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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입구에 세워진 새김돌.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입구에 세워진 새김돌.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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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총장님, 저는 마흔여섯에 2006학번으로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해 2012년에 졸업한 '만학도'입니다. 저는 가톨릭대학교 출신인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강의실에는 예수님 상이 걸려 있고, 학교 입구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쓰신 '진리 사랑 봉사'라는 새김돌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대학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마친 뒤에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의 아픔을 매만지며 그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도, 아름답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 때는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며 기도할 때면 낮은 데로 몸소 임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와 '힘들고 어렵지만 나와 함께 나의 길을 가주면 좋겠구나, 네가 떠나면 저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 주겠니'라고 부탁하며 못 박힌 손을 내밉니다. 그러면 저는 '가난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한참 멀었구나'라고 뉘우치며 주님이 내민 손을 잡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부탁대로 살진 못합니다. 다만, 가난한 이웃들을 몹시 사랑하진 못했지만 그들의 곁을 떠나진 않았습니다. 제가 낮은 데로 임하기에는 한참 멀고 멀었지만 오늘도 낮은 데로 임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가톨릭대학교가 추구하는 진리·사랑·봉사의 길을 따라 걸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교수협의회, 총장 연임반대... 학보는 발행 중단 사태

기자가 만학도로 재학 중이던 2009년, 학생들이 낸 등록금의 예결산 내역을 공개하라며 총학생회가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자가 만학도로 재학 중이던 2009년, 학생들이 낸 등록금의 예결산 내역을 공개하라며 총학생회가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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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인 제가 총장님께 공개편지를 드린 것은 학내 갈등의 심각성 때문입니다. 가톨릭대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을 뉴스로 접한 뒤에 그 사정을 살펴봤습니다. 학내 갈등의 핵심은 제가 재학 중에도 불거졌던 '독선적 학교 운영'이었고, 그 중심에는 총장님이 있었습니다. 상당수 교수들은 총장님이 임기 4년 동안 독선적 학교운영으로 대학의 위기감을 불러왔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총장님에 대한 비판 기사를 보도하려는 과정에서 <가톨릭대학보> 발행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1982년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된 총장님은 김수환 추기경 비서와 가톨릭대 교수와 문화영성대학원장을 거쳐 지난 2009년 제5대 가톨릭대 총장에 취임했습니다.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사장 염수정 대주교)은 총장님이 재임 4년 동안에 약학대학 유치와 학부교육선진화사업·산학협력선도대학사업 등 국책사업을 유치하면서 대학발전을 이끌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들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교수들은 총장님을 '소통 부재 독선 총장'으로 평가했습니다. 2011년 11월 10일부터 18일까지 가톨릭대 성심교정 교수 101명이 참여한 '학교정책 및 운영에 대한 교수 의견 조사'에서 총장님의 정책 결정이 '건학 이념이나 교육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71.8%) '정책 이행 과정에서 의견수렴이 되지 않는다'(90.9%)며 일방적 학교운영을 문제 삼았습니다.

교수협의회는 2012년 12월 4일 성명서를 통해 "지난 4년 동안 현 총장이 가톨릭대학교를 운영했던 방식은 대학의 존립 목적과 가톨릭 정신에 현저하게 위배된다"며 "학교 운영에 있어 구성원들의 합리적 의사 수렴 과정 생략, 정책 결정과정의 투명성 실종, 상명하복식 행정 집행 요구 등은 사업 추진의 부작용은 물론, 교육 체계 붕괴에 대한 위기감을 팽배하게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가톨릭대학보 기자들이 2013년 6월 7일 발행한 호외.
 가톨릭대학보 기자들이 2013년 6월 7일 발행한 호외.
ⓒ 가톨릭대학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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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은 교수협의회의 연임 반대 의견을 외면하고, 2012년 12월 총장님의 연임을 의결했습니다. 그러자 교수협의회가 "총장의 자격과 선임 기준의 투명한 제시, 총장 선임 과정의 학교 구성원 의견 수렴과 반영" 등의 대안을 제시하며 총장 선임방식 개선을 요구했지만 가톨릭학원은 이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화 노력이 무산되자 교수협의회는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조돈문 교수)를 구성하고 총장님의 ▲ 독선적 대학운영 ▲ 기초 학문의 홀대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교수의 수 ▲ 무분별한 국잭 사업지원과 평가수치에 치중한 대학운영 ▲ 교수의 자긍심 훼손과 교육․연구의 질 저하 등의 쌓였던 문제를 외부에 공개하면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가톨릭 학내 신문인 <가톨릭대학보>는 지난 4일 치 학보에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을 보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총장님에 대한 비판 기사를 실으려는 학보사 기자들과 이를 반대하는 주간교수 간의 갈등이 벌어지면서 신문 제작이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가톨릭학보사는 지난 7일 발행한 호외를 통해 "지난 4일 발행 예정이었던 제251호가 주간교수의 편집권 부당행사로 인해 발행이 중지됐다"며 "주간교수는 비상대책위원회 기획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하며 비대위 기사 자체가 보도되는 것을 막았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5일 성명서에서는 ▲ 학생기자들의 편집권 및 자율성 보장과 이에 따른 정상적 발행 ▲ 학보사와 관련된 규정의 전면적 개정 ▲ 주간교수 사퇴 등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학보사 주간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장님 비판 기사 기획을 반대한 것은 "시의성이 떨어지고 학내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기획"이었기 때문이라며 "편집상의 이견 때문에 발행을 중단했을 뿐 특정 주제와는 무관하다"고 밝혔습니다.

