 시절 남학생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급우 일부가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는 A군을 놀렸다. 급우들은 여자들에게 하는 욕을 A군에게 했다.

그러던 중 A군은 친구들과 다투자 2009년 11월 가출하고 등교를 하지 않은 채 방황하다가 결국 자신의 집에서 자살했다. 당시 발견된 메모에는 급우들이 '뚱녀'라고 놀린다는 내용, 욕을 하는 급우들에 대한 분노와 비난 등이 적혀 있었다.

한편 학기 초 학교에서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A군은 상당히 예민하며 여성적인 면이 많고~" 등과 함께 집단 따돌림의 위험이 있는 학생으로 지목됐다. 또한 여름에 실시한 조사에서 A군은 자살충동이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담임교사는 A군을 놀리는 급우에게 주의를 주기도 했고, A군은 급우들과 친해지기 힘들고 학교생활이 답답하므로 학교에서 자퇴하고 싶다는 등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담임교사는 A군의 부모와 상담을 하기도 했었다.

자살한 A군의 부모들은 학교를 운영하는 부산시(대표자 교육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은 담임교사의 책임을 인정해 "부산시는 원고에게 1억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담임교사는 A군과의 상담 등을 통해 급우들의 괴롭힘을 알았고, 다른 검사로 A군이 심한 불안과 우울 상태를 보여 자살 충동 또한 매우 높게 나타났음에도 부모에게 검사결과를 보여주는 등 심각성을 알려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지 않은 채 A군의 동성애적 성향 및 우울감을 알리면서 전학을 권고하는 등의 소극적인 조치만을 취했다"고 지적했다.

또 "담임교사는 급우들의 괴롭힘을 남학생들 사이에 의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부모에게 전달하고 교장 등과 상의해 괴롭힘에 주도적으로 가담하는 학생에 대해 적절한 조치나 감독 등 특별관리로 피해학생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하는 등으로 사고 위험성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런 노력을 다하지 못했다"며 "따라서 이 사고는 담임교사가 A군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부산시는 교사의 사용자로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급우들의 집단 따돌림은 인정하면서도, 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소홀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집단 괴롭힘으로 자살한 피해학생의 부모가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운영하는 부산시(대표자 교육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먼저 "집단 괴롭힘이란 학교 또는 학급 등 집단에서 복수의 학생들이 한 명 또는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도와 적극성을 가지고, 지속적이면서도 반복적으로 관계에서 소외시키거나 괴롭히는 현상을 의미한다"며 "망인이 반 학생들 중 일부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고 인정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집단 괴롭힘으로 인해 피해 학생이 자살한 경우, 자살의 결과에 대해 교장이나 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피해 학생이 자살에 이른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 교사 등이 예견할 수 있음이 인정돼야 한다"며 "이 사건 발생 당시 담임교사에게 망인의 자살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악질, 중대한 집단 괴롭힘이 계속되고 그 결과 피해 학생이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 있었음을 예견할 수 있었던 경우 피해 학생이 자살에 이른 상황에 대한 예견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나, 집단 괴롭힘의 내용이 이와 같은 정도에까지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교사 등이 집단 괴롭힘을 예견할 수 있었더라도 이것만으로 피해 학생의 자살에 대한 예견이 가능했던 것으로 볼 수는 없어 자살 결과에 대한 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위반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망인이 자살하게 된 계기는 반 학생들의 조롱, 비난, 장난, 소외 등에도 기인한다고 할 것이나, 그러한 행위가 아주 빈번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행위의 태양도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조롱, 비난 등에 의한 것이 주된 것이었던 점 등에 비춰 이를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악질, 중대한 집단 괴롭힘에 이를 정도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망인이 자살을 암시하는 메모를 작성하기도 했지만, 사고 무렵에 자살을 예상할 만한 특이한 행동을 한 적이 없고, 망인이 가출해 다음날 등교하지 않고 방황하다가 그날 자신의 집에서 자살했다"며 "따라서 사고 발생 당시 담임교사에게 망인의 자살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워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은 교사의 보호감독의무 위반 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손해배상, #자살, #집단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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