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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할 때 장인어른에게서 출장 다니느라 마나님 독수공방시키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정도로 해외 출장을 다녔다. 한달에 거의 한번꼴로 외국을 다닌 덕분에 여권은 출입국 도장으로 나중에 3권을 쓴다. 미국에도 가면서 입국 신고시에는 꼼수가 생겨서 어리버리한 신입 직원을 먼저 보내서 누구의 초청으로 왔고, 세미나 때문에 참석했으며, 결국에는 노트북까지 꺼내서 메일을 보여주고 겨우 통과한다. 나는 그 친구 바로 뒤에 들어가서 무슨 일로 왔느냐는 입국 심사원의 질문에 한마디만 한다.

"저 친구랑 같이 왔는데요" 통과~!

이처럼 넉살이 늘어난 것은 다년간 출장을 다닌 덕분에 쌓인 노하우였다. 하지만 나 또한 신입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어리버리한 출장 시절이 있었다.

95년에 입사해서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던판에, 어느날 갑자기 출장을 갔다 오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당시 초짜 신입으로서 연수가서도 영어 못한다는 한소리를 들었던 나로서는 국내도 아니고 일본으로 출장을 가란 소리에 일단 다리가 후들거렸다.

몇번이나 매니저에게 물어봤지만 출장은 너 혼자가야 한다는 소리셨다. 그리고 전해주시는건 달랑 호텔 주소와 연구소 주소. 그래도 초짜라고 호텔 예약같은건 전부 해주셨다. 일단 선배에게 우째야 할까요를 물어보니 선배가 자신있게 종이를 꺼내서 열심히 써주셨다.

"우선 공항에 내리면 세관을 가야해..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

이 말을 시작으로 공항에서 세관을 통과후 어디로 가서 전철을 타고 어디서 내리면 뭐가 보일테고 거기서 택시를 타면 어디로 가자고 해야 하고 어디로 가서 어디를 가면 호텔이 나올것이다. 호텔에서 나와서 전철을 타고 몇번 출구로 나가서 어디를 가면 연구소 일것이고, 거기서 어디서 등록하고 어떻게 하면 회의에 참석할 수 있을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외울 정도가 되었다.

자, 출발이다. 그래도 첫 해외출장인지라 옷가지들과 회의 자료와 시스템을 다 싸니 짐이 한짐이었다.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이었다. 일본의 골든위크가 끝나는 날이었던지라 내 표는 확약된 상태가 아닌 대기상태였던것이다. 사람이 엄청나게 몰려 있는 공항에서의 내 상태는 그냥 혼란 그 자체였다. 이리저리 창구를 향해 뛰어봐도 오늘중으로는 일본 동경행을 탈 수 없다는것이었다.

그 순간,  내 눈 앞에 펼쳐진 3D 영상은 월요일 아침 회의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매니저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참석 못할 경우에 어떤 식으로 변화되어 호랑이가 되는지 확실히 보이는 것이었다. 이를 악물고 다시 가방을 질질 끌고선 창구마다 뛰었다. 무조건 일본행이면 남는표를 달라고 외쳐대자, 한장이 있다는것이다. 순간 광명이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다시 가방을 들쳐들고 열심히 뛰었다. 숨가쁘게 달려가서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탑승하고 자리에 앉자 겨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후엔 어여쁜 스튜디어스가 건네주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해외로 처음 가는 기분을 만끽하면서 깜박 졸기도 했다. 이후,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면서 이제 착륙한다고 한다. 이때부터 등골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저희 비행기는 일본 나고야 공항에 착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 나는 선배에게 A4용지 3장에 달하는 찾아가는 방법은 전부 동경 하네다 공항을 기점으로 한 것이었다. 눈앞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입국심사고 뭐고 어떻게 했는지 모른 채 정신을 차려보니 출국장을 나와 있었다.

시련의 시작이었다. 할 수 없다. 일단 정신을 차리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물어보자. 여행안내소라고 되어 있는 곳 아가씨에게 동경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자, 갸우뚱하면서 안내를 해준다. 나고야의 위치를 한국에 비유해서 간략히 설명하자면 서울을 가야 하는데 나는 부산을 간것이다. 그리고 가야 할곳은 한국으로 치면 수원 정도에 해당하는것이다.

일단 말이 잘 안 통하지만 우째 우째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나에게 갑자기 앞에서 아저씨 한분의 가방에 한국 회사 로고가 보였다. 헉!

"죄송하지만 한국분이시죠?"

맞다고 하셔서 붙들고 통사정을 했다. 제가 출장이 처음이고, 동경에서 하찌오지란곳을 가야 하는데 방법을 알 수 없다고 하자 그분이 웃으시면서 자기랑 같이 가자고 하신다. 머리가 나쁘게도 현찰을 찾아가지 않고 여행자수표만 들고간 나를 여행사로 데려가셔서 카드로 결재하는법과 신간선을 타는 방법, 동경까지 갈것없이 중도에서 내려서 갈아타면 원하는곳으로 갈 수 있다는등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면서 신간선을 타러가는 내게 손을 흔들어주셨다. 난생 처음 신간선에 몸을 싣고 다시 열심히 달려서 알려주신 역에 내려서 전철을 갈아타고 호텔에 도착한 것은 밤 12시 20분.

다행히도 아침에 연구소를 가는것은 열심히 적어온 컨닝페이퍼 덕에 무사히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연구소 풀밭에 앉아서 일본 담당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전날의 여정을 이야기 해주었더니 일본 담당자분은 눈이 동그래지신다.

"배상, 일본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막 웃으시면서 이야기 해주신다. 일본사람도 그렇게 찾아오기 힘들다고. 대단하다고 하신다. 결국 이 첫출장은 이제까지 기억에 남는 출장이 되었다. 외국에서 살아 돌아온 나 자신을 장하게 생각하면서.

덧붙이는 글 | 나의 황당 여행기 응모



태그:#출장, #여행,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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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마나님과 4마리의 냥냥이를 보필하면서 사는 한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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