박 총장님, 2009년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지난 2009년, 등록금 인상에 시달리던 가톨릭대학교 학생들이 학생 권리 찾기에 나섰을 때
 지난 2009년, 등록금 인상에 시달리던 가톨릭대학교 학생들이 학생 권리 찾기에 나섰을 때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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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은 제가 재학생이던 2009년 1월에 취임했습니다. 학생들은 그 해 "매학기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납부하고 있는 우리의 권리는 언제까지 무시될 것이며, 언제까지 구걸해야 하는가! 국제화의 명목아래 학생복지가 무시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이제 행동으로 권리를 되찾고자 한다"고 선언하며 학생 권리 찾기 운동에 돌입했습니다.

총학생회는 ▲ 학생들과 소통하지 않는 학교는 각성하라 ▲ 등록금 책정 및 예․결산에 대해 설명하라 ▲ 학생들을 위한 복지를 실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단과대 학생회들은 ▲ 기숙사비 인상 근거 제시와 기숙사비 인하 ▲ 학생 배려한 학생식당 가격 결정 ▲ 교내 건물 활용에 대한 학생여론조사와 수렴 촉구 ▲ 등록금협의기구 설립 추진으로 등록금에서 학생과의 대화 ▲ 등록금 현황·예결산안 공개 및 정보게시판 마련, 재정투명성 확보 ▲ 등록금 분할남부 시행추진 등을 촉구했습니다.

총장님은 가톨릭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석·박사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학비 때문에 고통받은 적이 있습니까. 가난한 학부모가 자식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사채까지 써야 하는 현실과 졸업하기도 전에 학자금 빚쟁이가 되는 가난한 학생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십니까. 2009년 26대 총동아리연합회가 대학에 써 붙였던 학생들의 한숨 소리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야금야금 올라가는 등록금 어느새 1000만 원
부모님 얼굴에 주름이 한 줄 더 생기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허리가 더 휘어지십니다.
등록금 고지서만 보면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등록금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는 삶이 힘듭니다.
지금까지 받은 학자금 대출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듭니다.
곧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르는 미래가 두렵습니다.

지난 2009년 가톨릭대학보 기자들이 박영식 총장에게 취재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
 지난 2009년 가톨릭대학보 기자들이 박영식 총장에게 취재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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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콘서트 홀 입구에서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총장님은 잊어버렸겠지만 저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9년 2학기 개강 미사 때였을 것입니다. 총학생회가 등록금 인상과 관련, 자신들의 학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학교 측은 묵살로 일관했습니다. 그러자 총학생회는 콘서트 홀 입구에서 피켓시위를 벌였고, 학보사 기자들은 총장님이 나타나자 취재를 시도했습니다.

2009년 당시 박영식 총장은 학보사 기자들에게 "학생들이면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말하며 취재를 물리쳤다.
 2009년 당시 박영식 총장은 학보사 기자들에게 "학생들이면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말하며 취재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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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에서 예산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데 공개할 의향이 있으신지요?"

