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폐지를 수집해서 리어카에 실은 뒷모습.
 폐지를 수집해서 리어카에 실은 뒷모습.
ⓒ 황복원

관련사진보기


우리 골목 사람들은 쓰레기를 집 안에 꼭꼭 쟁여놓는다. 대문 앞에다 내놓지 않는 쓰레기는 각자 집에 일정 기간씩 모아 둔다. 재활용쓰레기는 이 골목 사람들이 여간해선 내놓지 않는 귀한 품목이다.

그러니 건질 만한 폐지나 고물이 없나 하고 골목에 나타나는 노인들에겐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골목 위치로 보면 음식점들 뒷문이 이쪽으로 나 있고 고시텔, 상가, 사무실 등이 고르게 밀집되어 있는 곳이고 보니 제법 값나가는 박스나 재활용 물품들이 쏟아져나올 만도 한데, 어찌된 속인지 너른 골목 어디에도 변변한 박스 한 장 뒹구는 일이 드물다.

골목 사람들이 애써 재활용 쓰레기를 숨기고 안 내놓는 이유는 고물수집 어른들의 이 치열한 경쟁으로부터 조씨 할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물건이라도 일단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이다 싶으면 그것들을 차곡차곡 모아놓고 나중에 조씨 할머니가 지나가면 불러 세워서 이것들을 한꺼번에 처분한다.

고물상으로 팔수 있는, 상품성을 인정받은 것들은 곧바로 할머니 수레로 옮겨지고 나머지 물건들은 비로소 대문 밖으로 버려진다. 그렇게 버려진 물건들도 다시 한번 꼼꼼히 훑고 지나가는 어른들이 있지만 이미 조씨 할머니의 날카로운 선별작업에서 걸러진, 돈으로 환산 불가능한 물건들이기 십상이다.

조씨 할머니는 일 년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에도 몇 바퀴씩 골목을 도신다. 고물을 수집하러 다니는 노인들 중에서도 할머니는 가장 연로하시고 또 거동도 몹시 불편하신 분이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구에도 아랑곳없이 박스 하나, 캔 하나라도 더 수레에 싣기 위해 부지런히 골목을 순찰하신다. 폐지를 주워 손주들을 키워야 하는 할머니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결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

"세상에나, 저 양반이 왜 박스를 줍고 있지?"

"어머! 나 좀 잠깐 숨겨주라. 세상에나, 저 양반이 왜 박스를 줍고 있지? 어휴, 하여간 못 말려."

언젠가 이웃 아주머니와 집 앞에서 잠깐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갑자기 아주머니께서 내 등 뒤로 몸을 숨기시며 저만치서 박스를 접고 있는 초로의 노인 동정을 살피는 거였다. 그 반백의 어르신은 막 두꺼운 박스 하나를 주워서 열심히 모서리를 봉한 비닐 테잎을 제거하는 중이었다. 그러더니 옆에 뒹굴고 있는 빈 깡통들을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에 부지런히 주워 담았다. 도저히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장면이었다.

"내 시이모부야. 저 양반 재산이 얼마인 줄 알아? 시골에 그 많은 전답은 놔두더라도 도시에 집만 해도 몇 채인데. 욕심 많은 어른인 줄은 알았지만 폐지까지 줍고 다닐 줄은 몰랐네. 아휴, 민망해라. 설마 나 본 거 아니지?"

그 대단한 재산가 노인은 이제 막 추가한 재산목록인 박스를 옆구리에 끼고 득의양양하게 걸었다. 눈으로는 여전히 더 주워갈 물건이 없나 하고 찾는 눈치였다. 아주 상습적인 솜씨였다.

"아뇨. 못 봤어요. 열심히 고물 찾느라 정신없으신데요. 돈도 많다면서 저런 거라도 없는 사람 가져가게 내버려두시지."
"돈이라면 지독한 어른인 줄 알았지만 저러고 다니실 줄은 몰랐어. 그나저나 저 집 자식들 자기 아버지 저러고 다니는 줄 알면 난리 날 텐데."

