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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마동욱(54). 그가 4번째 사진집 <탐진강의 속살>(호영)을 펴냈다.
▲ 사진작가 마동욱 사진작가 마동욱(54). 그가 4번째 사진집 <탐진강의 속살>(호영)을 펴냈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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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탐진강과 처음 인연을 갖게 된 것은 지난 90년도였다. 장흥지역을 사진에 담겠다며 장흥군의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자주 탐진강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탐진강을 알아갔지만 탐진강을 속살 깊이 애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강의 풍광이 아름다워 종종 몇 컷을 담았을 뿐이었다." - '작업노트, '탐진강의 속살' 몇 토막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1988년부터 고향 장흥을 사진에 담고 있고, 수차례 고향 사진전을 열고 있는 사진작가 마동욱(54). 그가 4번째 사진집 <탐진강의 속살>(호영)을 펴냈다. 이 사진집에는 고향 장흥뿐만 아니라 탐진강을 따라 장흥과 서로 살갑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영암군, 강진군이 지니고 있는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사진집이 지닌 깊은 정과 빛나는 아름다움은 잘 찍은 사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영암, 장흥, 강진, 이 3개 군을 담은 사진 곳곳에 시인과 기자들이 길라잡이처럼 적어놓은 정겨운 글들도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며 읽고 바라보는 이 글과 사진들은 어떤 때는 시로, 어떤 때는 수필이나 소설로, 어떤 때는 소꿉동무나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으로 슬며시 다가선다.

사진작가 마동욱은 <탐진강의 속살>을 펴낸 뒤 지난달 19일 장흥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탐진강의 속살 사진집 출판기념식' 및 사진전시회도 함께 열었다. 이 사진 전시회는 21일까지 3일 동안 열렸다. 25일에도 강진읍 강진아트홀에서 '탐진강의 속살 사진집' 2차 출판기념식과 함께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작가 마동욱은 지난 9일 전화통화에서 "1992년 고향에서 사진전을 열고 난 뒤 서울에서 고향사진전을 열 때 참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고 입을 뗀다. 그는 "나는 내 고향마을을 사진에 담아 널리 알리고 싶었다"며 "하지만 언론들은 점점 빠르게 사라지는 우리 고향마을 이야기를 기사로 쓰는 게 아니라 댐 건설로 물에 잠기는 마을과 마을사람들 이야기만 잔뜩 썼다"고 아쉬워했다.

살아 꿈틀거리는 탐진강, 그 속살 드러내다

책장을 넘기며 읽고 바라보는 이 글과 사진들은 어떤 때는 시로, 어떤 때는 수필이나 소설로, 어떤 때는 소꿉동무나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으로 슬며시 다가선다
▲ 마동욱 네 번째 사진집 <탐진강의 속살> 책장을 넘기며 읽고 바라보는 이 글과 사진들은 어떤 때는 시로, 어떤 때는 수필이나 소설로, 어떤 때는 소꿉동무나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집으로 슬며시 다가선다
ⓒ 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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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읍 목리는 오랜 시절부터 제첩이 유명하여 섬진강 사람들이 목리를 찾아와 제첩 종패를 사갔다고 한다. 그러나 댐이 건설되고 난 후 갯벌에 넘쳐났던 어패류와 물고기들이 급속하게 줄었다는 지역주민들의 전언이다. 나는 이러한 탐진강의 풍광과 역사와 변화 그리고 강의 기슭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20여 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아왔다." - 5쪽

사진집 <탐진강의 속살>에는 사진작가 마동욱이 20여 년 동안 찍어온 탐진강 모습을 한 자리에 모은 책이다. 살아 꿈틀거리는 탐진강, 그 속살을 제대로 보고 쓰다듬으려면 이 책 한 권이면 더함도 덜함도 없다는 그 말이다. 그 참! 부럽다.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을 떠돌며 식의주를 이어가던 그가 모든 것을 떨치고 고향에 내려가 장승처럼 버티며 고향을 떡하니 지키고 있으니….

나도 사진작가 마동욱처럼 지금은 사라진 내 고향 마을이 있었던 창원에 살면서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고향 흔적을 사진으로라도 남겼으면 참 좋겠다. 나는 민족 으뜸 명절이라는 설과 추석 때나 부모님, 장인 장모님 제사 때, 고향에 잠시 내려가 그 흔적을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이 대충 더듬고 오는 게 고작이었다.

