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시 공직으로 갈지 몰랐다. 29년의 관료 생활과 4년의 산하 기관장을 끝으로 현업을 떠나, 명예직인 이사장에 오르자 더 이상 청렴할 필요가 없어졌다. 굳이 누가 작정하고 비리를 파헤칠 자리도 아니니, 그동안 만들어온 인맥을 써보는 것도 이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일과 관련있는 신생업체의 사외이사와 고문 자리를 맡았다. 예전 부하들에게 전화 걸어 부탁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니 어려운 것도 없었다. 연간 8천만 원 가까이 부수입이 생기니 꽤 괜찮았다.

그런데, 중앙부처의 장관을 하라고 한다. 차관으로 공직을 마친 후에도, 꿈엔들 잊을 수 없었던 장관 자리이다. 공직생활은 이미 끝난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이냐 싶었다. 헌데, 걱정이 밀려온다. 공직을 마치고 관리를 너무 안한 거다. 10억 원 보유현금 출처, 유관업체 겸직 은폐, 겸직금지 위반, 무엇보다 로비 의혹 등 문제가 될 게 뻔한 흔적을 너무 뿌려놓았다. 이걸 감추고 싶은 데, 감추기엔 너무 늦은 건가?'

오늘 인사청문회에 선 이계철 방통위원장 내정자의 생각은 이렇지 않을까.

'방송 문외한' '통신 편향' 'KT와의 특수관계' '관료 특유의 무소신' '흘러간 옛 인물' '친정권 성향의 고소영 인사'라는 점으로 인해 전문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방통위원장으로서 부적격자란 지적 속에서도, 그나마 공직생활동안 청렴함과 자기관리만은 잘했기 때문에 '인사청문회 통과용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던 이계철씨였다. 그런 그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하 전파진흥원) 이사장 재직시 직무와 관련된 기업으로부터 무려 4년여 간 3억여 원의 자문료로 받았고, 심지어 이를 전파진흥원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으며 이번 인사청문회 제출자료에서도 누락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이계철씨는 전파진흥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전파진흥원에 전파강도측정 등을 받아야 하는 중계기납품업체 '글로발테크(2006년~2008년 존속한 BCNe글로발이 이름만 바꾼 회사)'에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총 3억여 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이사장으로서 관련업체의 고문을 겸직해 겸직금지 의무를 위반하고 이를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쟁점은 글로발테크가 KT의 자회사인 KTF에 대한 로비 사건에 연루된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자본금 3억 원의 글로발테크는 설립 4개월 만에 KTF와 납품계약을 체결하는 등 첫해 순매출 355억 원을 기록했지만, 로비 사실이 드러나면서 실소유주와 조영주 전 KTF 사장이 구속됐다.

이때가 이계철 씨가 글로발테크의 고문을 했던 시기와 겹치고, 조영주 전 사장이 이계철 씨와 긴밀한 관계였다는 점이 초점이다. 조영주 전 사장은 이계철 씨와 같은 체신부 관료였고, 이계철 씨가 KT사장 재임시절 기획조정실 총괄팀장, IMT사업기획단장 등을 거친 최측근이었다. 결국 글로발테크와 KTF간 로비의 연결점에 이계철 씨가 있었고, 바로 '그가 로비스트였다'는 사실은 정황상 뚜렷하다. 방통위는 '그가 검찰 수사도 받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글로발테크와 조영주 전 사장이 입을 다물면 수사는 간단히 피해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전임 최시중에 이어 청와대의 인사 헛발질로, 방통위원회가 또다시 '부적격 로비스트' 위원장의 방탄위원회로 나섰다. '비상임 이사는 겸직금지 대상이 아니다'라는 해명으로 총알받이에 나선 것이다. 해명의 수준이 중앙부처의 몰골치고는 안타깝다. 아무리 비상임 이사라도 상법상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관련업체의 유급고문을 겸직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29년 경력의 정통 관료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계철 씨가 인맥을 이용하여 유관업체의 고문으로 재직하며 부당한 이권을 챙기는 데 '개입'했다는 것이다. 방통위원장은 방송과 통신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주파수, 통신료, 망 중립성 등 첨예한 이권을 다루는 자리다. 하지만 이권의 한 대상자인 KT에 아들이 재직하고 KT 퇴직자 사우회장을 지내는 등 KT와 특수관계인 것도 모자라, 신생업체의 로비스트로 일했다는 정황이 매우 뚜렷한 자를 엄정한 중립성이 요구되는 방통위원장으로서 하루라도 일하도록 국민이 용납하겠는가?

우리는 이미 이계철씨가 '방송문외한' '통신편향'의 경력을 지닌 인물이자 구시대적인 친권력 인사로서 방송통신 개혁방향에 역행하는 부적격 인물이라 규정하고, 방통위원장 내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이계철씨는 유일한 자격이었던 도덕성마저 상실함으로써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 어떠한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야당이 강력히 요구하듯, 자진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청와대와 여당 또한 자질 미달의 로비스트 출신 인사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비록 1년의 시한이지만 정치적 의도를 걷어내고 넓게 인재풀을 가동한다면, 방통위원장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인물들은 우리 사회에 수없이 많다. 무엇보다 이계철 씨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달라.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덧붙이는 글 |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도(미디어행동) 논평입니다.



태그:#이계철, #방통위원장 후보, #로비스트, #겸직금지, #자진사퇴
댓글

이명박 정부의 언론사유화 저지와 미디어 공공성 강화를 위해 2008년 1월 전국 언론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 현업인 단체, 노동조합, 정보운동단체, 문화운동 단체, 지역 언론운동 단체 등 48개 단체가 만든 조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