그렇잖아도 치열한 폐지 줍는 경쟁에 '살 만한' 어른들까지 뛰어드는 것은 일종의 횡포다.

하천 옆으로 피어난 해바라기길 사이로 할머니가 무거운 폐지더미와 씨름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하천 옆으로 피어난 해바라기길 사이로 할머니가 무거운 폐지더미와 씨름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 이정민

관련사진보기


'폐지 줍기' 현장에도 부익부빈익빈이...

폐지 줍는 노인들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조씨 할머니처럼 정말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생계형'과 딱히 생계에는 지장이 없지만 줍기만 하면 바로 돈이 되는, 널려 있는 쓰레기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근검절약형'들이다. 이 근검절약형들이 생계형에 비하면 풍채도 좋고 건강상태도 양호하기 때문에 순발력이 뛰어나다. 그러니 못 먹어 비실거리는 생계형 노인들은 여기서마저도 번번이 밀린다.

근검절약형 노인들에게는 폐지 줍는 사람이라면 꼭 갖추어야 할 도구인 수레를 구비하지 않는다는 결정적 특징이 있다. 일말의 체면을 생각해서 차마 수레까지 밀고 나설 수는 없는 것이다. 행여 아는 사람에게 현장을 들키지 않기 위해 신속해야 하고, 능청스러워야 한다.

생계형에 비하면 작업에 따르는 불편함이 훨씬 다양하지만 그렇다고 작업에 임하는 그들의 열정이 결코 뒤지진 않는다. 박스를 옆구리에 낀 채 시치미 떼고 걷는 모습은 영락없이 집에 급히 박스 하나가 필요해서 구해가는 듯한 표정이다. 눈으로는 끊임없이 더 주워갈 물건은 없는지 두리번거리는 걸 게을리 하지 않는다.

폐지 줍는 현장에서조차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이 두드러진다. 이 구조적 모순에서 밀려난 가엾은 조씨 할머니의 존립 위기를 염려한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급기야 '쓰레기 투기 금지'라는 초유의 상황으로 발전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순순히 쓰레기를 내놓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 골목 사람들을 거의 모른다. 그런데 사람 마음은 다 같은 모양이다.

생계형이든 근검절약형이든, 대부분 폐지 줍는 노인분들의 처지는 딱하다. 추운 겨울날이나 한 여름 땡볕에 거동조차 불편한 노인들이 딱딱한 박스를 힘겹게 밟아 펴고 수레에 싣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미안하고 죄스럽다.

조씨 할머니가 우리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사연

조씨 할머니가 이 골목을 떠나지 못하는 데는 슬픈 사연이 있다.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덜커덕 세상을 떠나버린 아들이 평소 이 부근에서 근무를 했던 인연 때문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들이 다녔던 관공서 부근을 할머니는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집이 먼 데도 굳이 이 골목을 터전으로 생활하는 할머니의 남다른 아픔이다.

"새벽부터 나와서 이제까지 딱 삼천 원 벌었네.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박스들도 통 안 나와."

그냥 서 있기도 힘든 여름 땡볕 아래서 조씨 할머니는 그날 하루 벌이가 신통치 않다며 한숨을 쉬셨다.

"할머니 더우니까 이거 한잔 드세요. 이거 음료수 사놓은 지가 오래 돼서 빨리 먹어치워야 하거든요."

조씨 할머니에겐 목마를 때 음료수 한 잔, 물 한 모금 얻어마시는 데도 철칙이 있다. 음료수는 절대 안 되고 물은 된다. 음료수는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이라 폐를 끼치니 안 되고 그냥 맹물만 달라신다. 그냥 음료수를 드리면 이미 따라 놓은 컵이라도 절대 마시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에 또 음료수를 주게 될 것이니 기어이 물을 달라신다. 그러니 할머니에게 시원한 음료수 한 잔 대접하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내가 시댁이랑 친정에서 되는 대로 묵은 밑반찬을 퍼나르는 것은 사실 조씨 할머니를 의식해서이다. 처치곤란이다, 못 먹는 음식인데 시어머니가 줘서 하는 수 없이 가져왔다 엄살을 부리면 할머니는 그런 음식들은 고맙게 가져가신다. 그렇지만 내가 일부러 돈을 주고 사드리는 과일이나 식품은 절대 받지 않으신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송이뿐 역의 윤소정(오른쪽)은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독거노인 역할을 맡았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송이뿐 역의 윤소정(오른쪽)은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독거노인 역할을 맡았다.
ⓒ 그대사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큰손자가 나보고 저 스무살 까지만 고생허라네"

