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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축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유리상자의 <신부에게>에는 "그대도 나도 아닌 다른 이유로 아파해야 했던 날"이란 노랫말이 있다. 상대방도 나도 잘못이 없는데 '제3의 무엇'으로 애정 관계에 이상을 겪었다는 이야기다. '제3의 무엇'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대대로 원수인 집안 내력일 수도 있고, 알고 보니 친남매라는 막장 드라마식 출생비화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잘못 없는 당사자들로서는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일 테다. 

이런 일이 비단 사랑의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교직사회에서도 '그대도 나도 아닌 다른 이유'로 충돌하며 괴로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아래 영전강)들과 정교사들이 바로 그렇다.

어륀지 정책 속에서 탄생한 '영전강'

영전강은 '오렌지(orange)'를 '어륀지(orange)'로 발음하며 영어몰입교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영어수업을 담당하기 위해 등장했다.
 영전강은 '오렌지(orange)'를 '어륀지(orange)'로 발음하며 영어몰입교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영어수업을 담당하기 위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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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전강' '스포츠 강사' '전일제강사' '수준별강사' '인턴교사'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이명박 정부 아래서 탄생한 이른바 'MB표 신종 비정규교사직'이라는 점이다. 특히 영전강은 '오렌지(orange)'를 '어륀지(orange)'로 발음하며 영어몰입교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늘어난 영어수업을 담당하기 위해 등장했다.

영전강은 수업 외에 영어캠프 주관·원어민 관리 등 업무를 한다는 점에서 시간강사와 다르고 영어와 무관한 업무는 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간제교사와 다르다. 이명박 정부 이전에 현장 교사들은 이런 유형의 교사직을 경험한 일이 없었다. 정교사들이 영전강에 대해 미처 고민해볼 시간적 여유도 갖기 전에 2009년 9월, 1350명의 영전강들이 교육청별로 선발돼 일선 학교에 배치됐다. 그 수는 2010년엔 4731명, 2011년에는 6255명이 됐다. 그리고 2012년 현재에는 총 6104명이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이다.

영전강들이 학교에 들어온 지 3년째인 2011년 11월, 정부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사회 곳곳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공공 부문이 먼저 나선 것이다. 이에 조리사·사서 등 학교 비정규직들은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이 됐지만 영전강은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영전강과 기간제교사 등은 학교 내 비정규직이긴 해도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간 예외사유에 해당한다는 게 교육당국의 설명이었다.

이에 영전강들은 납득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내고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제외된 기간제교사들이 묵묵히 교과부의 결정을 수용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영전강 전북지부 대외협력실장 김현곤씨는 "기간제교사와 영전강은 고용 형태와 업무 특성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씨에 따르면 기간제교사는 정교사의 휴직 등을 대체하기 위해 정해진 기간 동안만 근무하는 교사이므로 정규직 전환은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또 무기계약직 전환 문제에서는 '상시·지속적 업무'가 가장 중요한 요건인데, 기간제교사직은 정교사가 복직하면 일자리가 사라지므로 지속성이 없다. 반면, 영전강은 누군가를 대체한 교사직이 아니다. 또 기간제법 등에서 업무 지속성의 시간적 기준은 '2년 초과'인데 앞으로 영전강은 한 학교에서만 8년까지 계속 근무할 수 있게 됐으니(교과부가 10월 발표) 업무의 지속성이 입증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이에 김씨는 "따라서 영전강은 기간제교사와 달리 정규직화가 가능하며 영전강 제도가 폐지된다고 해도 2009년 정부를 믿고 교직사회에 들어와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는 6100명에 대해서는 무기계약직화 등의 방법으로 고용안정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영전강협의회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MB표 비정규교사는 '수업하는 회계직'

한편, 김씨는 영전강의 무기계약직화에 대한 또 다른 근거로 "영전강은 교사직이 아닌 학교 회계직"인 점을 들었다. 그러니 조리사·사서와 같은 다른 회계직들이 모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데 영전강만 제외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실제로 영전강은 주요 업무가 수업임에도 교사직이 아닌 회계직으로 분류돼 있다. 수업하는 회계직. 희한한 분류가 아닐 수 없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교직사회에서 비정규교사란 휴직을 대체하거나 한시적 교과를 담당하는 기간제교사와 단 몇 시간의 수업만 하는 시간강사가 전부였다. 일반 기업에서처럼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교사가 학교사회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상당수의 사립학교들은 이 원칙을 위반해왔지만, 적어도 공립에서는 이 같은 비정규교사는 아예 존재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 추진을 위해 교과부는 일반 기업에서와 같은 개념의 비정규교사직을 학교에 투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대체 인력 아닌 비정규교사를 채용할 근거 규정이 없었다. 이에 교과부는 놀라운 결정을 내린다. 그것은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자체를 수정해 영전강이라는 새로운 비정규교사직을 학교 회계직 중 하나로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수업하는 비정규 회계직 학교 노동자' 영전강은 그렇게 탄생했다. 마치 돌연변이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황당한' 분류가 현재의 영전강들에게는 의외의 복병이 되고 있다. 그 출생배경이 어찌 됐든 영전강은 '회계직'이므로 "같은 회계직이니 우리도 무기계약직화 해달라"고 주장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전강 중 1400여 명은 현재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 가입해 다른 학교비정규직들과 함께 영전강의 교육공무직화를 통한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다.

