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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열린 “함께 나누는 문화예술”이라는 주제의 ‘크리에이터 토크’
 17일 열린 “함께 나누는 문화예술”이라는 주제의 ‘크리에이터 토크’
ⓒ 김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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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창의성의 시대, 문화예술의 미래'라는 주제로 2012 ARKO(한국문화예술위원회) 미래전략대토론회가 열렸다.

3부 "함께 나누는 문화예술"이라는 주제의 '크리에이터 토크' 시간에는 강은일 해금 연주가, 성석제 소설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안은미 현대무용가, 양성원 첼리스트가 참여했다.

이 세션은 '창의성'보다는 '소통'에 주안점이 맞춰진 토론이었는데, 첫 번째로 발표를 맡은 유일하게 예술가가 아닌 노소영 관장의 경우 세계적으로 소통의 성과를 이룬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성공 요인을 탈춤이나 마당극의 한국 원형 문화적 성격의 유사성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또 이후 각기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 '소통'에 이를 수 있는 자신들의 생각들을 전했다.

안은미 안무가
 안은미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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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특히 안은미 안무가는 속사포같이 빠르고 걸쭉한 특유의 입담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지난 2011년 초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할머니들을 만났는데, 그들이 일제 6·25를 겪고, 보통 아이를 여섯 명 낳고, 경제개발까지 거치며 몸에 많은 것을 껴안고 있고, 자신보다 더 춤을 잘 준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춤 추기가 싫어졌다고. 그 후로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식별하는 눈도 생겼다고 전했다.

참고로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공연이자 프로젝트로, 이는 안은미 안무가와 그의 무용단이 무작정 떠난 국내 자전거 국도 여행으로부터 시작됐다. 자전거 다섯 대와 차 두 대, 한 달 동안 서울 경기도를 제한 전국을 누비며 무작위로 할머니들을 춤추게 만들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아카이빙하는 프로젝트였다. 여기서 만난 220여 분의 할머니들의 솔로 댄스 영상을 추려, 공연 때 상영했고, 실제 영상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무대에서 안은미 무용단과 보조를 맞추기도 한 공연으로 완성되었다.

또한 안은미는 이날 노소영 관장이 발표한 싸이의 인기 요인에 대한 분석의 예를 들어, "싸이도 반은 진짜고 반은 가짜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역사를 분명히 젊은 아이들이 쓰게 될 것이고 그때 제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라며 춤을 단순한 현재의 순간이 아닌 역사적인 흐름 안에서 판단해야 정확하게 볼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할머니들의 춤에 대해 "팔을 뻗치는 춤을 통해서 인류가 살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설명하는 한편, 춤 하면 카바레와 같이 숨어서 추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등 춤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그동안 춤을 억압해 왔음을 지적했다.

안은미 안무가는 "할머니들에게 춤이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다면 지금의 춤은 "미디어 속에서 나온 춤만 춤이다"라 전하며 더 이상 춤을 배울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될 것이고, 자신같이 춤을 가르치는 사람은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는 농담 섞인 전망도 했다.

안은미 안무가는 '몸 박물관'을 제안했는데, 헌 건물에서 세계 모든 사람들한테 자신을 찍어서 보내게 해서 클릭하면 큰 스크린에 온통 춤을 추는 화면이 바뀌는 몇 만 명의 영상이 들어가는 박물관이다. 이를 미래 인류의 묘지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곧 이는 점차 부족해지는 인류의 묘지 대신 영상으로 그들을 보존하는 "그린 무브먼트(green movement)"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도 전했다.

마치 '몸 박물관'은 마치 춤 관련 유투브 채널을 스크리닝하는 장소로 생각된다. 또한 시간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에 영상 박물관이 많은 사람의 생전의 삶을 보존하는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성석제 작가
 성석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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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소설가는 "소설이라는 것은 문장으로 번역해야 하고 또 읽고 해석의 감각에 이르러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갖추고 있는데, 읽으려고 하지 않고 더더욱 읽으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며 소설을 통한 소통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북 콘서트 가면 왜 이렇게 말을 못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그 이유로 "소설가는 더듬거리고 또 생각을 많이 해서 자꾸 문장을 만들려고 한다"고 전했다.

한편 성석제 작가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다친 두 번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넘어져서 손가락 관절이 빠져서 고문의 느낌을 알게 됐고, 가슴을 핸들에 부딪쳐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진정 알았다며 타인을 이해하는 체험과 일종의 말이 갖는 의미를 설명했다.

