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잠실학생체육관을 다녀왔다. 한 아이가 엄마 옆에서 "튕겨 튕겨"를 외쳤다. 원정팀이 자유투를 쏠 때 실패하라는 의미의 응원이었다. 지난 12일 문득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와 같은 팬들을 만난다면 해줄 말이 없게 됐다. 강동희 감독 승부조작 사건은 프로농구에 큰 상처를 입혔다. 아직 '혐의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KBL을 비롯한 한국 농구계는 깊게 패였다.

대학 때 교수님은 '위기'라는 말을 좋아했다. 위기라는 말 속에 기회가 숨어있다고 교수님은 강조했다. 지금 한국 농구계는 위기다. 그렇다고 해서 KBL이 강동희 감독 사태의 풍랑 속에서 우왕좌왕하면 안 된다. 농구계 자체가 다시 뭉쳐야 한다. 프로와 아마 모두 한국 농구가 위기임을 인식하고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폭넓게 ▲ 농구계 자체 조사 ▲ 정규리그 단축 ▲ 프로팀 연고지 거주 확대 ▲ 플레이오프 4팀으로 간소화 ▲ FA제도 손질 ▲ 농구대표팀 강화를 제안하고 싶다.

농구계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한다

농구계 자체 조사는 필수다. 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부족함이 없다. 과거 축구·배구·야구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어도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강동희 감독 개인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농구계 자체의 문제로 보는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 그 다음엔 자체 조사와 더불어 승부조작 방지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자수 기간'을 두는 것도 방법이다. 사건이 강동희 감독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심각성을 농구계가 깨달아야 한다. 돌아보고 살펴보고 들춰보는 게 필수인 시기다. 자체 승부조작 방지를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운영하는 것도 고려할만하다.

정규리그 경기 수 줄이면 안 되나

정규리그 라운드 축소도 생각해볼 때다. 6라운드(팀당 54경기)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됐다. 선수층과 한국농구 인프라를 봤을 때 적지 않은 경기 수다.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과 일본은 우리보다 경기 수가 적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NBA만 우리 보다 많은 경기를 소화한다. 선수층과 시장 규모를 감안해야 한다. 이제는 4~5라운드로 축소를 생각해볼 시점이다. 선수들의 각종 부상도 줄어들 것이고 리그 수준 하락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통산 기록과 역사적 측면이 걸리긴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리그의 질'을 따질 대다. 승부조작 브로커들은 경기 자체의 중요도가 헐거워진 순간을 노려왔다. 이 점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또한 프로-아마 최강전을 없어진 시범경기 대신 시즌 전에 개최해야 한다. 이 경우 라운드 공백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무늬만 연고지, 바꿔야 한다

연고지와 숙소가 따로 노는 문제점도 이제는 없애야 한다. 홈팀이 홈팀답지 않은 것은 프로농구의 대중화를 좀먹는 처사다. 다른 프로 스포츠와 비교했을 때 창피한 일이다. 지금 빠지지 않고 꼭 논의돼야 한다. 안양 KGC인삼공사·원주 동부·인천 전자랜드·고양 오리온스를 제외한 나머지 6개 구단은 모두 연고지와 숙소가 다른 지역에 있다.

SK와 삼성(이상 용인)이야 서울 팀이라 그렇다고 칠 수 있다. 하지만 LG(서울)·KT(수원)·KCC와 모비스(이상 용인)은 무늬만 홈팀인 셈이다. 홈경기인데 수도권에서 이동하고 홈 경기 치르면 급히 숙소로 돌아오고 있다. 이런 형태는 전혀 납득이 안 가는 일이다. 지역과 어울리지 못하는 홈팀은 가치가 떨어진다. 그저 전광판에 도시 이름 쓰라고 연고지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다 많은 사랑을 받으려면 가장 기본인 연고지부터 챙겨야 한다.

플레이오프 팀 줄여 긴장감 높이자

플레이오프 축소도 제안한다. 60%(10팀 중 6팀)의 플레이오프는 희소성이 떨어진다. 이미 5~6위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돌풍을 일으킨 사례도 전무하다. 이는 플레이오프 긴장감만 떨어트릴 뿐이다. 농구시즌 전체가 길어진다는 단점도 있다. 아쉽게도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3월에 시작한다. 멀쩡하던 프로농구가 야구만 만나면 찬밥신세 되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이게 현실이다. 시청률과 광고 수익을 따져야 하는 방송사를 탓할 수는 없다. 이미 프로농구는 그 정도의 위기였다. 곱씹을 대목이다. 그러니 앞서 말한 정규시즌을 줄이고 플레이오프를 압축해야 한다. 리그와 플레이오프의 긴장도를 높여야 한다.

FA제도가 유연해져야 KBL이 흐른다

FA제도 손질은 가장 손쉬우면서 효과가 좋은 방안일 수도 있다. 현행 FA제도는 선수 이적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구단이 손해를 보며 이적 시장을 활성화하길 바라는 것은 반시장적이다. 결국은 KBL이 개혁해야 한다. 시스템적인 문제다. 선수 이적이 활발해지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고이면 퇴보한다. 자꾸 물이 흘러야만 리그 자체가 맑아진다. 드래프트제도와 맞물려 FA제도가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구단들의 운영이 유연해진다. 팬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는 것은 덤이다. 제발 불통하지 말고 바닥인 지금 소통하길 바란다. 제도 개선과 관련해 자꾸 여론을 듣고 들어서 뜯어고치길 바란다.

대표팀 강화가 국제화 첫 다리

대표팀 강화에도 나서야 한다. 나는 국제대회 신봉자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것들은 해야 한다. 중국과 아시아 최강을 다퉈야 하고 올림픽 무대도 밟아야 한다. 그게 프로스포츠의 자존심이자 양심이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국위선양하는데, 프로라고 안방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은 배임과 같다. 그들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면 그만큼 즐거움을 돌려줘야 한다. 그래서 대표팀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한 운영 철학이 서야 한다.

다행히 방열 신임 대한농구협회장이 대표팀 1·2군 활성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1군이 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을 나가고 2군이 동사이아대회와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뛰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협회차원에서 대회정보와 상대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대회 앞두고 급히 감독과 선수 소집하고 아무런 정보 없이 나갔던 전례를 꼬집은 것이다. 이런 부분들은 적극 장려해야 한다. 그러려면 KBL을 비롯한 농구계의 협조도 필수다.

KBL도 대표팀에 꼽힌 선수들에게 인센티브 등의 혜택을 줘야한다. 구단에서는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차기 시즌에 차질이 없도록 배려해야 한다. 과거처럼 태극마크에만 호소해 "투지로 싸워"라고 강요하던 시대는 끝났다. 대표팀이 정상화 되려면 KBL과 구단의 노력이 뒷받침 돼야 한다. 관계자들 가슴 속에 '위기의 농구판'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려야 한다. 대표팀이 정상화 돼야 각종 친선전과 국제대회 교류가 활발해 진다. 나아가 국제대회 유치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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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http://basketessay.co.kr
강동희 감독 프로농구 KBL 승부조작 한선교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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