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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생의 이준석씨. 서울과학고등학교와 카이스트, 하버드 대학을 나온 똑똑한 20대 젊은이다. 이씨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나라당 비대위원이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말 하나하나가 뉴스가 되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2일 트위터에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이 얼마나 정의로운 단체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달 넘게 서초2동 전역을 쩌렁쩌렁 울리면서 시끄럽게 하는 건 진짜 미친놈들이 아닌가 싶다"라는 글을 남긴 것이 드러나 화제와 물의를 동시에 일으켰다.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자 이씨는 트위터에 "순간적으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과 글을 올리기도 했다.

20대는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20대인 이씨도 실수할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씨처럼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들도 실수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범한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향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이번 철거민 관련 망언 사태를 통해 이씨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설마 '이제부터 트위터에는 본심을 얘기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교훈을 얻은 것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20대가, 그것도 최고의 스펙을 갖춘 전도유망한 청년이 벌써부터 그런 식으로 살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얼마나 암담하겠나? '아! 내가 철거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좀 알아봐야겠다'라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 믿는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용산', 집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떠날 수 없는 사람들> 표지
 <떠날 수 없는 사람들> 표지
ⓒ 보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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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준석씨에게 이번에 새로 출간된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3년 전의 그 참혹했던 일을 잊지 말고 우리가 좀 더 상식적인 사회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은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심흥아, 유승하, 이경석, 이 6명의 만화가들이 뜻을 모아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에 온 것 같아요. 저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어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재산을 빼앗고, 집을 지킬 권리를 빼앗습니까? 거대한 자본가의 만행은 우리를 서서히 말라죽게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죽기를 기다립니다. 그들은 경찰과 용역으로 벽을 치고 주민들의 눈과 귀를 막습니다.

동물들도 밥그릇 뺏기면 달려들잖아요. 하물며 사람입니다. 철거민은 사람대접 못 받습니다. 정신과 약이 없으면 단 하루도 견디기가 힘들어요. 콱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씩 듭니다. 이대로 잠들고 싶은데, 눈을 뜨면 또 아침이네요. 그런데 해가 지면 아이들이 돌아와요. 이 천막도 집이라고 잠을 자러 들어옵니다.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을 보면 저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내 몸뚱이 하나 없어지면 그만이지만, 저 아이들 생각하면 살아야 합니다.

재판 받는데 그러더군요. 언제까지 할 거냐, 아이들 장래는 생각 안 하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검사님, 아이들 키우시죠? 제 아이들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나는 살아볼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 세 아이들의 망가진 시각은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억울하게 살다가 죽는 게 맞는 거라고 할까요? 그냥 대충 살다가는 거라고 말할까요?'" - 경기 고양시 일산구 덕이동 철거민 김명자씨, <떠날 수 없는 사람들> 중

경기 고양시 일산구 덕이동 재개발 사업은 2006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가구점을 운영하던 김명자씨는 재개발로 집과 가구점이 모두 철거되었고, 명자씨와 세 딸은 정당한 보상을 위해 천막생활을 하며 5년째 투쟁 중이다. 첫째 딸 은주씨는 충격으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서울시 용산구 신계동에서는 2008년 8월부터 철거를 시작해 세입자들을 강제로 쫓아내고 대림산업에서 아파트 'e-편한세상'을 세웠다. 정말 누군가에게는 편한(?) 세상이다. 이때 쫓겨난 철거민 중 한 명은 용산참사 때 시위에 함께하다 구속됐고, 다른 한 명은 3년 넘게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에서는 2007년 말부터 시작된 재개발 사업에 용역들이 강제철거를 나왔고 철거민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 단대동 철거민 대책위 위원장 김창수씨는 용산참사로 실형 4년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고 남은 가족과 두 아주머니가 천막 생활을 하며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준석 한나라당 비대위원님, 이 책 꼭 읽어보세요

<떠날 수 없는 사람들> '그 길 옆에'(심흥아) 중에서.
 <떠날 수 없는 사람들> '그 길 옆에'(심흥아) 중에서.
ⓒ 보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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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는 철거민들의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김수박씨가 그린 '땅따먹기' 편은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헨리 조지가 1879년에 쓴 <진보와 빈곤>의 내용을 잘 요약해서 전달하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진보와 빈곤>에는 토지 소유를 통한 불로소득을 차단하지 않으면 사회가 어떻게 망가질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있다. 김성희씨가 그린 '꿈결 같은' 편에서는 왜 용산참사 같은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지를 사회경제적으로 잘 분석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준석씨에게 제안한다. 만약 이준석씨가 만화책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읽고 진심을 담은 서평을 남긴다면 철거민 망언으로 그에게 실망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설사 당장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그가 좀 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혼자 잘난 20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는 20대가 필요하다. 1985년생, 아직 충분히 젊다. 생각을 바꾸기에.


떠날 수 없는 사람들 - 또 다른 용산,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김성희 외 5인 글.그림, 보리(2012)


태그:#이준석, #용산참사,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보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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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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