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PR 유니폼을 펼쳐보이는 박지성

QPR 유니폼을 펼쳐보이는 박지성 ⓒ 이영현


박지성(31)이 7년간 몸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7위 팀 퀸즈파크 레인저스(QPR)로 전격 이적했다.

QPR의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 마크 휴즈 감독 등이 참석한 가운데 9일 오후 3시(현지 시간) 영국 런던 밀뱅크 타워에서 박지성 입단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현장에는 한국, 영국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전역에서 온 기자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일본과 중국 기자들은 아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현장에서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박지성을 맞이한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아시아의 대표적 저가 항공사인 에어 아시아(Air Asia)를 이끌고 있는 47세의 비교적 젊은 사업가로, 불과 11개월 전 QPR을 인수하였다. QPR은 지난 시즌 볼튼을 최종 라운드에서 간신히 제치고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한 리그 최약체 팀이다.

휴즈 감독은 "박지성 같은 훌륭한 선수를 영입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그와 함께 클럽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킬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이적료, 연봉 등 구체적 계약 조건과 QPR의 현실적인 내년 시즌 목표에 대해선 밝히기를 꺼려했다.

QPR의 새로운 리더 박지성... 등번호는 국가대표팀과 같이 '7번'

 박지성과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

박지성과 토니 페르난데스 구단주 ⓒ 이영현


한편, 기자회견에서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또 다른 1500만 파운드(약 266억 원)짜리 세계적 스타와의 계약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으며, 현재 2만 석이 채 되지 않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낡고 열악한 홈구장 신축 계획 역시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공식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와 한 개별 인터뷰에서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박지성이 등번호 7번을 원했고 휴즈 감독이 이를 받아들여 곧 최종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했다.

박지성은 기자회견 도중 여러 차례 "새로운 도전"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적 결심을 하게 된 배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향후 생활보단, QPR의 야심찬 계획과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역할에 더 끌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무엇보다 QPR이 자신에 제시한 오퍼가 좋았고, 맨유를 떠날 적절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QPR이 제시한 정확한 오퍼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고, 맨유와 작별하기 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뵙거나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박지성은 자신의 이적 결심이 얼마 전 열렸던 2002팀과 2012팀의 K-리그 올스타전 즈음이었다고 확인해주었으며, 우리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 감독뿐 아니라 구단주 역시 극비리에 한국을 몇 차례 방문해서 박지성 측과 만났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이적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집중하기 위해 단행한 국가대표팀 은퇴 결정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며 향후 대표팀 복귀 의사 역시 전혀 없음을 단호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휴즈 감독은 "클럽 매니저 입장에서 그의 대표팀 은퇴 결정은 당연히 환영하지만, 만약 그가 대표팀에 가야 한다면 막을 생각도, 막을 수도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퍼스트 클라스' 계약... 하지만 걱정스러운 몇 가지

 박지성과 마크 휴즈 QPR 감독

박지성과 마크 휴즈 QPR 감독 ⓒ 이영현


하지만 현장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박지성과 새로운 QPR이라는 팀에 대한 기대와 함께 몇 가지 우려스러웠던 점도 드러났다. 우선 구단주의 포부와는 달리 휴즈 감독은 능력 있는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QPR의 낮은 인지도, 이적 시장의 큰손인 빅클럽들과의 경쟁력 등을 감안해 볼 때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추가적인 한국 선수 영입 가능성 역시 아직은 구체적이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박지성이 기대하는 만큼의 구단의 전폭적 지원과 투자가 실제 이뤄질지 다소 회의적인 전망이 현장에서 만난 영국 기자들 사이에선 있었다.

기자회견 후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마크(가명, 37)씨는 기자에게 "페르난데스 구단주와 그가 이끄는 에어 아시아는 한국과 아시아에서의 비즈니스에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축구에 대한 애정보다는, 단기간에 삼성과 같은 글로벌 챔피언이 되는 것이 목표인 회사"라고 말했다. 그는 박지성의 QPR 이적에 대한 한국 언론과 팬들의 일반적 평가, 삼성과 첼시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에 대해 물어오기도 하였다.

사실 페르난데스 구단주는 기자회견 도중에 자신은 축구에 대해 잘 모른다며 관련 질문을 감독에게 모두 넘기기도 하였고 한국과 아시아 팬들에 대한 과도한 기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박지성 역시 "본인이나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몰랐던 QPR이 최근 며칠 사이 한국에서 아주 유명해졌다"고 거들기도 하였다.

박지성과 QPR을 향한 '시어머니' 같은 시선이 필요

 박지성을 응원하기 위해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

박지성을 응원하기 위해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 ⓒ 박성우


우려스럽게도, 만약 박지성이 기대하는 정도의 구단 투자와 팀의 실질적 성적 상승이 이루어지지 않고, 동시에 에어 아시아의 과도한 마케팅 전략만 두드러진다면, 맨유 시절 본인의 실력으로 잠재웠던 '티셔츠 판매용'이라는 비난을 본의 아니게 다시 들을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럼 점에서 박지성 역시 계약 기간을 당초 알려진 3년이 아닌 2년으로 줄인 것은 이러한 여러 사안에 대한 절충적 판단의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적료, 연봉 등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현장의 외신 기자들은 '아마 연봉보다는 에어 아시아의 광고나 박지성이 벌이는 재단 사업 후원 등 여러 가지 옵션 계약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사실, 맨유에서의 남은 계약 기간도 2년(옵션포함)이었으므로, 박지성 입장에선 주전 확보가 불확실한 맨유 선수로서 2년을 보내는 것보다는, 다소 모험스럽지만 주축 선수의 새로운 역할과 좋은 경제적 조건을 제공해준다는 QPR에서 2년을 보내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여겨진다.

20대 초 일본 J-리그 교토퍼플상가라는 2부 리그 팀을 성공적으로 탈바꿈 시킨 경험이 있는 박지성인 만큼, QPR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 종반부에 어찌 보면 유사한 도전을 시도해보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선수로서 박지성 축구 인생의 마지막 도전과 성공에 대한 최종 관건은, 전적으로 QPR 구단의 의지에 있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QPR이 박지성에게 제시한 구단 발전 비전을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는지, 또 박지성은 QPR의 리더로써 얼마나 팀의 발전에 기여하는지, 까다로운 시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QPR과 박지성을 매섭고도 따뜻하게 지켜봐야 할 팬들의 역할 또한 필요하다.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운 취재진

기자회견장을 가득 메운 취재진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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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문화연구자. 지역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함. 10여년 전 유학시절 <오마이뉴스>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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