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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기금 가접수 '1호'인 송 아무개씨가 언론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 가접수 '1호'인 송 아무개씨가 언론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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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네요. 이 지긋지긋한 빚 좀 갚았으면 좋겠어요."

22일 오전 9시. 박근혜 정부의 서민 부채감면 정책인 국민행복기금 가접수를 위해 서울 역삼동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본점을 찾은 송아무개씨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오전 8시쯤 도착해 1시간 가량 기다려 가장 먼저 가접수를 마친 그는 "아무리 재기를 하려고 해도 재기가 안 되더라"면서 "파출부를 해서라도 이번에는 꼭 갚겠다"고 말했다.

캠코는 이날부터 자사 지점 접수창구 및 전국의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 국민은행·농협·신용회복위원회 지점에서 국민행복기금 가접수를 시작했다. 현장을 찾은 장영철 캠코 사장은 "가계 부채의 함정에 빠져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국민행복기금은 그런 분들 중 자활의지를 보이는 분들을 돕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민행복기금 운영에 대해 우려 섞인 의견을 재차 밝혔다. 이들은 22일 오전 캠코 앞에서 '국민행복기금 국민감시단' 출범을 선언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기금 이사장 교체와 기금 운용방식의 변경을 요구했다.

22일 오전 국민행복기금 가접수 신청을 위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국자산관리공사 3층을 찾은 신청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22일 오전 국민행복기금 가접수 신청을 위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국자산관리공사 3층을 찾은 신청자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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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니면 갚기 어려워... 방법이 없다"

이날 캠코 본사 3층에 마련된 40개 접수창구에는 가접수 가능 시간인 9시 이전부터 빚 탕감을 원하는 신청자들이 몰려 북적였다. 대체로 20~30대보다는 50대 이상 노령층이 많았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왔다는 A씨(60)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단 와 봤다"고 말했다. 그는 1금융권의 마이너스 통장에서 2000만 원 정도를 생활비로 썼다가 수년째 신용불량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 A씨는 "나이 더 먹기 전에 처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이 없다"면서 "이거 아니면 갚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절박감을 드러냈다.

자신의 정확한 부채 규모를 모를 정도로 금융에 취약한 신청자들도 상당했다. 매달 채권추심업체로부터 2~3회의 빚 독촉을 받는다는 B씨는 부채 규모를 묻자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채권추심업체에서는 이자만 알려주면서 갚으라고 했다"면서 "여기 와서 빚 규모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가접수라 조회는 안 된다고 설명받았다"고 말했다.

40대로 비교적 젊은 편인 C씨는 신용카드의 유혹을 끊지 못한 경우. 생활비 때문에 여러 장의 카드를 이용해 결제일을 미루는 '카드 돌려막기'를 시작했지만 수입이 없어 그대로 신용불량자가 됐다. C씨는 "카드로 빌린 돈 원금은 2000~3000만 원인데 10년째 못 갚고 있다"면서 "채권추심업체의 빚 독촉도 일상처럼 됐지만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왔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10시까지 이곳을 찾은 신청자는 약 50명. 그러나 기자가 국민행복기금에 오게 된 동기와 현재 사정을 물었을 때 선선히 답해주는 신청자는 많지 않았다. '부끄럽다'는 게 주 이유였다.

반면 '생활이 어려우니 더 탕감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는 신청자도 있었다. D씨는 "원금 50%만 깎아주면 열심히 갚을 것 같다"면서도 구체적인 상환 가능성을 묻자 "사실 현실적으로 말하면 80%는 깎아줘야 나도 먹고 살면서 빚 갚을 생각이 들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행복기금 국민감시단이 22일 오전 11시 30분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 국민감시단이 22일 오전 11시 30분부터 한국자산관리공사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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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기금 아닌 '은행행복기금'... 이사장·운영방식 바꿔야"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 캠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행복기금 감시단'을 발족한 시민사회단체들은 현 운영방안에 따르면 기초생활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70%까지 감면이 가능하지만 그 정도로는 회생을 돕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국민행복기금 감시단 측은 기자회견에서 "당장의 채무 문제만 조정된다고 해서 저소득 계층의 자립이 성공하지는 않는다"면서 "효과적인 자립 자활 프로그램의 연계를 통해 채무조정과 새출발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가 막연히 연계 프로그램을 거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밝힌 적은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날 '1호 접수자'였던 송 아무개씨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명박 정부 때 빚을 98만 원으로 탕감해 수 년간 갚게 해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지만 당시에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지 않아 그마저도 갚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1억 이하 부채, 올해 2월 기준 6개월 이상 연체자'로 기금 신청 대상을 한정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대출 시장에서는 3개월만 연체가 지속되면 악성채무로 분류되는데 기금의 기준이 이런 시중 기준과 동떨어져 있어 정책이 이대로 진행될 경우 금융 구제가 간절함에도 기금 신청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해진다는 게 감시단 측의 지적이다.

감시단은 "은행연합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기금 이사장을 교체하고 운용방식을 바꿔서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때 한 공약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한편 "국민행복기금이 '은행행복기금'으로 바뀔 수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공동대표는 "국민행복기금의 부실채권 매입가율은 8~10% 정도인데 현재 부실채권 시장에서 팔리는 6개월 이상 연체 채권은 5% 미만의 금액으로 거래된다"면서 "사실상 은행에 적정수입을 보장해 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시작된 국민행복기금 가접수는 이달 30일 마감되며 본접수는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6개월간 받는다. 행복기금을 직접 신청한 이는 채무감면이 결정되면 10%p 가량 채무감면 비율 우대를 받을 수 있다.


태그:#국민행복기금, #박근혜, #감시단, #참여연대, #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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