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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 샷시로 지어진 좁은 가게 안에서 박일등씨가 구두를 닦고 있다. 그는 쉴새 없이 드나드는 서민들과 소통하며 애환을 듣는다.
▲ 구두닦이 부끄럽지 않아요 알루미늄 샷시로 지어진 좁은 가게 안에서 박일등씨가 구두를 닦고 있다. 그는 쉴새 없이 드나드는 서민들과 소통하며 애환을 듣는다.
ⓒ 허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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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엄연히 편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구두닦이를 천직으로 아는 박일등(50)씨는 이런 편견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늘도 경기도 광주시 번화가의 한 모퉁이를 지키고 있다.

광주시 경안동 K클리닉 앞. 알루미늄 샷시로 조립된 작은 가게는 그의 사업장이다.

"제 직업이 구두닦이인데 많은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저를 바라보더군요. 직업과 학벌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세상을 저는 바꿔보고 싶어요."

다소 야위고 작은 체구에 인상이 좋아 보이는 그는 바쁘게 구두를 닦으면서도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깍듯이 인사한 뒤 잠깐 기다리는 동안 즐거운 말동무가 돼 주기도 한다. 그가 내뱉었던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눈에 띄었다. 좁은 가게의 벽에 자신이 직접 출마했던 국회의원 후보자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지난 4·11 총선 당시 그는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 포스터 속의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계란을 하나 들고 지지를 호소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 중졸 최종학력에 길거리 구두닦이 신분으로서 무모한 도전 같았다. 하지만 그는 "정작 저만큼 밑바닥을 살아가는 서민을 많이 만나는 사람도 없다"며 낙선을 아쉬워했다.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있는 자, 배운 자만 권력을 가져야 하고 정치하라는 법은 없어요. 저는 서민의 편에서 일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의 도전은 지난 총선이 처음은 아니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그는 시의원에 처음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기도 광주시 나선거구(광남동·경안동)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정당 공천을 받은 후보들과 경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제가 약자 편이라는 것을 알고 시민들이 많이 호응했습니다. 앞으로도 제 뜻을 관철시킬 때까지 신문고를 계속 울릴 것입니다."

1등 해본 적 없어 '일등'으로 개명

박일등. 그의 이름이 특이해 물어보니 2010년 6·2 지방선거 후 개명했다고. 그러나 처음에는 더 유별나게 이름을 지어 개명하려 했단다.

"법원에 '박구두닦이'로 개명신청을 했더니 기각됐어요. 이유는 특정 직업을 뜻하는 명사라서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당시 판사는 좋은 이름이 있는데 왜 개명하려고 하는지 의아해 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그가 어릴 때부터 불린 이름은 윤호였다. 2010년 지방선거 때도 박윤호라는 이름으로 출마했다. 나도 황당해 이름이 '구두닦이'가 뭐냐고 반문할 정도.

"광주시민들이 모두 저를 구두닦이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윤호'를 버리고 시민들에게 친근한 자신의 직업을 이름으로 부르려고 했던 것이다. '박구두닦이'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다른 이름을 지어 개명 신청했다. 바로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박일등(朴壹登)'이라는 이름이었다. 개명 사유는 '평생 1등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름만이라도 1등으로 불리며 살고 싶다'고 적었다. 결국 판사는 더 이상 이의를 달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는 구두방에는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와 인터뷰 하는 동안에도 쉴 틈이 없었다. 뒷굽 갈기 등의 가벼운 수선은 금방 뚝딱 끝내며 광택까지 내 돌려줬다.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선비는 1만 원을 넘지 않을 정도로 몇천 원 단위의 거래였다. 아주 가벼운 수선은 아예 돈도 받지 않았다. 완벽하게 수리된 신발을 신고 나가는 손님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면 그는 "박일등입니다"라고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 삼아 주지시켰다.

너무 배고파 프로권투 선수의 길로

낮 동안 구두닦이 일이 끝나면 저녁에 그는 체육관 관장으로 변신한다. 한때 그는 프로 권투선수였다.

"어릴 때 너무 가난하게 자라 못 배우고 못 먹어서 권투를 배우게 됐지요."

