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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줄줄이 올라탄 버스에는 수다스런 말소리가 끝이 없다. 빠른 강원도 말투는 귀를 아무리 쫑긋 세워도 뭔 소린지 모르겠다만 다들 이야기 끝엔 허허 웃는 것이, 행복한 무언가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말로만 듣던 농촌고령화를 실로 눈앞에서 보고 있는 참인데, 근 20여 분 간 마을 어귀마다 차가 서지만 그때마다 오르는 것은 방금 목욕을 하고 나온 팔순 할머니가 장에 가는지 색동 코트를 입고 잔뜩 멋을 내고 나서는 광경이거나, '누구더라?'하며 생각이 날 동 말 동 해도 우선은 반가운 기색으로 반기는 영감님들끼리 서로 악수를 청하고, 어쩌다 올라탄 날라리 여고생이 친손녀라도 되는 양 노친네들은 챙겨주기 바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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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중앙시장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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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중앙시장에 들어서도 역시 노인들이다. 그나마 젊어 뵈는 50대 여자가 매콤하고 뜨끈한 것이라며 얼핏 웃음을 보이는데, 내다 놓은 판 위로는 기름이 지글지글 하는 참이고, 썰어놓은 신 김치에선 묵직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 제법 구미를 당기기 시작한다.

우선 되직한 반죽을 크게 한 국자 떠서 판 위에 둥글게 펼치고, 그 위에다 쪽파 한 줄기, 그 옆에다 신 김치 죽 찢어서 한 줄기, 또 다시 실파 한 줄기를 곁에 얹는다. 이어 꾹꾹 눌러 반쯤 익었을 때 화닥 뒤집으면 강릉 메밀전이 완성된다. 쪽파의 달큼한 맛 그리고 신 김치의 매큼시큼함이 어우러진 것이, 파전도 아니고 김치전도 아니고 적당히 구수한 메밀의 향취도 슬그머니 올라오는 이것은 강원도 전통 먹을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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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전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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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명을 얹지 않고 그저 메밀반죽만 부쳐내선 그 위에 송송 썬 신 김치를 얹고 김밥처럼 돌돌 말면 메밀전병이 되는데, 집집마다 만들어내는 방식이 다들 특색 있지만 요즘은 얼큰히 매운 김치를 써서 혀가 아릿아릿한 맛에 자꾸 먹게 만드는 집들이 유독 많다.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는 신세대 입맛을 따른 것인 듯하나, 어째 이도저도 아니게 메밀의 풍미도 못 살리고 김치의 깔끔한 맛도 못 살린 것이 흠이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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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밀전병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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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중앙시장 먹거리 장터에선 이 같은 음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어느 도시에서건 그곳의 본 얼굴을 만나려면 시장에 가보아야 한다고, 이곳에는 여행자들이 먹을 만한 음식이나 눈여겨볼 만한 것이 제법 있다. 그 중 강원도의 또 다른 토속음식으로 감자옹심이도 빠질 수 없다. 배가 불러도 그 쫀득한 맛에 다들 열심히 숟가락을 움직여대니 간만에 만난 옆자리 노인네들은 서로 음식 대접을 한다며 손님상을 건너다보곤, '우리도 감자옹심이!'를 외쳐댄다.

감자옹심이는 이 지방에서 풍부히 나는 농작물을 잘 활용했다는 점에서 우선은 점수를 주고 싶다. 게다가 이리저리 모양내지 않아서 더더욱 믿음이 간다. 돼지 뼈를 푹 우려낸 국물에다 감자녹말로 반죽한 새알심을 풀풀 끓여내고, 익으면 그릇에 퍼 담아 채썬 파를 올려 양념장을 곁들여 훌훌 저어 먹는 이 음식은 새알심이 적당히 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질척한 맛의 한 꺼풀 아래는 쫄깃한 맛이 숨어 있다. 게다가 이 음식의 주인공인 옹심이는 꼭 동글하고 멋지게 빚어내는 것은 아닌가 보다. 바쁜 아낙들이 대충 쥐었다 물에 풍덩 빠뜨려 삶아 건져낸 듯한 모양새는 강원도의 산세를 닮은 듯 험하고 뾰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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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옹심이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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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강원도 감자옹심이는 마당에 내버려진 채 잔뜩 쌓여 있던 썩은 감자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라 한다. 추위로 적당히 얼고 그 가운데 썩어 가는 것을 갈아서 뭔가 쿰쿰한 내가 슬쩍 나면서 오히려 그것이 맛의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하지만 요즘 강원도에선 감자를 갓 갈아서 뽀얀 색이 나는 걸로 음식을 만드는 탓에 이런 특유의 향이 없는 슴슴한 감자 음식을 팔고 있단다. 사실 식당들마다 내놓는 감자옹심이만 해도 몇 숟가락 뜨고 나면 이내 질려버리는 이유가 바로 무향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삭힌 감자를 활용해서 시커멓고 군내나는 감자옹심이를 내다 팔 용감한 주인은 잘 없지 싶다.

간만에 장보러 온 노인, 무료한 시간을 달랠 길 없어 찬바람에 종일 헤매던 노인들은 동네 마실 온 듯이 식당으로 들어선다. 뜨끈한 방 안에 궁둥이 붙이고 뜨신 온기를 느낄 새도 없이 후루룩 먹어치우면 다음 노인들이 줄줄이 가게 문을 들어서고, 때론 자리가 없어 초면의 타인과 겸상을 해야 하지만, 그 '적당히'와 '적당하지 않은' 맛에 자꾸 찾아들게 되나보다.

식당 밖에서 장사하던 노인들이라고 밥을 안 먹을 순 없다. 종일 바닥에 쪼그려서 감자, 옥수수, 나물 같은 걸 파는 데다 밥도 쪼그려 앉아서 먹는다. 건너편 가게서 한 그릇 배달해 온 소머리국밥 한입을 먹을라치다가도 지나는 손님 호객하느라 쉴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식어버린 국그릇에선 식사의 숭고함이 덤으로 얹혀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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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릉중앙시장 국밥골목 .
ⓒ 조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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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마다 주인과 손님이 정내면서 실갱이 중이고, 비싸다 깎아주시오 하면 주인은 시장 규칙이라 그럴 순 없다 하고 바가지 안 씌우니까 안심하라며 손님이 고른 물건을 검정 비닐에 척척 담아낸다. 언론을 타면서 더욱 유명해진 강릉 중앙시장 먹거리장터. 급한 썰물이 빠져 나간 듯 이제는 조금 잠잠해졌다. 음식이란 게 이래서 급 유행을 타나보다.


태그:#강릉중앙시장, #메밀전, #메밀전병, #감자옹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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