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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전로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노동자 다섯 명이 가스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고 왜 죽음을 당했을까요? 사고 후 남겨진 이야기들을 취재해봤습니다. [편집자말]
현재제철 당진공장 산업재해 사망자 5명의 분향소가 마련된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 유가족이 요구한 '현대제철 공장 내 분향소 설치'를 현대제철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사고 후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현재제철 당진공장 산업재해 사망자 5명의 분향소가 마련된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 유가족이 요구한 '현대제철 공장 내 분향소 설치'를 현대제철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사고 후 협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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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마치고 전세대출 알아보러 가자."

남편이 야간 근무를 나가며 웃었다. 월세살이가 힘들던 아내는 남편의 미소에 들떴다. 지난 9일 오후 7시, 23평 월세 아파트를 나선 남편은 현대제철 당진공장으로 향했다.

이날은 전로(쇳물의 불순물을 산화시켜 순수한 금속을 만드는 시설) 내부를 보수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평소엔 3교대 근무지만 이 작업을 하는 동안엔 2교대로 일했다. 출근 후 2시간쯤 지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애들 보고 싶다." 남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뒤, 아내는 잠들었다.

다음날인 10일 오전 4시, 월세 아파트 현관문이 '쿵쾅' 거렸다. 아내는 잠에서 깼다. 술 취한 사람인 줄 알고 다시 잠들려는데 "형수님!"하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다쳤나 싶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남편 동료 둘이 서 있었다.

"형수님, 석원 형님이요…." 
"남편 어디 다쳤어요?" 
"죄송해요. 형님…. 돌아가셨습니다…." 

스트레스를 운동으로 풀던 남편은 건강했다. 건강검진 결과도 항상 좋았다. 하는 일이 고되 동기 여럿이 그만뒀지만 남편은 버텼다. 아내가 "일 하는 거 위험하지 않나?"라고 물어도 남편은 "높은 데서 떨어지지만 않으면 괜찮아"라고 했다. 그런 남편이 10일 오전 1시 40분, 동료 넷과 함께 아르곤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아르곤 가스, 아내는 처음 들어 본 말이었다.

당진종합병원에 마련된 현대제철 당진공장 산업재해 사망자 5명의 분향소 입구엔 우유철 현대제철 사장의 화환이 들어서 있다.
 당진종합병원에 마련된 현대제철 당진공장 산업재해 사망자 5명의 분향소 입구엔 우유철 현대제철 사장의 화환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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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동료 대신 전로에 들어갔다가... 일만 하는 '가족 바보'

남편 홍석원(34)씨는 2011년 12월, 충남 당진에 있는 한국내화에 입사했다. 한국내화는 현대제철의 협력업체로 당진공장의 전로 작업을 주로 맡았다. 이곳에 입사하기 직전, 남편은 충남 서산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회사의 부도로 일을 그만 뒀다. 갑작스레 이직을 했기 때문에 입사 초기 부부는 당진-서산에서 기러기 부부 생활을 했다.

입사 후 세 달 만에, 남편은 "두 아들딸이 보고 싶어 못 참겠다"며 아내와 아이들을 당진으로 불렀다. 처음엔 월세 원룸에 살았다. 좀 지나 월세 23평 아파트로 이사했다. 남편은 담뱃값 외엔 돈 한 푼 허투루 안 썼다. 월급이 차곡차곡 쌓였다. 출근을 하며 나눈 전셋집 이야기도 부부가 아끼고 아낀 덕이었다.

사고가 있던 날, 남편은 원래 전로에 들어갈 차례가 아니었다. 몸이 아픈 동료를 대신해 남편 스스로 들어가기를 청했다.

14일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 남편의 어머니는 "석원이가 인정이 하도 많아서…"라며 연신 가슴팍을 후볐다. 비교적 나이가 많았던 남편은 부탁하면 다 들어주는 '착한 형'이었다. 후배들은 "형님, 짬밥도 찼는데 아직도 얼굴이 시꺼멓네요"라며 남편에게 농담을 던졌다. 현장에서 남편의 얼굴은 항상 까만 먼지로 덮여있었다.

사고 후, 아내와 남편은 영안실에서 처음 마주했다. 남편의 얼굴은 새까맸다. "여보야, 빨리 일어나라!" 소리치며 아내는 떨리는 손을 남편에게 가져갔다. 이후 두 차례 더, 아내는 영안실에서 남편을 만났다. 마지막 만나던 날, 아내는 남편의 새까만 얼굴에 나 있는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애들 생각에 죽는 와중에도 눈물을 흘렸나 싶어요. 애들을 어찌 그리 아꼈는지 자기 팬티 하나 안 사 입고 애들 신발 사라던 이입니다. 마음 같아선 나도 죽고 싶은데 애들이랑 잘 살아야 하잖아요. 협의가 잘 돼서 예쁘게 화장해 남편 편하게 해주고 싶어요."

사망자 홍석원씨(34)의 아들과 조카가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 한 켠에서 게임과 군것질을 하고 있다.
 사망자 홍석원씨(34)의 아들과 조카가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 한 켠에서 게임과 군것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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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앞두고 들떴었는데... "가족여행 하루 앞두고 그만"

채승훈(30)씨의 가족은 11일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9일 오후, 승훈씨의 누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어디 놀러가지? 서해바다? 밥은 뭐 먹을까? 엄마가 음식 준비 다 해 놨더라. 얼른 만나야제?" 누나는 동생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평소 무뚝뚝한 동생이었지만 휴가를 앞둬서인지 이날은 누나에게 들뜬 목소리를 들려줬다.

