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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는 것처럼 지난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는 진보대통합안을 부결 시켰습니다. 54%의 대의원들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찬성했지만 찬성률이 통합에 필요한 가결정족수 2/3를 넘지 못해 부결된 것입니다.

일단 변명을 좀 하겠습니다. 통합안 반대에 손을 든 대의원들이 '보수 좌파'여서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고집 피우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보신당 독자파 대의원들은 좀 억울합니다. 진보신당 독자파 대의원들은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오래된 꿈을 버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 꿈을 위해 민주노동당을 했고 당에서 나온 이후에는 진보를 혁신해야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가능하겠구나 싶어서 '진보의 재구성'을 기치로 내걸고 3년을 버텨왔습니다. 지금은 반MB, 야권대통합, 진보대통합 이런 것들이 대세이고,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이 몰상식한 것처럼 보이지만 1987년 이후 지금까지 25년 가까운 세월을 따져보면 이런 일들은 항상 일어났었습니다.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진했던 세력들은 선거 때만 되면 늘 '비판적 지지'를 강요당해 왔습니다. 그것이 조건 없는 후보 사퇴든, 후보 단일화든, 민주당류의 자유주의 정당에 투항하는 것이든, 혹은 야권대통합이든 선거 직전엔 항상 이런 요구가 있었고, 그 요구는 늘 한국정치의 일대 진전을 위한 절체절명의 요구라고 설명되었습니다.

중요하지만 미뤄진 일,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 

중요하면서 급한 일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사람들은 늘 중요하면서 급한 일을 먼저 택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늘 뒷전인데, 이게 인생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건강 챙기기, 꾸준히 공부하기 등이 이런 예입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권교체, 야권통합은 중요하면서 급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진보정당의 독자적 성장과 발전이라는 일은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급하지 않은 일 취급을 당해 왔습니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에는 유럽에 그 흔한 사회민주주의 정당 하나 없습니다.

진보신당은 제대로 된 좌파정당으로 성장하고 싶은 꿈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이런 꿈을 가진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하고 내년 대선에서 민주연립정부에 참여하려 하면서 그 전에 진보신당과도 통합하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에서 대중적 좌파정당 건설을 하겠다는 꿈은 정말 영영 사라지는 데다 민주노동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대중조직들까지도 자유주의 세력을 지지해 버리고 마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진보신당 활동가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입니다.

온갖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통합을 거부했던 것은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이 민주당보다도 지지율 높은 정당을 만들 수는 있어도 민주당이 절대 할 수 없는 선명한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길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 판단은 이대로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강상구 전 진보신당 대변인
 강상구 전 진보신당 대변인
ⓒ 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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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터졌습니다. 진보신당 독자파는 9월 4일 당대회가 그 동안의 잘못된 통합논의를 끝내고 진보의 재구성을 새롭게 시작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진보신당은 도저히 수습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내홍에 휩싸였습니다. 이 내홍이 독자파와 통합파의 내홍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가겠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독자파 가운데에서도 강경입장이었던 김은주 부대표가 당대회 이후 유일하게 대표단을 사퇴하지 않고 대표권한대행을 맡으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은주 권한대행은 업무를 개시하자마자 하루 이틀 사이에 주요 당직자들을 측근인사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당사자와 상의도 없이 당직자 한 분을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버렸습니다.

"저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항의하는 당직자들에게 김 권한 대행이 인사발령의 이유라면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게다가 당직을 차지한 사람들이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의 글을 삭제해 버리고 글을 쓴 당원에게 글쓰기 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진보신당 당규에 따른 통상적 당원게시판 관리조치를 정면으로 무시한 행위였습니다. 사소한 문제 같지만 이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김 권한대행 측근들의 낮은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8일은 진보신당 전국위원회를 열어 이후 당을 수습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김 권한대행은 전국위원회 이틀 전에 전국위원회 연기 공고를 냈습니다. 누구와 상의했느냐는 질문에 김 권한대행은 "실장들과 상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전국위원회 개최는 그 전에 광역시도당 위원장 및 사무처장들이 함께 모여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들과 충분히 상의하고 정말 불가피할 경우에만 연기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러나 김 권한대행은 자기 측근들과 주로 상의하고 나서 전국위원회를 일방적으로 연기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저는 김 권한대행의 전횡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대변인을 사퇴하면서 김 권한대행이 사퇴해야 한다는 내용의 고별브리핑을 했습니다. 고별브리핑은 평소 당론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절대 개인 생각을 얘기해서는 안 되는 대변인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개인적 소회를 밝히는 기회입니다.

이 브리핑은 당 게시판의 성명·논평란에 올려진 직후 바로 삭제되었습니다. 홍보실장 명의로 올라온 공지에는 '강상구 전 대변인의 브리핑은 당론과 다르므로 삭제되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제 브리핑이 현직 당대표를 사퇴하라고 촉구한 것이므로 과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브리핑조차도 홈페이지에 그대로 게시해 놓았을 것입니다.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민노당-진보신당을 거치면서 2주 만에 당이 이렇게 극도의 혼란으로 빠져든 적은 제 기억에 한 번도 없습니다. 진보정당이 쌓아왔던 통상적인 민주적 절차를 위배하는 사례가 계속 벌어지고 있고 당의 혼란은 극심해졌습니다.

