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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미술관의 대표적인 그림이 '모나리자'라면 오르세 미술관의 대표적인 그림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이다. 여자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그림 앞은 그래서 항상 많은 인원으로 북적인다.

주간지 <파리 마치(Paris Match)>에 쿠르베의 그림 '세계의 기원'과 관련된 기사가 실려 화제가 되고 있다.
 주간지 <파리 마치(Paris Match)>에 쿠르베의 그림 '세계의 기원'과 관련된 기사가 실려 화제가 되고 있다.
ⓒ 파리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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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제가 된 그림 '세계의 기원'

이 그림은 1866년에 터어키 외교관인 칼릴-베(Khalil-Bey)의 주문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크기가 45x55cm에 달한다. 아테네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사를 역임했던 칼릴-베는 당시 파리에 정착하면서 자신이 이미 소장하고 있는 에로틱한 그림 컬렉션에 포함하기 위해 이 그림을 주문하였고 쿠르베가 이 파격적인 그림을 그리게 됐던 것.

칼릴-베는 이 그림에 작은 커튼을 친 채 자신의 화장실에 몰래 보관했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이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너무 선정적인 그림이라 당시 파리의 예술가와 문학가들의 구설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 그림을 그리 오래 소장할 수 없었다. 그림을 주문한 지 2년 후인 1868년, 칼릴-베가 빚에 몰리게 되자이 그림을 팔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골동품 상인의 손에 들어간 이 그림은 여러 손을 거친 후 1910년에 한 헝가리 개인수집가에 팔려 2차 세계대전때까지 부다페스트에 머물게 된다.

'세계의 기원'은 오리지널 그림 위에 쿠르베의 '블로네 성'이라는 다른 그림이 이중으로 그려진 채 보관됐다. 부다페스트 미술관에 넘겨진 이 그림은 1955년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라캉(Lacan)에게 팔린다. 당시에도 이 그림은 여전히 충격적이어서 라캉은 이 그림에 다시 이중화면을 설치해 '에로틱한 땅'이라는 쉬르레알리스트 (초현실주의) 풍의 그림을 덧붙여 보관한다.

1981년 라캉의 사망 후 이 그림은 부인 실비아 바타이에게 넘어갔고 그녀는 사망하는 1993년까지 이 그림을 소장했다. 이후 오르세 미술관에 넘어가게 된 이 그림은 1995년부터 이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 그림이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공개된 것은 1988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에서이다. 이어서 1992년에 쿠르베의 고향인 프랑스 오르낭(Ornans)에서 두 번째 전시가 이루어진다. 19세기 중반에 그려진 그림이 결국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된 셈.

여러가지 이야기를 남긴 이 그림이 최근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그림의 모델이 된 여자의 얼굴 부분에 해당하는 그림이 발견되었다는 주장이 나와 파리 미술계가 다시 술렁이고 있는 것. 7일자 주간지 <파리 마치(Paris Match)>에 실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10년 1월, 한 미술애호가가 골동품 상가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처박혀 있는 19세기 경에 그려진 듯한 한 여인의 얼굴 그림을 1400유로에 구입했다. 그 미술애호가는 머리가 뒤쪽으로 기울어지고 입술이 반쯤 열려있는 나른한 모습의 이 여자의 그림이 뭔가 심상치 않다고 직감으로 느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그림 틀이 잘려진 흔적으로 보아 어떤 대형 그림의 일부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 두 번째로는 그림 뒤에 물감 상점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확인 결과 19세기 후반에 파리에서 존재했던 실제 물감 상점이었다. 물감 상점이 존재했던 때는 쿠르베가 활동했던 시기와 맞아 떨어졌다.