문장을 통한 또 말을 통한 소통은 힘듦에도 불구하고 성 작가는 "작가들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은폐되어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문장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소통과 화합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굶어죽지 말고 쓰고 싶어 근질거리는 욕망에 충실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은일 해금연주자
 강은일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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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해금을 시작할 때 우리 것을 잘 모른 채 시작했다는 강은일 해금 연주자는 해금이라는 악기가 어디 서 있는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점차 다른 악기들과 음악과 만나며 모든 장르와 같이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우선 해금으로 무엇을 전할지에 대해 고민하던 중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표현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 당시 자신의 삶이 무엇보다 피폐해져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걸 잊게 해줬던 두 예술적 체험의 순간을 이야기했다.

어느 날 한 바이올린 공연을 보고 나왔을 때, 너무 기뻤고 그동안 내가 중요한 사람인 줄 아무도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는데, 그 공연을 통해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 또 작년 뉴욕에서 열린 교과부에서 하는 재능 나눔의 강연식 콘서트에 가서 말리 음악을 흑인 택시 운전기사가 틀었는데 굉장히 좋았다며 "예술이 삶과 가까이 있어야 하고 내 삶이 아름다워질 수 있고 그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예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6일 하이서울페스티벌의 한 프로그램에서, 딴따라댄스홀이 마련한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시민 참여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배워보는 시간이 열린 바 있다.
 지난 10월 6일 하이서울페스티벌의 한 프로그램에서, 딴따라댄스홀이 마련한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시민 참여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배워보는 시간이 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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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疏通)'은 한자로 풀면 '막힌 것을 트이게(疏)' 해 '통하게 함'(通)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수로'를 파다 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데, 곧 소통을 위한 '시간과 노력'이 소통이라는 글자에 전제되어 있다. 현대의 소통의 수로는 마치 막힘없이 뻥 뚫려 있는 것만 같다.

'인터넷 광랜'이란 몇 년 전 광고를 뒤덮던 문구는 지금은 "빠름 빠름 빠름"이라는 무선 인터넷의 문구로 바뀌어 나타난다. 우리는 이 유무선의 미디어 소통 경로를 통해 막힘없이 정보를 얻는 한편, 역설적으로 너무 많은 정보의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또한 필요 이상의 정보 섭취에 중독되어 있다. 여기서 예술은 '쉬운 소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정말 쉽지 않은 '수로 파기'의 소통 전략을 꾀하여야 하지 않을까.

'힐링'이 매우 흔한 단어로 손쉽게 마음과 몸을 치유할 수 있다는 식으로 우리 일상에서 관성화된 단어로 사용되는 것처럼 '소통'은 예술계를 떠도는 하나의 강박 같은 단어임에 틀림없다. 노소영 관장이 예로 든 <강남스타일>과 안은미 안무가의 프로젝트는 소통의 다른 경로를 이야기한다.

전자가 유투브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위계 없는 소통 채널을 통해 별다른 프로모션 없이 전 세계로 확산됐다면, 후자는 그녀 말대로 TV 3사 외에는 인터넷 같은 것도 활용할 줄 모르는 할머니들의 오지 같은 곳에서의 삶으로 어렵게 내려가 그들과 소통을 꾀하는 가운데 얻은 소통인 것이다.

자칭 B급 가수인 싸이의 '딴따라 정신'이 구현된 '강남스타일'이 국경 없는 말춤의 연대로 확산되는 가운데 이미 이 춤을 대규모로 따라하는 식의 광경은 사실 식상해진 바도 크다. 중요한 것은 말춤이 갖는 아이돌 군무의 로봇 같은 안무 대신 자유로운 춤사위의 규격화되지 않는 춤의 정신, 자유롭게 일상을 벗어젖힐 수 있는 몸의 자연스러움에서 도출하는 춤의 정신이라면, 이러한 대규모 모방 자체에 그치는 춤은 보는 사람에 따라 꽤 불편한 현상으로 체감되기도 한다.

할머니들의 춤에 깃든 삶의 이야기들은 그래서 그들 각자의 고유성과 특이성, 개성을 지닌 춤들이며 또 우리가 보지 못한, 또 미처 볼 수 없었던 춤이기도 하다. 예술에서의 소통이 우리가 이미 아는 것을 똑같이 마주하는 게 아니라면 소통은 이렇게 어렵게 얻어진다.

소통이 쉽게 말해 나에게서 너로 보내는 그 '무엇'이라면, 이 '무엇'은 나와 너가 다름을 전제해야 한다. 너로 인해 이 '무엇'이 변화함을 전제해야 한다. 반면 우리 사회의 소통은 같은 것을 함께 많이 공유하는 것 자체를 소통으로 놓는 경향이 크다. 나에게서 너로 가는 일방적인 메시지가 아닌 너에게서 듣는 힘겨운 듣기의 과정이 바로 소통이 아닐까. 곧 소통은 자신을 너에게 맞추는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쉬운 소통 대신 어려운 소통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통, #안은미, #노소영, #싸이,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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