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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검진 차 함께 치과에 들른 아내, 동병상련의 또다른 풍경
▲ 치과 풍경1 정기검진 차 함께 치과에 들른 아내, 동병상련의 또다른 풍경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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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다 청춘이냐.'

어제(1일) 오전 치과에 다녀오면서 떠올린 한 구절이다. 아니 치과에 갈 때마다 생각날 수 밖에 없는 명언 같다. 요즘 주치의로부터 치아 검진을 받고 있다. 1년 만에 다시 들른 치과. 치과에 들르기 전부터 두려움과 공포가 온몸을 엄습하면서 치료할 때 겪었던 아픈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것이다.

특히 잇몸치료를 할 때 느끼는 '드릴링(drilling)' 공포는 치과를 두렵게 만드는 주 요인이었다. 드릴이 모기 소리처럼 엥엥거리며 치아와 치아 사이를 오가며 신경을 건드릴 때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억 소리가 절로 난다. 주치의는 갱상도(경상도)가 고향이다. 서울에서 오래 살아온 그는 중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사투리를 쓴다. 그가 내게 문제의 드릴을 들이댈 때 상황은 주로 이랬다.

"아… 잇몸이… 마이(많이) 나쁘네예…. 간리(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아…."
"억…."
"아(입을 벌리라는 뜻)… 아, 아(입을 더 크게 벌리라는 뜻)…."
"억…."
"(엥~) 아…. 아프지예? 아…. 아플 낍니데이(아플 겁니다). 아…. 조금 아프지예? 아…."
"억…."
"(엥~) 양치 함(한번) 하이소. 청춘만 아픈 게 아이라예(아니랍니다). 아… 다 댓심더(됐습니다)."
"…."

치료시간은 짧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이 마치 긴 세월처럼 느껴진다. 발치를 할 땐 부분 마취를 해 고통을 못 느끼지만 잇몸치료를 할 때 마취를 하지 않아 생기는 짧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 체감고통은 두려움과 공포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글쓴이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치과의사다. 역설적으로 치과에 가는 날이면 치아가 좋은 사람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치복(齒福)이 '신체오복' 중에 하나이겠는가. 그래서 치료를 마치고 귀가하면서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별 거 아닌 듯 치과 출입을 두렵게 만드는 치과 풍경이다.
▲ 치과 풍경2 별 거 아닌 듯 치과 출입을 두렵게 만드는 치과 풍경이다.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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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복은 일반에 널리 퍼져 있는 '보통사람들의 오복' 중 하나다. 자기를 중심으로 부모복(동기복)으로부터 시작하여 남자에게는 처복이 중요하고 여자한테는 남편복이 중요한 건 물론이다. 그 다음에 결혼을 하고 나면 자식복이 있어야 할 것이며, 또 결혼을 하고 나면 재물복과 관복(官福)이 따라야 사회적 지위를 누리든지 돈을 벌어 잘살든지 할 게 아닌가.

부모가 속을 썩일 일은 드물지만 남편과 아내가 속을 썩이는 일은 비일비재하며, 요즘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게 어떤 이유에서든지 처복 내지 남편복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자식복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자식이 어떤 형편에서든지 효자·효녀 소리를 듣는 건 고사하고, 부모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등 패륜을 일삼는 모습 등을 보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것 같은 세상이다.

그래서 혈연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부모복과 처·남편복과 자식복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다. 또 문복(文福)이라는 게 있다. 글을 잘 쓰는 재주인 데 요즘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글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사람들 전부가 문복은 다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인복(人福)이라는 게 있다. 요즘 말하는 '인맥'이 그러하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줄 수 있다는 건 보통사람들이 흔히 누릴 수 있는 복이 아니다.

치과 드릴 등 치료 기기들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치료시 제일 무서운 게 드릴링 치료다.
▲ 치과 풍경3 치과 드릴 등 치료 기기들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치료시 제일 무서운 게 드릴링 치료다.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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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로부터 회자되고 있는 오복은 주로 이러하지만, 본래 오복(五福)이라 함은 중국 고전(書經의 洪範九疇)에서 말하는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이렇게 다섯가지 복이다. 즉 오래토록 부유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남에게 덕을 베풀며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삶을 용이하게 해 주는 게 앞서 언급한 일반적인 오복이며 치복은 강녕의 복 중에서 으뜸이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신체의 오복(치아, 눈 ,귀, 발, 생식기) 중에서 각자가 느끼는 정도에 따라 으뜸의 순위는 달라지겠지만 '잘 먹고 잘 사는(혹은 잘 먹고 잘 싸는)' 일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이라면 (음식을) 잘 먹을 수 있는 치아의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이 여겨지며 치복을 으뜸으로 치는 것이다.

자기가 태어나는 순간 바꿀 수 없는 두 가지가 부모와 나라라고 하는 데,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복조차 타고나는 듯 하다. 특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는 유전적 요인 등을 동시에 물려받게 됨으로 보통사람들은 부모복을 으뜸으로 치는 것 같다. 거기에 부모가 재벌이거나 경제적으로 넉넉한 재물을 지녔으면, 그 자녀들은 보통사람들이 겪게 되는 경제활동 보다 훨씬 더 수월한 삶을 살게 아닌가.

하지만 세상은 반드시 그러하지 않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가 장애를 겪을 수도 있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 등 재물로 인해 운명을 앞당기거나 험악하게 만드는 일은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재물이 반드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니란 말일까.

치과 한쪽 벽면을 장식한 치아 본,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고통이 절로 느껴진다. 아프다고 다 청춘이 아닌 듯
▲ 치과 풍경4 치과 한쪽 벽면을 장식한 치아 본,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고통이 절로 느껴진다. 아프다고 다 청춘이 아닌 듯
ⓒ 장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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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이들 출산 때문에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맨 처음 느낀 점은 '아들이냐 딸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한 신체를 타고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신생아실 바로 곁에 위치한 신생아 중환자(?)들 때문이었다. 그들 신생아들은 미숙아이거나 선천적으로 장애를 타고 났던 것이므로, 이들의 부모는 물론 아이들이 장차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처럼 태어나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다가, 보통 사람들처럼 죽는 게 결코 쉽지않은 일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숙명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보통 사람들처럼 건강하게 별 탈 없이 사는 강녕의 복이 재물이나 명예보다 더 나아보이는 것이다.

치과를 다녀오면서부터 아니 치과에서 느낀 작은 고통을 통해 새삼스럽게 오복타령을 늘어놓고 있다. 그 중에 치아관리는 건강관리며 우리 삶을 보통사람들 처럼 행복하게 만드는 필수적 조건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청춘들이 세상에 나가 겪는 아픔은 가슴이겠지만, 주치의의 우스갯소리처럼 나이가 들면서 겪는 아픔은 고장나기 시작한 신체의 일부분이다.

고사에서 말하는 유호덕, 고종명 즉 '남에게 덕을 베풀며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결코 쉽지않은 희망사항인 것이다. 따라서 아프면 다 청춘이 아니라 '소추(素秋, 청춘의 반대말)도 아프다'는 것이다. 주치의의 우스갯소리에 따르면 복이란 잘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타고난 복을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교훈 조차 너무도 평범하고 보통스럽다. 어쨌든 아프다고 다 청춘이 아니다.


태그:#치과의사, #치아 검진, #치아관리, #오복, #아프면 다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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