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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서 자란 풋고추가 오른 오늘 점심밥상
 베란다에서 자란 풋고추가 오른 오늘 점심밥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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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을 안 쓴 고추라 그런지 정말 맛있네요."

아파트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밥상에 오른 고추를 양념 된장에 꾹 찍어 드시며 하는 말입니다. 이웃이지만 평소 별로 내왕이 없던 아주머니가 우리 집의 엄청나게 큰(?) 고추밭에 반해 점심 밥상에까지 함께 한 것입니다.

"에계계! 이게 고추밭이에요? 호호호, 그런데 고추가 정말 많이 열렸네요."

아내의 호들갑스런 자랑에 우리집 고추밭을 구경하자며 들어와 본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른 손가락만한 크기의 고추들이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살펴보고는 금방 표정이 변했습니다. 고추가 정말 많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추밭이라고 해봐야 지름이 제 손으로 두 뼘 정도 되는 작은 밭이지요, 전에 쓰다가 비어있던 화분이 고추밭이 된 것입니다. 고추는 겨우 네 그루가 서있지만 열린 고추는 30여 개가 넘습니다. 요즘은 아내가 가끔씩 싱싱한 풋고추를 밥상에 올립니다. 주로 점심 밥상이지요.

일주일에 10개씩은 따먹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열려있는 고추 숫자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계속 꽃이 피고 새로운 고추가 열려 자라기 때문이지요. 어때요? 이만하면 훌륭한 고추밭 아닌가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고추밭이니 언제든지 안심하고 따먹을 수 있는 풋고추들이지요.

고추밭에 번진 진딧물 손으로 직접 잡아 퇴치하다

15층 꼭대기 베란다 밖 에어컨 실외기 자리에서 자란 고추 4그루
 15층 꼭대기 베란다 밖 에어컨 실외기 자리에서 자란 고추 4그루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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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밭이 있는 곳은 15층 아파트 앞 베란다 밖 에어컨 실외기 자리입니다. 저희 부부는 모두 한 여름에도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기 때문에 처음 입주할 때부터 비워놨던 자리입니다. 텅 빈 옹기 항아리 하나가 외롭게 지키고 있던 자리에 고추밭이 생긴 셈이지요.

지난 5월 어느 날, 아내가 고추모종 네 그루를 사들고 왔습니다. 저는 그냥 저걸 어쩌려고 그러나 하고 지켜봤지요. 그런데 아내가 예의 쓰지 않던 화분에 고추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에어컨 실외기 자리에 있던 빈 옹기 항아리 위에 올려 놨습니다.

처음 심었을 때는 참 어설펐지요. 작은 고추나무들이 마냥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자 제법 크게 자라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관심을 두고 저녁이면 불을 주기도 하고 고추가 열리나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어설픈 고추밭에 10여 개의 작은 고추들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쑥쑥 자랐습니다. 앙증맞은 작고 하얀 고추꽃이 떨어진 자리엔 어김없이 작은 고추가 열렸습니다. 평소 베란다에 화초를 가꾸는 일은 거의 제몫이었지만, 채소를 가꿔본 경험이 전혀 없는 저에게는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모습이었습니다.

싱싱한 풋고추를 된장에 꾸욱 찍어서
 싱싱한 풋고추를 된장에 꾸욱 찍어서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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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층 아파트지만 지대가 높은 곳이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높이에서 고추들이 주렁주렁 열려 자라는 모습이 여간 신기하고 대견한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무렵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인가부터 고춧잎에 진딧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진딧물이 번져가면서 고춧잎과 꽃이 오그라들고 고추도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됐습니다. 깜짝 놀라 진딧물 퇴치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아내가 어디선가 알아본 처방은 담배 꽁초를 우려낸 물을 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뜬금없이 길거리의 담배 꽁초를 줍는 초라한 노인네가 됐지요.

지나던 사람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 것이 조금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골목길과 음식점 앞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 100여 개를 주워 우려낸 물을 고추밭에 뿌려줬습니다. 그렇게 몇 번...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웃집과 나눠먹고 가끔씩 밥상에 오르는 풋고추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식초를 조금 섞은 물을 뿌려주라는 글이 있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해봤지만, 역시 효과는 없고 고춧잎만 하얗게 마르는 역효과만 나타났습니다. 진딧물을 퇴치하는 농약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농약은 절대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베란다 밖 에어컨 실외기 자리의 작은 고추밭
 베란다 밖 에어컨 실외기 자리의 작은 고추밭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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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진딧물을 잡는 방법이지요. 당장 시작했습니다. 고춧잎에 붙은 진딧물을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마주 비벼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다행히 진딧물은 아주 약해 손가락으로 비벼주면 그대로 으깨졌습니다.

비록 네 그루밖에 안 되는 고추지만 그렇게 손으로 잡는 진딧물 퇴치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작업이 끝나면 물을 뿌려 씻어주는 방법을 하루 30여 분씩 3일 동안 계속한 끝에 진딧물을 모두 퇴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밥상에 오르는 싱싱하고 깨끗한 풋고추는 어쩌면 제가 진딧물을 직접 손으로 퇴치한 정성으로 얻은 소득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10여 개의 풋고추를 선물했습니다. 오늘 점심 밥상에도 4개의 풋고추가 올랐지요. 그럼 이제 고추밭엔 고추가 남아 있지 않겠다고요?  아닙니다. 아직도 고추밭에 20여 개의 고추가 주렁주렁 열려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개는 빛깔이 붉게 물들었답니다.

고추나무 아래쪽에 처음 열렸던 고추들이 그 사이 붉게 익은 것이지요,  비록 4개지만 싱싱한 풋고추가 오른 저의 점심 밥상 먹음직스럽지 않습니까? 내년에는 고추밭을 조금 더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태그:#고추밭, #풋고추, #베란다, #싱싱한, #진딧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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