그는 1963년 전남 강진군에서 7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땅 한 평 없는 빈농으로 머슴살이를 했으나 가족을 배불리 먹이지는 못했다. 고향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부산에 나가 국수공장에 취직했다. 국수를 실컷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취직했지만 겨우 배고픔을 면할 정도였다. 자투리로 버려지는 국수 가닥을 눈치껏 주워서 삶아 먹고 일하며 밤에는 권투를 배우러 체육관에 다녔다. 운동을 시작한지 1년 만에 부산시선수권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감격도 맛봤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낮에는 신문, 밤에는 껌을 팔면서 권투를 계속 배워 1981년 프로복싱 MBC신인왕전 3위까지 올랐다. 그때 그는 서울 장충체육관에 가서 시합을 치렀다. 당시 처음으로 서울 구경도 하면서 그는 무엇보다도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이 부산과 너무 다른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프로복싱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가서 배워야 한다고 결심하고 곧바로 상경했다. 기차표를 살 수 없어 무임승차로 서울역에 도착한 그가 우선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구두닦이였다. 그것도 결코 녹록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은 구두 닦을 손님이 없어 비닐우산을 팔러 다녀야만 했고 리어카에 노래 테이프를 싣고 다니며 팔기도 했다.

한편, 체육관에 다니며 권투도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고기를 먹지 못해 10라운드 경기에서 4라운드만 뛰어도 현기증이 났다고. 초반전에는 기술적으로 상대 선수를 압도하면서도 후반전에는 얻어맞기 일쑤였다. 그래서 큰 대회에 여러 번 출전했지만 챔피언 자리까지 오른 데는 실패했다.

"고기를 먹지 못해 약한 몸이 운동하면서 땀을 많이 흘리니까 더 약해지는 겁니다. 정육점에 가서 비계도 아닌 기름 덩어리를 얻어다가 콩나물과 같이 삶아 허기진 배를 채운 적도 있습니다. 콩나물도 시장에서 팔지 못하고 며칠 지나서 억세게 자라서 버린 것을 주운 것이었지요. 기름에 삶은 콩나물을 먹고 운동해도 여전히 현기증이 났습니다."

정치가 꿈, 포기할 수 없어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번화가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박일등 씨의 노점. 그는 손재주가 좋아 도장까지 새긴다.
▲ 시민들에게 친근한 구두수선가게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번화가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박일등 씨의 노점. 그는 손재주가 좋아 도장까지 새긴다.
ⓒ 허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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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국가의 부름을 받고 방위병으로 복무하는 동안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를 만나 아기를 갖게 됐다. 제대한 뒤에는 운동을 포기하고 가장으로서 호구지책을 위해 구두닦이를 다시 시작했다. 3~4년 동안 구두닦이를 성실히 해서 돈을 번 후에는 체육관을 차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권투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렵게 체육관을 운영하던 그는 10년 전 다시 구두닦이로 돌아왔다. 당시 불면증과 급격한 시력저하로 고통을 겪던 중 체육관에 나오는 어느 목사의 권유로 기독교에 귀의했는데 그 후 신비한 체험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교회에 2개월 가까이 다니는 동안 구두닦이를 하라는 음성이 들렸는데 자세하게 위치까지 알려주더군요. 꿈에서 깨어나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체육관은 어떻게 하냐고 만류하는 바람에 엄두를 낼 수 없었죠. 그런데 6개월 가까이 이런 꿈을 반복해서 꾼 거예요."

그래서 경기도 광주 K클리닉 앞 그 자리에 구두수선 가게를 열게 됐단다. 정치가로 도전하게 된 계기는 고객들의 부추김 때문이기도 하고, 아주 어린 시절의 꿈이기도 했다고.

"어릴 때 정치가가 되고 싶었죠. 너무 가난해서 잊고 지냈는데 지역의 어르신들이 제게 '너 같은 놈이 광주의 진정한 일꾼이 돼야 한다'고 하셨죠. 그분들이 저에게 잊어버린 어린 시절 꿈을 일깨워주신 겁니다."

고학력시대에 화려한 경력자들 틈바구니에서, 그것도 정당의 지원 없이 구두닦이가 벌이는 정치적 도전은 여전히 무모한 꿈이었다. 그래도 그는 언젠가 1등으로 당선되겠다는 꿈을 간직한 채 고객에게 습관처럼 외치며 작별인사를 했다.

"박일등입니다!"


태그:#박일등, #구두닦이, #경기도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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