동생이 처음 입사했을 때 가족들은 일을 그만두길 원했다. 포항제철에서 일을 했던 아버지는 동생이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었다. 동생은 계속 일을 하겠다고 했다.

"돈 때문이면 그 회사 관둬라. 집안 형편은 아직 괜찮다 아이가."
"아입니더. 한 번 시작한 거 해 봐야지에."

10일 새벽, 누나는 동생이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생의 소식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가족여행 때 먹을 손수 만든 음식은 누구의 손도 타지 못했다. 곧바로 응급실에 실려 간 어머니는 아직 병원에 있다. 지난 3월 심장 수술을 한 터라 상황이 좋지 않다.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의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 한 동료직원이 찾아 향을 피우고 있다.
 당진종합병원 장례식장의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 한 동료직원이 찾아 향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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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죽음에 쏟아지는 문자... "못난 엄마 영정 앞 서성입니다"

10일 오전 4시 4분, 남정민(25)씨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다. 오전 4시 9분, 또 전화가 와 "이 밤중에 무슨 전화에요"라고 다그쳤다. 수화기 너머에서 "남정민씨 어머니 되십니까"라는 말이 들렸다.

놀란 마음에 수화기를 정민 아빠에게 돌렸다. 전화를 끊고 난 후 오전 4시 20분, 문자메시지가 왔다. "충청남도 당진시 시곡동 당진종합병원입니다." 곧장 전남 순천에서 당진으로 향했다. 올라오는 동안, 아빠는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 엄마는 아들이 다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차가 장례식장 앞에 섰다.

입사했을 때, 그리고 내근을 마치고 현장에 투입돼 야근을 시작했을 때 아들은 엄마에게 "일이 좀 힘들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내화'가 뭘 하는 곳인지 몰라, 회사 막내라 겪는 어려움이겠거니 했다.

엄마는 아들이 힘들까 봐 전화도 제대로 못했다. 야근 때문에 아들이 언제 자고 있을지 알기 어려웠다. 아들이 자다 깰까 봐 휴대폰을 앞에 두고 수차례 고민했다. 또 일할 때 전화를 하면 땀 흘리는 와중에 장갑, 마스크를 벗고 받아야 해서 엄마는 아들에게 하는 전화가 항상 조심스러웠다. 아들의 휴대폰엔 엄마와의 짧은 대화가 남겨져 있었다.

"일어났느냐." "출근 준비했어요."
"출근했어?" "이제 나가요."

사망자 남정민씨(25)의 휴대폰에 남은 어머니와의 휴대폰 메시지 대화.
 사망자 남정민씨(25)의 휴대폰에 남은 어머니와의 휴대폰 메시지 대화.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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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 후, 그 휴대폰엔 아들의 명복을 비는 메시지가 쌓여 갔다. 엄마는 일일이 답장을 했다.

"너가 먼저 돈 벌어서 우리 고기 사줄 때 정말 고마웠어. 이번엔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나도 신입이라 바쁘다고 연락도 안 하고 미루다가 고기 못 사준 게 너무 한스럽다. … 너가 너무 고생만 하고 가는 거 같아서 내 맘이 너무 아파. 사랑한다."
"정민 엄마에요. 우리 정민이의 좋은 친구로 함께 해 주셔서 고마워요. 아직도 언제 장례를 치를지 막막합니다. 이 못난 엄마는 영정 앞에서 서성입니다."

사망자 남정민씨(25)의 어머니는 기자에게 휴대폰을 보여주며 정민씨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민씨의 형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아버지는 한 켠에서 맥주만 들이켰다.
 사망자 남정민씨(25)의 어머니는 기자에게 휴대폰을 보여주며 정민씨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민씨의 형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아버지는 한 켠에서 맥주만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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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난항에 이슈화도 안 돼... 5살 꼬마 "기자 삼촌, 잘 써주세요"

14일 현대제철 임원들이 장례식장에 마련된 유가족 대책위원회(대책위) 상황실을 찾았다. 대책위는 현대제철 공장에 분향소를 마련해달라고 했다. 이에 현대제철 측은 사망자들이 협력업체 직원이라며 거부했다. 진실 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 책임자 처벌, 유가족 보상 등 다른 숙제엔 손도 못 대고 있다.

이번 사건이 제때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도 유족들은 답답하다. 기자들이 장례식장을 오가도 유가족들은 별 기대를 않는다. 승훈씨의 친구는 "이번 일이 해결되려면 얼마나 걸릴 까요? 아니, 해결은 될까요?"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장례식장 구석에서 메모를 하던 기자에게 석원씨의 딸 에스더(5)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삼촌, 우리 아빠 이야기요… 잘 써주세요."

사망자 홍석원씨(34) 딸의 인형이 장례식장 상 한켠에 놓여 있다.
 사망자 홍석원씨(34) 딸의 인형이 장례식장 상 한켠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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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대제철, #당진공장, #산업재해, #아르곤 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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