영전강의 정규직화, 교원임용 정책의 근간 흔들 수 있어

현재 영전강 중 1400여 명은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 가입,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현장 정교사들의 반응은 '절대 반대'다.
 현재 영전강 중 1400여 명은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 가입, 정규직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현장 정교사들의 반응은 '절대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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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전강의 이러한 주장에 대한 현장 정교사들의 지배적인 반응은 '절대 반대'다. 현직 초등교사인 이아무개(38)씨는 "공립 정교사가 되려면 임용고사라는 최소한의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영전강들을 정규직화한다면 힘들게 임용고사 보고 정교사가 된 이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며 "비정규직 보호라는 이유로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현직 중등교사 김아무개(33)씨도 "교육학 수업 한 번 안 들어본 영전강들도 적지 않은데 영어 하나 잘한다고 초·중·등 정교사가 될 수 있다면, 도대체 교대나 사범대·교육대학원과 교직이수과정 이런 것들은 왜 있느냐"며 "이들이 정교사가 되는 순간 우리나라의 교원정책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범대 및 교대에 재학 중인 예비교사 대다수도 같은 입장이다. 춘천교대 출신의 임용고사준비생 김아무개(25)씨는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는 영어전문강사가 필요하지 않다"며 "2006년부터 교대에서는 영어교육을 강화해왔고, 임용고사 2차 시험에서는 영어 인터뷰와 영어수업 실연이 있기 때문에 최근 배출되는 신규 초등 교사들의 영어 실력은 상당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교사들의 조직인 한국교총이나 전교조, 그리고 전국교대생협의회 등도 영전강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있다. 특히 전교조는 학비노조와 전기협을 지지하는 것과 달리 영전강의 정규직화에 대해 반대 성명까지 발표했다. 지난 10월 17일 전교조는 보도자료를 통해 "영어회화 전문강사가 고용 불안에 내몰린 비정규직인 것은 맞으나 이들의 정규직화가 답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의 본질은 '비정규직 보호'가 아닌 '교육과정 파행 운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전교조는 "안타깝지만 영어회화 전문강사제도는 이제라도 폐기돼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안타까운 싸움은 누구 때문? 응답하라 MB!

또 다른 비정규교사직, 기간제교사들의 조직인 전기협의 공동대표 김민정씨(30)는 "영전강들과 정교사(사범대·교대생)들 간의 갈등에는 '영어몰입교육'과 '교원선발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이 섞여 있다, 하지만 갈등의 핵심에 놓인 것은 '밥그릇'"이라며 "그런데 한정된 정교사 자리라는 밥그릇을 놓고 벌어진 이 싸움에 대해 어느 쪽에게도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양측 모두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2009년 이명박 정부와 교과부를 믿고 교직사회에 발을 디딘 영전강들을 교직사회에서 내모는 것은 이들의 믿음을 배반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이들을 정규직화한다면 임용고사 선발 인원이 감소해 예비교사들의 믿음 또한 배반하는 일이 된다"며 "영전강 정규직화 문제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둘 중 어느 한쪽은 상처를 입게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문제는 이것이 영전강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스포츠강사' '전일제강사' '수준별강사' 등 역시 이명박 정권 아래 탄생한 '신종 비정규교사'들이다. 이들 역시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다른 회계직과 비교해 차별인 것이고 정규직화(무기계약직화)를 한다면 임용고사를 통과한 다른 정교사들에게 차별인 셈이다. 또, 예비교사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꼴이 된다. 결국 2009년 교과부가 해당 법률까지 바꾸며 무리하게 교직사회에 신설한 'MB표 비정규교사직'의 문제는 교직사회 구성원들 간 갈등을 조장하고 해법을 찾을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을 초래했다.

현재의 영전강 문제에 대해 명확한 해법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2009년 영전강이라는 비정규직교사직을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이들은 지금의 난국을 조금이라도 예상했을까? 그들은 지금의 교직사회 내 노-노 갈등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응답을 듣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교육희망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영전강 정규직화, #영어회화 전문강사, #스포츠 강사, #MB표 신종 비정규교사, #무기계야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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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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