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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감기약 오용의 대표적 예는 '판피린'과 '판콜'입니다. 몸이 조금 뻐근하다 싶으면 수시로 판피린과 판콜을 복용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습니다. 심한 사람들은 판피린과 판콜을 매일 한두 병씩 먹어야 하루를 편안하고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분표를 보면 판피린과 판콜 어디에도 원기회복에 도움을 주는 성분은 없습니다. 다만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진통제 성분과 30mg의 '카페인'이 통증을 줄여 몸이 개운하도록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에서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생각비행 펴냄)의 한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시부모님의 수많은 약들이 생각났다. 제약회사의 약과 이름이 인쇄된 비닐봉투에 열댓 개씩 담겨져 있을 때가 예사인 판피린과 1000ml짜리 소화제와, 그리고 먹다 남긴 수많은 알약들과 조제약들, 마치 약국의 한 코너처럼 진열된 각종 영양제들이 말이다.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
ⓒ 생각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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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수많은 약들을 냉장고나 장식장 등에 구비해 놓고 자식들 중 누가 몸이 좀 피곤한 것 같으면 판피린을 먹으라며 주시는가 하면, 어떤 날에는"피곤할 때마다 먹어라"며 서너 개씩 쥐어 주시기도 한다.

또,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한 것 같으면 1000ml짜리 까스활명수를 내밀며 "반 컵 따라 마시고 그래도 안 들으면 반 컵 더 따라 마셔라"며 내밀곤 하셨는데, 때문에 한때 우리 아이들이나 동서네 아이들이나 걸핏하면 활명수를 음료수 마시듯 한 적도 있다. 

누가 감기기운이 있다고 하면 언제 먹다 남긴 약인지 모를 처방전 약을 내밀며 먹으라고 하시기도 한다. 실제로 감기가 걸린 아이에게 당신이 먹다 남긴 몸살감기약을 반절 덜어 먹인 적도 여러 번이다. 반절이라지만, 어른 약을 아이에게 먹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데, 먹다 남긴 감기약을 한 봉지에 모아 정리하시는지라 언제 조제했는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약을 말이다.

이런 시부모님께 청심환은 몸을 살리는 보약이자 온갖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다. 남편이 좀 힘든 것 같으면 어느새 사다 둔 청심환을 꺼내 와 선심을 쓰신다. 옆에 앉은 내가 뺏어 먹을까 "미루지 말고 어서 꼭꼭 씹어 삼켜라!" 재촉하시며.

"00이가 엄마 먹으라고 선물한 건데 엄마는 먹는 것도 아직 남았고 그래서 아껴 뒀던 거다. 하루에 한 알씩 꼭 챙겨 먹어라."

이처럼 선심 쓰시는 영양제나 비타민들을 여러 번 버린 적도 있다. 성분도 효과도 전혀 모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아마도 그 약을 선물한 사람이 한 알을 꺼내 먹게 하면서 개봉한 상태로 한참이 지난 것 같아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약물 오남용으로 죽음 직전까지 간 남편

이런 시부모님께 약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와 나이를 고려해 처방한 것이니 같은 감기에 걸렸다고 함께 먹는 것은 위험하다, 처방약 먹다 남은 것을 뒀다 먹는 것도 좋지 않다더라, 특히 어른 약을 아이들 먹이는 것은 위험하다, 영양제도 제대로 먹어야 도움이 되지 몸에 좋다고 아무나 먹는다고 좋은 것은 아닌 만큼 일단 약국에 가져가 어떤 약인지 알아 본 다음 먹어야 안전하다 등, 내가 알고 있는 약에 대한 상식들을 말씀드리며 산더미 같은 약들을 정리한 것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어쩌다 들여다보면 어느새 약이 쌓여 있다. 2012년 현재 도로아미타불이다. 약에 대한 부족한 상식과 그릇된 생각과 오남용 때문에 남편을 죽음 직전까지 몰았음에도 말이다.

"요즘 감기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지 않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누가 몸살감기에 좋다기에 몇 알 먹었더니 감쪽같이 나았다.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니 안 듣는데 없다더라. 두고 힘들 때마다 먹어라."

2010년 11월, 일주일분의 감기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남편에게 이런 말과 함께 아버님이 아스피린 한 통을 내밀었다.