사시사철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폐지를 주워야 하는 고단한 삶이지만 할머니에게도 희망은 있다. 학원 한 번을 안 다니고도 곧잘 1등을 먹는다는 손자 손녀 자랑을 할 때면 할머님은 그 무거운 수레가 하나도 힘들지 않는 모양이시다. 냉방장치 하나 없는 비좁은 집에서 그 더운 여름 손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부만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큰손자가 나보고 저 스무 살까지만 고생허라네. 스무 살만 되믄 지가 돈 벌어서 꼭 할머니 호강시켜준다네. 아주 고생허는 할머니 짠해서 죽소, 우리 손주놈들이. 아그들이  얼마나 착하고 공부를 잘허는지 내가 이러고 살아도 하나도 힘이 안 들어."

할머니 자랑도 그렇고 또 아이들이 대견한 생각도 들어서 그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댁 전화번호도 못 외우시는 혼미한 정신의 할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연락처와 함께 보냈다. 아이들에게 만나자는 쪽지를 보내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이 만남을 꺼린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내 경거망동이 부끄러웠다. 아이들의 처지를 신중하게 배려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였다 할지라도 한참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의 자존심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무척 미안했다. 그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을 주고자 나름대로 방법을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고, 아이들에겐 그런 것들이 자칫 값싼 동정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은 배려로 조씨할머니를 돕는 마을 사람들 

지금은 새벽 여섯시. 한 시간 후면 조씨 할머니가 첫 순시에 나서는 시간이다. 잠깐 바람을 쐬러 베란다에 나가보니 야간에만 폐지를 줍는 아저씨가 인사를 한다. 낮에는 폐지 줍는 사람들이 난립하다보니 반반한 박스 하나 건지기 힘들지만 밤에는 저 아저씨 혼자 다니니 벌이가 쏠쏠하다.

몸이 어디가 심하게 불편한지 왜소하고 허름한 차림새가 안쓰럽다. 그나마 젊은 아저씨다. 그래서 밤 작업이 가능한 것이다. 가끔 새벽에 문을 열고 내다보면 땀을 뻘뻘 흘리며  폐지를 싣고 있다.

"아주머니, 정말 죄송한데, 이 물병에 물 좀 채워주실랍니까? 목이 마른데 물이 떨어져서요."

몹시 무덥던 열대야의 어느 여름밤. 골목으로 난 방문을 열어놓고 있자니 그 남자가 다가와 수줍게 물병을 내밀었다.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사람에겐 목마를 때 편의점에서 파는 생수 한 병 선뜻 사 마시는 일조차 망설여졌을 것이다.

"아저씨, 물병 이리 주시고 우선 이거 좀 드시고 계세요."

나는 피로회복제 한 병을 그에게 건네고 물병에 정수기물을 콸콸 채워주었다. 왜소한 체구의 아저씨는 연신 고맙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날 이후로 그 남자는 새벽에 나와 마주치면 꼬박꼬박 인사를 한다. 무척 선량해 뵈는 아저씨다.

'야간조' 아저씨가 샅샅이 훑고 간 자리에 '주간조' 조씨 할머니가 등장하실 시간이다. 하지만 또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새 할머니의 수레는 금방 채워질 것이다. 하찮은 쓰레기 한 다발 함부로 버리지 않는 골목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되는 한, 할머니의 수레는 결코 비워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태그:#복지 , #자본주의 , #폐지, #선행, #할머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