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유망주 박병호. 신인 첫 해(2005), '유망주'라는 단어는 그에게 책임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망주라는 단어 앞에 '만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만년'이라는 단어는 그를 위축시켰다.

그는 항상 기대주였다. 다른 2군 선수들에 비해 기회도 충분히 얻은 편이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팬과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 트레이드 데드라인인 2011년 7월의 마지막 날. 그는 같은 넥센으로 트레이드 됐다.

트레이드 후 그는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넥센에서의 2달동안 무려 12개의 홈런을 몰아쳤다. 하지만 팬들에게 확실한 신뢰를 주기에는 지난 과거의 깜깜한 터널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 또 다른 검증이 필요했다. 2012시즌은 그가 진정한 프로야구 선수로 거듭나는 첫 시즌이었다.

김시진 넥센 감독은 시즌 전, 박병호를 4번 타자로 기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리적 부담 때문이었을까. 시즌 초반 그는 헛스윙을 내기 일쑤였다. 개막 한 달 동안 타율이 .214에 머물렀다. 하지만 5월 들어, 지난해 막바지 뜨거웠던 감을 찾기 시작했다. 5월 한 달 동안 7홈런 28타점을 몰아쳤다. 월간 타율 3할1푼3리.

그리고 6월의 꼬박 절반이 지난 15일까지, 어느새 그는 타점 공동선두까지 올라와 있다. 지난 17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그의 방망이는 뜨거워진 날씨 만큼이나 한껏 달아올랐다. 홈런을 포함해 2안타 3타점, 5경기 연속 멀티히트와 함께 데뷔 후 처음으로 타점 부문 단독선두에 올랐다.

0-2로 뒤진 1회 말 1사 2, 3루에 타석에 들어선 박병호는 송승준의 초구 커브를 받아쳐 좌중간을 가르며 원 바운드로 펜스를 넘기는 2타점 2루타를 쳐냈다. 커브가 가운데 높게 제구된 송승준의 실투였다.

2-2로 맞선 3회 말, 박병호가 두 번째 타석에 나섰다.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들어선 그는 송승준의 2구째 직구를 받아쳐 중견수 키를 넘기는 역전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14호 홈런. 지난 시즌 세운 자신의 한 시즌 최다홈런 13개를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날 3타점을 몰아친 박병호는 시즌 54타점째를 기록, 전날까지 공동선두를 달리던 동료 강정호를 제치고 타점부문 단독 선두로 나섰다. 이날 넥센은 롯데에 4-3 역전승을 거뒀다.

지난 시간의 설움, 올 한해에 날려버리리

박병호의 이날 홈런은 그가 올 시즌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기 충분했다. 우타자가 몸쪽 꽉 찬 공을 공략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왼쪽 팔꿈치를 얼마나 바짝 몸에 붙일수 있느냐의 여부다. 그나마 이를 장타로 연결시킬 수 있는 국내 우타자는 한화 김태균 정도다.

송승준의 140km 직구는 박병호의 몸쪽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박병호는 왼쪽 팔꿈치를 몸에 바짝 갖다 붙인 채, 팔을 제대로 펴지 못한 상황에서도 중견수 키를 넘기는 대형 홈런을 터뜨렸다. 공을 끝까지 밀어내는 팔로스로와 함께 박병호만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넥센은 1회 선발투수 벤 헤켄의 난조속에 끌려가던 경기를 박병호의 활약으로 접전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 승부는 롯데 유격수 양종민의 끝내기 실책으로 갈렸지만, 승리의 일등공신은 경기 초반 롯데의 분위기로 넘어가던 경기를 팽팽한 흐름으로 바꾼 박병호였다.

박병호는 시즌을 앞두고 부상없이 한 시즌을 치르는게 목표라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김시진 감독은 그를 붙박이 4번 타자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과연 아무 욕심이 없었을까. 자신은 있었지만 겸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박병호는 다짐했을 것이다. 지난 시간동안 자신을 따라다닌 '만년 유망주'의 설움을 날려버리겠다고. 박병호는 현재 타율 .293, 14홈런 54타점을 기록 중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32홈런 124타점 정도가 나올 수 있는 페이스다. 지난해까지 그의 통산 기록은 37홈런 112타점이었다. '산수'로만 계산하면 그는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닌 강타자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박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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