남편을 죽음 직전까지 가게 했던 아스피린
 남편을 죽음 직전까지 가게 했던 아스피린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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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이 떨어졌는데 어찌 하다 보니 병원이나 약국에 갈 시간이 나지 않는 판에 주변 사람에게 이미 아스피린 한 알을 얻어먹고 좀 나아지는 듯한 효과를 보고 있던 남편은 아버님이 주신 아스피린을 은근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리하여 TV 옆에 약병을 두고 이삼일 동안 몇 알을 먹는 눈치였다. 나에게도 "몸살기가 있으면 한 알 먹어"라며.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약인데다가 아버님이 감기에 잘 듣는다며 권하니까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런데 남편은 아스피린을 먹기 시작한 3일째, 위출혈로 엄청난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응급실로 실려가 응급처치를 받은 후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말았다. 피를 묽게 하는 등의 용도로도 쓰이는 아스피린이 위궤양을 악화시켜 위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당시 몇 사람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과 혈액 투입 등의 응급처치를 정신없이 하는 동안, 또 다른 의사는 내게 "감기약을 먹었나? 어떤 감기약인지 혹시 아는가?"를 다급하게, 반복적으로 물었었다. 어느 집에나 한통씩 상비약처럼 갖춰놓고 해열제로도 먹는 아스피린 한 알로, 대수롭지 않게 먹는 감기약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만 생각해 온 약 오남용 위험을 이처럼 온몸으로 경험한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가정의 당연하고 흔한 모습일지도 모를 시부모님의 이와 같은 약에 대한 상식 부족과 오남용이나, 약 때문에 죽음 직전까지 가고서야 약의 무서움을 비로소 실감한 우리 가족의 이런 경험은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의 내용 중 일부이다.

무심코 먹은 약 한 알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

책에 의하면 시부모님처럼 분별없이 약을 오남용하거나 남편처럼 무심코 먹은 약 때문에 위험한 지경에 이르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다. 책에는 파스 한 장 붙인 것으로 호흡곤란을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 간 한 사람의 사례도, 부모의 싸움에 머리가 아프다며 두통약으로 잘못 알고 먹은 혈압약 한 알 때문에 목숨을 잃은 여고생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마도 책속 사례자들이, 시부모님이나 남편이 자신들이 먹는 약에 대해 어느 정도라도 알고 사용했다면, 막연한 상식으로 먹지 않고 필요에 따라 약국에서 복약지도와 함께 구했더라면 살려고 먹은 약 한 알 때문에 죽거나 죽음직전까지 가게 되는 사고는 없었으리라.

어린이의 시럽 처방이 나오면 "냉장고에 넣지 마시고요. 햇빛 안 드는 곳에 실온 보관하세요!"라고 꼭 강조합니다. 그러면 대다수 부모가 "아, 이거 냉장고에 넣으면 안돼요?"라고 되묻습니다. 약이 음식처럼 상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지금껏 냉장고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줄임) 약을 냉장고에 보관하면 습기가 차서 곰팡이가 생기거나 침전물이 생기고 성분이 변질되기도 합니다. 영양제 같은 약들도 개봉 후 다른 음식들과 냉장고에 다른 음식들과 뒤섞어 보관한 탓에 가끔 손님이 분석해 달라고 건네는 약을 받아보면 약에서 음식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또한 약을 냉동실에 보관하는 사람도 많은데 냉동 보관하는 약은 극히 드뭅니다. 거의 모든 약은 저온이나 상온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에서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은 4명의 약사가 썼다. 제대로의 복약지도는커녕 약을 판매하는 사람도 구입하는 사람도 마치 일반 상품 대하듯 하는 현실을 우려, 올바른 복약지도의 필요성과 약의 오남용으로 인한 위험을 줄이고자 뜻을 모은 것이다.

책은 처방약과 일반약 사용 시 주의할 점과 알아야 할 것들, 비타민이나 건강 보조제 관련, 연령이나 성별 등에 따른 약물 사용 주의사항, 약국 제대로 이용하기, 약 올바르게 먹는 방법과 보관방법 등 우리들 일상의 그릇된 약사용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약'의 모든 것들을 사례와 함께 쉽고 가볍게 알려준다.

이제까지 '약 없이 OO병 고치는 방법'과 같은 책이나 이런저런 건강관련 책들은 무수하게 나왔다. 하지만 정작 몸이 아플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사먹는 약국의 약을 알려주는 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지라 이 책의 존재가 무척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남편이 무심코 먹은 약 때문에 조금만 늦게 발견했다면 죽었을지도 모를 위험을 겪은 후 알고 싶지만 알려주는 자료도 책도 없어 막연하게 불안하던 약에 대한 모든 것들을 알려주고 있는지라.

저자들의 뜻에 감히 '이 책이 어느 집에나 상비약과 함께 갖춰져 수시로 읽혀 몸을 살리고자 무심코 먹는 약으로 몸을 망치거나 생명을 잃는 사람들이 없었으면'이란 바람을 보탠다.

덧붙이는 글 |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ㅣ저자:노윤정 박세현 윤선희 최진혜| 생각비행 | 2012-03-28ㅣ값:15000원



알고 먹으면 약 모르고 먹으면 독

노윤정 외 지음, 최병철 감수, 생각비행(2012)


태그:#약, #오남용, #일반약, #처방전,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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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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