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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아, 두 손을 떼거라."

한량의 요구에 따라 기생이 속속곳의 끈을 놓는 대신 어쩔 수 없어 속속곳의 허리쯤을 입에 살며시 물고 서있으면, 한량은 입에 물고 있는 속속곳마저 여지없이 손으로 홱 잡아채고 만다. 순간 기생의 백옥 같은 흰 허벅지와 함께 눈부신 옥문(玉門)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자마자 기생은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하, 거 참, 좋구나. 서방님의 정이 네년 뱃속 가득 들었나 보다. 그러니 그 서방님 모시고 오래오래 살거라." - 본문 201쪽 

꿈 해몽 같은 설명

박상하 지음, 일송북 출판의 <조선의 3원3재 이야기>중 혜원 신윤복의 그림 기방난투(妓房亂鬪,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 중)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비몽사몽간에 꾼 꿈을 해몽해주듯이 그림이 배경으로 품고 있는 조선시대 기생집의 풍속과 술집 주변의 풍경을 영상으로 보여주듯이 실감나는 설명입니다. 

<조선의 3원3재 이야기>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명의 화가, 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그리고 칠칠이 최북의 일대사와 그들이 남긴 흔적을 이야기로 엮었습니다.

출생배경과 성장과정,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은 물론 당대의 사람들이 평한 평론과 기록을 전거로 하여 이들의 천재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간밤에 꾼 꿈을 해몽해주듯이 그림에 어른거리는 시대의 풍속도까지 세세히 설명하고 있어 그림을 이해하고 시대를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습니다.   

살아가는 대로 만들어 지는 게 관상

<조선의 3월3재 이야기> 표지
 <조선의 3월3재 이야기> 표지
ⓒ 일송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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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방법 중 하나가 관상입니다. 관상은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상학을 전공한 어느 학자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생긴(관상)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대로 관상(생김)이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조금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도 사람 좋게 허허거리며 살면 좋은 인상(관상)을 갖게 되지만, 자그만 일에도 짜증거리며 살면 보기에도 짜증스런 인상(관상)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현룡재전(見龍在田) 이견대인(利見大人)이란 말이 있소이다. 한데 오늘 이렇게 주상전하의 용안을 보아하니 한마디로 그 형상이 바로 용상龍象이 다름 아니라는 것이오.

이 말씀은 곧 주상전하의 얼굴이 용의 형상을 띠었다는 소리이기도 하오. 얼굴이 이렇듯 용의 물형을 타고났으니 주상전하의 앞일은 굳이 묻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오.

항상 태연자약 하시고 미소를 머금은 듯한 얼굴에서 일국을 호령할 위풍이 주상전하를 감싸고 있소이다. 하여 이 사람은 주상전하의 이와 같은 물형을 일컬어 특별히 '소룡지상笑龍之相'이라고 말하고 싶소. 다시 말해 '용이 웃는'상이라고 명명하고 싶소이다. - 본문 153쪽

정조의 어진(초상화)을 그리고 나온 단원 김홍도가 그려 보여주는 정조의 모습을 보고 엄 도인이 평한 정조의 관상입니다. 실물을 보지 않고도 관상을 논할 만큼 단원의 그림솜씨가 정교하고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후세에 대왕으로 불릴 정도의 대의 정치를 실현한 정조였기에 단원이 그린 그림에서조차 용이 웃는 상으로 보였을 겁니다. 단원이 현직 대통령을 그렸다면 과연 어떤 상으로 평가되었을 지, 사람들이 말하는 특정 동물로 상징되었을 지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술과 계집 없이는 궁궐도 싫다는 오원 장승업, <조선의 3원3재 이야기>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희귀화폭도 다수 수록하고 있어 이들 천재화가들의 또 유작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면도칼로 귀자른 반 고흐, 한쪽 눈 찌른 최북

3원3재는 아니지만 또 다른 천재, 최북의 이야기는 또 다른 감동입니다. 정신적 발작을 이기지 못해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서양화가 중 빈센트 반 고흐 못지않게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데 한쪽 눈이면 되지 잡스럽게 두 눈이 또 무어냐며, 스스로 자신의 한쪽 눈을 찌르고 만 최북'에 대한 이야기는 차라리 슬프기조차 합니다.

저자인 박상하는 20년도 훨씬 이전부터 최북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어 소설화 해보려 했지만 '호생관 최북의 인생은 예술로서 빛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인으로서 기록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아퀴를 짓고 있는 유홍준의 논문에 그 뜻을 접지만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최북이 그린 '계류도'를 만나게 되면서 최북을 소설화 하는 꿈을 다시 품는 듯한 문맥에서 또 다른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조선의 3원3재 이야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화가의 이야기를 통해 금강산의 절경, 짖궂게 뱃속에 든 정까지 확인하던 조선시대 기생집의 풍속, 미치광이에 가까울 만큼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의 3원3재 이야기> / 지은이 박상하 / 펴낸곳 일송북 / 2011.11.15 / 20,000원



조선의 3원3재 이야기

박상하 지음, 일송북(2011)


태그:#조선의 3원 3재 이야기, #박상하, #일송북, #단원,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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