사실상 당대회 결정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통합연대' 유감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 조승수 진보신당 전 대표,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세균 진보교연 공동대표 등이 22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 추진을 비판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고문, 조승수 진보신당 전 대표, 임성규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세균 진보교연 공동대표 등이 22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 추진을 비판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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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당내 통합파 일부의 움직임 때문에 당 수습은 더욱 쉽지 않아 보입니다.

9월 4일 당대회가 끝나자마자 '통합연대'라는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비국민참여당·진보대통합'의 정신을 계속 실현시켜나가겠다면서 만들어진 이 조직은 진보신당 통합파의 진보대통합에 대한 확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분들의 행보는 유감스럽습니다.

통합연대에 속해 있는 분들은 대놓고 선언은 안 했지만 실제로는 9월 4일 당대회 결정을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전 이러한 이해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통합연대가 민노당 당대회 결과에 따라서 진보신당을 탈당할 수 있다는 현실적 계획과 맞물린 움직임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으로서 관심사는 9월 25일 민노당 당대회입니다. 이 날 당대회 결과에 따라 많은 상황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참여당과의 통합이 부결될 경우 통합연대는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추진할 것입니다. 진보신당에서 꽤 많은 탈당자가 생길 것입니다.

만약 참여당과의 통합이 가결될 경우 상황은 조금 더 복잡합니다. 이럴 경우 통합연대에 계신 분들 중 어떤 분들은 그래도 10월 1일 참여당 당원총회에서 민노당-참여당 통합이 부결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파의 통합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또 어떤 분들은 민노당이 참여당과의 통합을 결정하면, 10월 1일 참여당 결정이 어떻게 되든 그 자체만으로 민노당 그리고 민노당을 상징하는 민중운동과 노동자 대중운동이 전면적으로 노선전환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유주의 세력과는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화 운동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인정하여, 이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경우야 어찌됐든 진보신당은 민노당 당대회 이후 벌어질 급격한 상황 변화에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이고 기민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진보신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독자적 좌파정당 건설 흐름은 완전히 몰락할 수도 있고 새롭게  탄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민노당-참여당의 합당이 최종 결정될 경우 국민들이 보기에 진보신당은 더욱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보운동진영에서 진보신당의 역할은 다시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노총이든 진보적 교수단체인 진보교연이든 혹은 빈민단체든 진보신당을 주요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때가 되면 진보신당이 이를 해쳐나갈 능력과 태세가 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됩니다.

당 수습할 통합적 비대위 구성해야, 걸림돌은 누구인가?

결국 진보신당이 그 전에 당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심거리입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속히 꾸리고 새 대표단을 조기 선출해야 합니다. 특히 비상대책위원회는 25일 민노당 당대회와 10월 1일 참여당 당원총회 이후에 벌어질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독자파부터 통합파까지 아울러 꾸려야 합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난파선을 튼튼한 배로 빠르게 정비해 나가야 합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원활하게 꾸리기 위해 현재 가장 큰 걸림돌은 김은주 권한대행 체제 자체입니다. 김 권한대행은 오는 25일로 미뤄진 전국위원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반드시 꾸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신이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측근을 반 수 이상 비대위원으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 대표는 연습하는 자리가 아니며 푸념하거나 변명을 일삼는 자리가 아닙니다. 당대표는 자신만의 비전으로 당원들을 단결시키고, 진정성이든 호소력이든 당원과 국민이 주목할 만한 능력으로 국민의 요구에 화답하는 자리여야 합니다. 당대표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노동자 민중에게 큰 울림이 되어야 하며, 당 대표의 발걸음은 진보정치와 민주주의의 빛을 더욱 찬란하고 눈부시게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은주 권한대행은 자격미달입니다. 대표 하나가 조직을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진보신당 당원들은 매순간 깜짝 깜짝 놀라면서 당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진보신당 내 온건독자파, 모든 키를 쥐고 있다

이 상황에서 모든 키는 김종철, 심재옥 전 대변인 등 진보신당내 온건 독자파가 쥐고 있습니다. 김은주 권한대행과 협상을 할 수 있는 분들도 이들이고 새로운 지도체제를 구축하고 선언하여 김 권한대행을 사실상 불신임상태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이들입니다. 김은주 권한대행이 사퇴해야 비상대책위원회가 비로소 온전히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진보신당 온건 독자파는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김은주 권한대행과 이들의 세력을 인정하고 타협하여 중도파/통합파와의 협력을 포기할 것인가 김 권한대행을 무력화시키고 중도파/통합파를 아우르는 길로 갈 것인가는 이 분들이 결정해야 할 몫입니다.

이 분들의 결정은 진보신당이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애초의 문제의식을 현실화 시키는 의미 있는 세력으로 부활할 것이냐 이대로 몰락할 것이냐를 가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강상구 진보신당 전 대변인은 현재 진보신당 구로당협 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태그:#진보신당, #진보대통합, #민주노동당, #통합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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