자신의 직감이 맞아떨어졌다고 흥분한 그는 2년에 걸쳐 쿠르베의 그림을 하나하나 연구한 결과 자신이 산 작품이 문제의 '세계의 기원'의 얼굴 부분에 해당하는 그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이어서 그는 전문가의 의견을 수집했다. 이 그림을 접한 쿠르베 전문가인 페르니에(Fernier)는 '수십 개의 가벼운 붓 터치가 쿠르베의 터치는 아니지만' 조사를 계속해보라고 권했다. 여기에 힘을 얻은 미술애호가는 다시 여러 전문가들에게 X-Ray 조사를 포함한 전문적인 조사를 의뢰한 결과 놀라운 결과를 얻는다. '색소와 아마포로 된 캔버스 질, 붓의 털 재료 등 모든 게 쿠르베의 그림과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미술 전문가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우선 쿠르베 그림의 여자 하체부분과 새로 찾았다는 얼굴 부분의 기울어진 각도가 일치하지 않고 쿠르베의 그림 틀은 잘려져 나간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가들의 조사라는 것도 '편파적이고 충분한 근거가 없는' 조사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오르세 미술관 측에서도 "완전히 지어낸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쿠르베의 이 그림은 여자의 성기만을 포커스화 해서 사실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는 점으로 세계 미술사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한 여자의 대형 누드 그림의 하체 부분이라고 한다면 이 그림의 가치가 현저히 훼손되게 된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그림 주인공 모델의 익명성이 이 그림의 가치를 높이고 있는데 만약 그림의 얼굴을 알게 된다면 익명성에서 오는 특이성과 작품이 가지는 신비로움을 잃게 되는 단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의 기원' 모델은 누구?

지금까지 이 그림의 모델과 관련 여러가지 설이 제기됐다. 그 중에 아일랜드 미인인 '조아나 히페르만'(Joanna Hifferman)일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애칭 '조'로 불렸던 조아나는 미국 화가 제임스 휘슬러(James Whistler)의 애인으로, 휘슬러가 쿠르베의 친구였던 탓에 쿠르베와 연을 맺게 된다. 조는 쿠르베가 1866년에 그린 '아일랜드 미인 (La belle Irlandaise)'의 모델로, 쿠르베와 연인관계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1866년 '세계의 기원' 그림이 그려지고 같은 시기에 휘슬러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쿠르베와 절교를 한 사실로 보아 조가 모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힘을 얻게 된 것.

그러나 또 다른 측에서는 '세계의 기원' 모델이 이 그림을 주문한 외교관 칼릴-베의 애인이라는 설도 있고, 또 다른 쿠르베 그림의 전문가는 모델의 배가 살짝 나온 점으로 보아 모델이 당시 임신 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설도 있다. '세계의 기원'이라는 작품명이 임신에서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실제 '세계의 기원'이라는 작품 제목은 나중에 붙여진 이름으로 쿠르베는 자신의 그림에 '에뛰드(Etude, 습작)'이라는 단순한 제목을 붙였다.

이렇게 유명 화가의 일부 작품에 대한 논란은 미술사에서 끊이지 않고 제기됐다. 반 고흐의 자화상으로 알려진 노란 밀짚모자 쓴 자화상 두 개 중에서 하나는 동생인 테오일 것이라는 논란이 있는가 하면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제 2의 모나리자라는 설도 있다. 이는 결국 다빈치가 자주 썼던 수푸마토 기법이 없는 점으로 보아 다빈치의 제자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스위스에 있는 '모나리자 파운데이션'은 2003년부터 또 다른 모나리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모나리자는 같은 모델로 루브르의 모나리자보다 10년 전에 그려져 훨씬 더 젊은 모습을 띠고 있지만 뒷배경은 상당히 다르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다빈치의 제2의 모나리자라고도 하고 일부는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맞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여기저기에서 모나리자가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나리자가 유명세를 톡톡히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쿠르베 사건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만약 이 그림이 쿠르베의 그림으로 판단되면 그림 가격이 4천만 유로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1400유로의 그림이 갑자기 4천만 유로로 둔갑할 수 있는 상황, 이게 현 미술계의 현실이다.


태그:#쿠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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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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