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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생명의숲국민운동>은 7월부터 12월까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한국의 아름다운 숲' 50곳 탐방에 나섭니다. 풍요로운 자연이 샘솟는 천년의 숲(오대산 국립공원), 한 여인의 마음이 담긴 여인의 숲(경북 포항), 조선시대 풍류가 담긴 명옥헌원림(전남 담양) 등 이름 또한 아름다운 숲들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지키고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땅 곳곳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숲이 지금, 당신 곁으로 갑니다. [편집자말]
 하늘에서 본 죽림리 마을 전경, 중앙에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에서 일자로 늘어선 소나무들이 죽림리 마을숲이다.
ⓒ 진도군청 녹색산업과 제공

제 모습을 갖춘 숲은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치유의 물질 피톤치드를 뿜어내 상처받은 인간의 마음을 다독여 주고, 기꺼이 휴양림을 내주어 피곤한 도시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

그중 가장 고마운 숲은 인간과 가까이에서 공존하며 풍파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마을숲이 아닌가 한다. 마을을 공동체의 울타리로 엮어주며 마을 주민들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몇년 전 자전거를 타고 동해 바닷길을 달려가다 강릉에서 마을숲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해풍이 심하게 불어오는 마을 앞에 병풍처럼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 서있는 숲이 든든해 보였다. 주민들이 오랜 세월을 기다리며 조성한 방풍림 (防風林)이다. 그런 숲이 남해 끝자락 진도에 있다고 해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보았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 죽림리의 마을숲은 진도군 공용버스터미널에 내린 후, 터미널에서 다시 죽림리 강계마을행 버스를 타고 30~40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다.

 마을 주민 할머니께서 캐어온 야생굴을 쌀씻듯 씻고 있다. 거센 태풍이 왔던 바다라고 믿기지 않게 평온하다.
ⓒ 김종성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숲

인근 탑립, 강계, 동헌, 죽림 마을을 아우르는 동네 죽림리는 논과 밭이 어우러져 푸근한 농촌 풍경을 자아낸다. 찰랑거리는 남해바다는 정겨운 어촌 마을과 조화를 이룬다. 진도의 마을 곳곳을 누비는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마주친 건 조개잡이 체험으로 유명한 개펄이 있는 바닷가 죽림 해변. 

 죽림리 마을을 지키는 초병들처럼 든든한 마을숲 해송림
ⓒ 김종성

 주민들의 집 앞에 서있는 마을숲 소나무들이 철갑옷을 입은 용맹한 장수들 같다.
ⓒ 김종성

밭에서 배추를 돌보다 나오신 죽림리 이장님 말씀에 의하면, 임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 마을을 이루게 됐단다. 마을 할머니가 아침나절 물 빠진 개펄에 들어가 캐온 야생 굴을 소쿠리에 담아 바닷물에 씻는다. 아름다운 숲이 있는 마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어촌 풍경이다.

하지만 바닷가 저 멀리에서 소금을 머금고 불어오는 거센 바람 때문에 400여년 전 선조들은 200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조성했단다.

특히 강계마을처럼 바닷가 바로 앞에 집을 짓고 사는 주민들에게 이 마을숲은 더없이 든든한 존재다. 대문없는 집 마당에서 만난 동네 아주머니는 이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숲 공존상'을 받은 건 몰라도 어릴 적부터 태풍도 견뎌 준 든든한 존재라고 소개한다.

옆집에 사는 할머니에게 여쭤봐도 그렇고 대부분의 주민들에게 이 마을숲은 '아름다운 숲'이라기 보단 마을을 지켜주는 '든든한 숲'이었다.   

 근 400살이 된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세월의 무게와 연이은 태풍으로 그만 쓰러지고 말아 나무봉으로 받쳐 놓았다.
ⓒ 김종성

 가지가 부러지고 휘어진 몸통, 갈색으로 변색된 솔잎이 태풍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 김종성

연이은 태풍에 크게 다치고만 마을숲

하지만 400년 넘게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 마을숲도 얼마 전 한반도에 연이어 몰아쳤던 세 개의 태풍에 많은 타격과 상처를 입고 말았다. 굵은 나무 몸통은 비틀거리듯 휘었고 가지들은 부러져 나가고 소금기가 섞인 태풍에 초록의 솔잎이 갈색으로 변색됐다.

마치 외적을 맞아 용감하게 맞서 싸우다 여기저기 부상을 입고만 철갑옷을 입은 장수들 같은 모습이다. '아름다운 마을숲'을 상상하고 찾아갔던 나에겐 마음 아픈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올해는 볼라벤 태풍이 매우 혹독하고 거셌다고 죽림리 해변 보건소 소장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동네 주민들이 전날 인근 마을회관으로 피신을 갈 정도였다고 하니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란 짐작을 해 본다.

소장님은 태풍의 위력에도 마을숲 소나무들이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혀나가지 않고 저렇게나마 살아 남은 게 용하다고 하셨다. 진도군청에서 복구작업을 한다고 했는데도 마을 곳곳에 태풍의 생채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마을숲 뒤로 펼쳐진 죽림리의 가을 들녘도 사정이 비슷하다. 벼가 한창 노랗게 익어가야 할 들판이 노인의 머리칼처럼 하얗게 변했다. 이런 것을 '백수피'라고 들에서 마주친 할아버지가 알려 주셨다. 벼가 한참 익어갈 즈음 소금기 가득한 갯바람이 들이치면 이렇게 쓸모없는 벼가 된다고 한다. 가을 추수는 언감생심, 내년 농사를 위해 빚을 내서 이 백수피를 다 뽑아내야 한단다.

 태풍후에도 꿋꿋하게 논으로 일하러 나가는 죽림리 마을 주민들
ⓒ 김종성

 어느 집 마당에서 뛰노는 귀엽기만한 진돗개 새끼들, 커서는 마을숲처럼 이 마을을 지켜줄 것이다.
ⓒ 김종성

전통을 간직한 마을숲, 공동체를 이루다
  
농촌의 도시화와 이농현상으로 전통의 마을 숲들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도 죽림리의 마을숲이 오랫동안 주민들과 공존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렇게 혹독한 자연의 시련을 같이 겪으며 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점을 인정하여 2005년 이 마을숲을 '산림 유전자원 보호림'으로 지정하였고, 매년 병해충 방제 작업, 생육환경 개선, 외과수술, 고사지 제거 등의 관리를 하고 있다.

마을숲 빈자리엔 숲과 마을의 미래를 위한 여리고 앳된 소나무들이 심어졌다. 마을 집 마당에서 뛰놀고 있는 귀여운 새끼 진돗개들처럼 커서는 이 소나무들이 마을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하니 든든하기만 하다.

태풍과 수해라는 자연의 혹독한 고난속에서도 마을을 지켜 온 죽림리 마을숲. 마을 주민들의 숲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이 태풍 후에도 마을숲 보전에 대한 노력으로 변함없이 이어져가길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는 전국의 아름다운 숲을 찾아내고 그 숲의 가치를 시민들과 공유하여 숲과 자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대회로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주), 산림청이 함께 주최한다. 생명의숲 홈페이지 : beautiful.forest.or.kr | 블로그 : forestforlife.tistory.com



태그:#아름다운숲, #임회면 죽림리숲, #죽림해변,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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