학보사 기자가 조심스레 질문을 하자 총장님은 로만 칼라의 하얀 색과 어울리지 않게 말씀하셨습니다. 

"학생들이면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예산공개는 무슨, 학교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학보사 기자들의 인터뷰는 우습게 끝났습니다. 사회 언론사 기자였다면 뿌리치는 취재원을 쫓아가서라도 공세적인 질문으로 압박했을 텐데 앳된 학보사 기자들은 총장님의 위력에 눌리고 말았습니다. 학보사 기자들을 일거에 물리친 총장님은 피켓시위 중인 학생들을 응시하다가 콘서트 홀로 입장했습니다.

아무리 학생이라도 기자인데…. 학보사 기자 옆에서 사진촬영을 하며 취재하던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학보사 기자는 학교 구성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고, 총장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학보사 기자가 정당한 취재를 시도하면 응해야 마땅합니다. 가령, 미사 집전 때문에 인터뷰가 어렵다면 사정을 설명하고 차후에 인터뷰 약속을 하는 게 기자에 대한 예의입니다. 학생들이 기습 인터뷰를 시도한 것은 현안에 대한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총장님은 학보사 기자의 취재 권리를 묵살했을 뿐 아니라 대학생들을 초등학생 취급하며 심하게 모독했습니다. 민주주의 훈련장인 대학에서, 상아탑의 최고 지도자인 총장이, 더군다나 하나님의 종인 신부가 이럴 수가 있습니까. 마치 제가 모멸당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언론에 보도하려고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분기탱천(憤氣撐天)은 이내 식어버렸습니다. 총장님이 권력을 행사하는 동안 학생들은 스펙 쌓기와 취업에 시달리느라 권리 찾기를 포기했고, 교수들은 침묵했습니다. 대학은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였고, 만학도인 저 또한 총장님과 대학교의 막강함 앞에서는 약자인 을(乙)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158년 된 가톨릭대학교... 진리·사랑·봉사로 거듭나야

지난 5월 22일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콘서트 홀에서 진행되 개교 158주년 기념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박영식 총장 신부.
 지난 5월 22일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콘서트 홀에서 진행되 개교 158주년 기념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박영식 총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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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대학교 설립자인 메스트르 신부님은 1842년 조선 교회 선교사로 임명돼 김대건과 함께 마카오에 왔습니다. 조선 선교에 목숨을 건 신부님은 조선에 잠입하려다 만주 군인에게 잡히는 등 10년 동안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중국 배를 타고 조선 서해안을 거쳐 서울에 도착한 메스트로 신부님은 신학교를 설립하고, 고아를 거둬 키우는 등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온전히 전하다가 1857년 12월 20일 과로로 쓰러져 본향인 하느님 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가톨릭대학교는 그냥 대학이 아니라 선교사가 순교의 피로 세운 대학입니다. 따라서 가톨릭대학교는 인간 존중의 대학이자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봉사를 가르치는 대학이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개교 158주년을 맞이한 가톨릭대학교는 설립 정신인 인간존중과 진리, 사랑과 봉사가 박해 받는 지경이 됐고, 하나님의 종인 총장님이 그 일을 주도하자 하느님을 믿지 않는 교수들조차 가톨릭대학교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박영식 총장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도리로 감히 권면합니다. 총장의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서 신부 본연의 낮은 자리로 돌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도 권력의 칼을 휘두르다 그 칼에 쓰러져 비참하게 생을 마친 권력의 멸망사를 잘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솔로몬이 누린 영광이 들에 핀 백합꽃 한 송이보다 못하다"며 권력의 허망한 이치를 깨우쳐 주신 것 또한 잘 아실 것입니다.

가톨릭대학교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닫힌 가슴을 열어야 합니다. 대학공동체 구성원들이 총장님의 독선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 이제라도 헤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회개하면서 화해와 일치의 대학교로 거듭나도록 해야 합니다. 독선을 계속 고집하신다면 가톨릭대학교는 갈등과 대립의 늪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톨릭대학교의 명예는 물론이고 한국 가톨릭에 대한 신뢰도 추락할 것입니다. 신부의 명예를 지키고, 한국 가톨릭의 신뢰를 지키는 길을 예수님이 알려주십니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임하소서!


태그:#가톨릭대학교, #박영식 총장, #교수협의회, #학보사, #학내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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