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의 역사에서 어떤 선거가 혼란스럽지 않았겠느냐만. 이번 만큼 복마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경우도 없었던 것 같다. 이름을 바꾼 한나라당은 공천 과정에서 이슈 파이팅을 하는 데 성공했으나 역시나 손수조, 문대성으로 비틀거리는 중이다.

박근혜는 기존의 한나라당과는 다른 새롭고 젊은 정치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약올리듯 색깔론 프레임을 가져온다. 민주통합당은 사실상 개혁 공천에 실패함으로써 지탄을 받았고 통합진보당에서는 경기동부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경기동부라니. NL이나 자주파나 주사파라는 단어가 싫증날 때 즈음 어디선가 새어나올 말이라고야 생각했지만, 그게 이번 총선을 목전에 두고 이정희를 경유해 무려 관악을에서 정치 스캔들처럼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경기동부의 명맥과 실체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고정간첩 색출한 것 마냥 열을 올릴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어느 정당에나 크고 작은 당내 조직이 존재한다. 경기동부도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조직의 정파 논리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는 유권자의 몫이다.

보수 언론은 이 와중에 통합진보당을 끊임없이 '진보당'으로 호출하는 중이다(선관위는 3자 통합당의 약칭으로 진보당을 사용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보수 매체에서 경기동부와 관련해 통합진보당을 진보당으로 표기하는 이유를 읽는 데는 별다른 통찰이 필요하지 않다. 진보신당을 비롯해 기타 진보 성향의 정당들까지 싸잡아 프레임 메이킹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북과 진보를 같은 맥락으로 언급함으로써 오랫동안 더 넓은 활동반경과 발언기회를 제공받아 왔다.

야권연대가 몰고온 심판의 폭풍 속에서 진보신당은 주변부의 잊혀진 존재다. 거제를 제외하면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 정당투표 3%를 달성해 단 한 명의 원내 진출 의원을 만들 수 있을지 불투명한 정당이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을 진보당으로 호칭하든 말든 대세에 별 영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로 오래된 역사도 아닌데 따질 건 따지고 넘어가자.

진보신당이 애초 민주노동당에서 빠져나온 이유와 과정은 보수언론이 더 잘 안다. 본분과 본령을 잊지 않은 진보는 어떤 맥락을 가져 오더라도 국가사회주의 세습, 독재를 인정하기 어렵다. 당시 민주노동당 내 탈당파는 앞서 언급한 특정 정파논리를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갈라져 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빨리 잊는다. 그리고 나는 통합진보당의 광고에 등장하는 노회찬과 심상정을 볼 때마다 그 망각들이 슬프고 섭섭하다.

문제는 야권연대 내부에서 발화된 김용민 옹호 논리

과거의 여성·노인 폄하 발언으로 입방아에 오른 민주통합당 김용민 노원갑 후보가 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경로당을 방문해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있다.
 과거의 여성·노인 폄하 발언으로 입방아에 오른 민주통합당 김용민 노원갑 후보가 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경로당을 방문해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앞서 열거한 복마전의 끝에 김용민의 막말 발언이 터져 나왔다. 2004년 한 인터넷 방송에서 "유영철을 풀어 가지고 부시, 럼즈펠드, 라이스는 아예 XX을 해서 죽이는 거예요"라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발언 자체보다 저런 말을 해도 웃고 넘길 수 있는 스튜디오 내부의 공기가 더 오싹했다. 당초 방어적으로 대처하던 김용민은 문제가 커지자 트위터와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사과했다. 트위터에서의 사과는 "과거에 했던 개그나 연기라 해도"라는 단서를 붙여 다소 미온적인 인상을 남겼으나, 동영상을 통해서는 모두 짊어지고 가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이 문제로 김용민이 후보 사퇴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발 빠른 사과가 있었으니 결과로 책임지면 될 일이다. 문제는 야권연대 내부로부터 발화된 김용민을 옹호하는 논리들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김용민의 발언에 대해 "끝까지 들어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선거를 앞두고 이루어지는 흑색 비난일 뿐이라며 "김용민을 끌어 내리려는 정치 알바들의 공세"라는 사람도 있었다.

김용민의 지인으로 보이는 탁현민이라는 트위터 사용자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새대가리당의 찬란한 성희롱의 역사에 비하면 김용민의 발언은 집회하다 교통신호 어긴 것 쯤 된다. 낮에 본 트윗처럼 그가 한 말이 성희롱이라면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하면 노인학대고 이명박을 쥐새끼라고 하면 동물학대다"라고 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용한 글은 이들의 논리를 명쾌하게 함축한다. 이들에게는 1) (이명박 정권이라는) 거악이 있다. 2) 거악에 대항하고 이를 심판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동원될 수 있고, 그 수단이 아무리 폭력적인 것일지라도 거악이 행사하는 폭력과 비교해보면 유의미하지 않다. 즉, 이것은 성전이다. 3) 이들의 폭력을 비판해 당위를 희석시키는 모든 종류의 지적은 악의적이며, 그것을 입 밖에 뱉는 순간 우리 편이 아니다.