<오마이뉴스>에 한동안 어릴 때 추억을 담은 고향 이야기를 어렴풋이 쓰기도 했지만 마동욱에 비하면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된다. '비음'이라는 닉네임도 내가 어릴 때 태어나 보고 자랐던 고향 산 이름을 따서 쓰곤 있지만 고향을 위해 내가 한 일은 별로 없다. 나를 낳아 길러준 내 고향 창원에게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빈다.

사진작가 마동욱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더욱 부끄럽다. "댐 건설 전과 댐 건설 이후 탐진강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탐진강은 장흥에서 강진까지 금가루 같은 고운 모래와 둥그런 자갈이 햇빛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던 아름다운 강이었다. 그러나 지금 탐진강은 모래 한 줌 자갈 한 알 찾아볼 수 없는 갈대와 버드나무 숲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그 말.

그래. 나는 고향 창원에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고향을 제멋대로 마구 부수고 짓밟을 때 무엇을 했는가. 지금도 쬐끔 남은 고향 흔적을 깡그리 집어 삼키고 있는 아파트…. 비음산 기슭에 FC축구장이 들어설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마동욱 사진집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저려오면서 콕콕 찔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탐진강은 '희로애락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

"지난 88년 서울생활을 접고 광주로 내려왔다가 1991년에는 다시 서울생활을 시작하면서 고향에서 멀리 비켜나 있었다. 하지만 도시생활이 삭막하고 황량하게 느껴질 때면 고향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처럼 항시 내 곁에 머무는 듯했고 나는 결국 운명처럼 돌아와야만 했다. / 고향… 그것은 나에게 거역할 수 없는 아늑한 태초의 자궁이며 드넓은 우주였던 셈이다." - '작가의 말' 몇 토막

이 두툼한 사진집 곳곳에서 윤슬을 톡톡 터뜨리며 흐르고 있는 탐진강 물줄기는 크게 세 곳이다. 강 나들목이라 할 수 있는 영암군에서 물꼬를 트기 시작한 탐진강, 강 배꼽이라 할 수 있는 장흥군을 안방처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는 탐진강, 강 꼬리라 할 수 있는 강진군을 아쉬운 듯 꼬옥 부여잡고 있는 탐진강이 그 강들이다.

시인 김선욱은 '살아있는 탐진강 재현으로 감동을 주다'라는 글에서 "이번 사진집에 실린 마동욱의 사진들은 정지된 그림으로서 모습이 아니다"며 "꿈틀거리며 생동하는 탐진강의 몸뚱이가 그대로 담겨 있다. 강은 끊임없이 살아 생동한다. 하여 일 년 365일 동안 내내 같은 얼굴은 없다. 마동욱은 탐진강을 보면서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기뻐하는 '희로애락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로 보았다"고 적었다.

사진작가 마동욱이 펴낸 <탐진강 속살>은 강 하나를 머리끝에서부터 배꼽을 거쳐 발끝까지(53km) 꼼꼼하게 칼라사진에 담은, 우리나라 첫 탐진강 길라잡이다. 이 사진집을 펼치면 한 사진작가가 탐진강 하나에 마치 목숨을 건 지리한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스스로 태어나 자란 고향을 둥지처럼 감싸는 탐진강. 그 탐진강을 마누라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작가 마동욱, 그는 지금도 탐진강 기슭을 천천히 거슬러 올랐다 천천히 거슬러 내려가고 있다.

사진작가 마동욱은 1958년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에서 태어나 1988년부터 고향인 장흥을 사진에 담고 있고, 수차례에 걸쳐 사진전을 열었다. 1995년에는 서울 양천구 지방선거 사진집 <뜨거운 함성>을, 1998년에는 장흥댐 수몰지역 사진집(김창남 글) <아 물에 잠길 내 고향>을 펴냈다.

2000년에는 러시아 블라디에서 뻬쩨르부르그까지 철길여행산문집(김선욱 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달린다>를, 2009년에는 전남 장흥군 마을과 사람들 사진집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를, 2010년에는 장흥 해당산업단지 조성으로 사라진 마을 사진집 <그리운 추억의 고향마을>을 펴냈다. 그는 지금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고향사진을 올리고 있다. '마동욱의 고향이야기'(http/blog.ohmynews.com/biccal).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태그:#사진작가 마동욱,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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