이건 자경단의 논리다. 그들의 당위는 거악의 존재 자체로부터 수혈받는 것이다. 옳은 편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신앙화되었을 때나 가능한 합리화다. 그런 맥락에서 성전을 수행하는 탈레반의 논리이기도 하다.

옳은 편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당위는 야권연대를 움직이는 동력의 근간이다. 궁극적으로 옳은 일이기 때문에 다소간의 이견이 있더라도 퉁쳐서 진영논리를 채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 연대는 필연적이다. 정치사의 수많은 장면들이 그렇게 만들어져왔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다소간의 이견'인가에 관해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봐야만 한다.

한계를 명백히 알면서도 절충된 구호에 만족하는 것, 내가 행사할 한 표가 죽은 표로 전락할까봐 실제 내 의견과 계급 정체성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지 못하는 야권연대가 과연 스스로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에 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쯤에서 영화 한 편을 들여다보자.

"정치인들 대다수가 영혼을 팔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이용해"

서울 노원갑에 출마한 '나꼼수' 멤버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막말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5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새누리당 여성 비례대표 후보들이 "변태·성도착 발언 김용민 후보는 즉각 사퇴하라"며 막말 동영상 CD를 돌리고 있다.
 서울 노원갑에 출마한 '나꼼수' 멤버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막말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5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새누리당 여성 비례대표 후보들이 "변태·성도착 발언 김용민 후보는 즉각 사퇴하라"며 막말 동영상 CD를 돌리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마이클 니콜스의 <프라이머리 컬러스>는 대선을 앞둔 민주당 경선 과정을 그린다. 존 트라볼타가 연기하는 주지사는 이제 막 경선 후보로 참가했다(클링턴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그는 교육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은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다. 예측 불가하고 경박한 면이 있지만 바로 그런 인간적인 매력 덕분에 그를 싫어하는 유권자마저도 실제 만나고 난 뒤에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의 곁에는 냉철한 아내가 있다(역시 힐러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의 정치적 동지이자 후원자였다.

주인공이 그들 부부의 선거캠프에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애초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에 강박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옳은 일을 위해 정치적인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이 유사 클링턴에게 탐닉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전력을 돌아볼 때 그가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건 일종의 타협이고 절충이다. 그러나 캠프에 참여한 뒤 주인공은 후보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당한다. 누군가 주인공에게 캠프에 들어온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제는 정도만 고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중략) 함께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은 그가 사랑하는 후보가 저질러온 온갖 추문을 목격하게 된다. 대부분이 성추문이다(르윈스키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도 등장한다). 급기야 미성년자를 임신시키는 일까지 발생한다. 오랜 세월 후보를 따랐던 선거 조사원은 자살한다. 주인공은 참다 못해 캠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후보가 말한다.

"정치라는 세계를 인정할 수 없는 거야? 여태 겪어 봤으니 알 거 아니야. 야, 링컨이 대통령 되기 전에도 훌륭했겠니? 아마 자기를 알리기 위해 촌스러운 미소를 날리며 다녔을 걸? 기회를 잡아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거잖아. 생각해 봐. 정치인들 대다수가 영혼을 팔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이용해. 그 가운데 당선확률이 있는 사람이 누군지 생각해 보라고. 누가 나만큼 서민들을 염려하지?"

다음 장면. 백악관에서 축하연이 열리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주지사는 아내와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다. 카메라가 이동하더니 이제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할 선거 스태프들의 얼굴을 포착한다. 그 컷의 마지막에 미소 짓고 있는 주인공의 얼굴이 들어온다. 주인공이 말한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영화는 이후 펼쳐질 그들의 미국에 대해 서술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탁월함은 주인공의 선택이 옳았는지에 관한 결론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멀찍이 조망하며 살짝 조소하는 태도로부터 발화되는 것이다. 감독의 초기작 <졸업>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정권 교체 만으로 더 나은 세상은 이룩되는가

이상을 이루기 위해 절충된 현실을 선택하는 행동은 언뜻 실용적으로 보인다. 아니, 많은 경우 실제 실용적이다. 문제는 그렇게 실현된 성공이 이상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볼 때, 절충의 과정에서 반영된 이해관계들에 의해 애초의 숭고한 목적은 번번히 좌절되었다. 더불어 급조되었던 연대와 진영은 불신과 자괴감을 반복했다. 우리의 이상은 정권 교체인가, 혹은 더 나은 세상인가. 정권 교체 만으로 더 나은 세상은 이룩되는가. 다시 한 번,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 이 처연한 질문의 두께는 날마다 두터워지고, 나는 갈수록 선택을 독려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적어도 나의 선택에 있어서 만큼은 확신하고 있다. 나는 야권연대라는 신앙을 믿지 않는다. 그 신앙의 이상이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당투표율 3%를 달성해 원내 진출하는 것이 목적인 정당에 대해 죽은 표를 운운하는 건 흥미로운 발상이다. 내 주머니의 정체성을 명백히 대변하는 동시에 뚜렷한 대북관을 가지고 있는 진보신당을 지지한다. 진보신당은 원내에서 거대 야당 사이의 매우 유의미한 견제세력으로써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난 주 시사인에 기고한 글을 뼈대에 두고 많이 덧붙여 새로 썼다.



태그:#김용민, #탁현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