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트리에스테 근교 세자나 이야기

국경검문소
 국경검문소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루파에 이르니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이 나온다. 유럽연합국가로 들어가려면 항상 검문검색이 심하다. 이곳 역시 출국과 입국심사가 까다롭다. 특히 입국심사가 까다로운데, 경찰이 차에 탑승해 사람뿐 아니라 차량에 대한 검문검색까지 한다. 그것은 유럽연합 국가로 불법입국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발칸 국가에 비해 유럽연합 국가의 소득이 높아, 같은 시간 일해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쉽게 말해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 1년 돈을 벌면,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에서 10년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차량도 많고 검문도 꼼꼼해 1시간 정도 걸려 국경을 넘는다. 우리 차는 이제 트리에스테 방향으로 달린다. 그것은 호텔이 트리에스테 근교의 세자나에 있기 때문이다. 트리에스테는 아드리아해의 가장 북쪽에 있는 항구도시지만 이탈리아에 속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트리에스테는 1382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트리에스테는 오스트리아 제국이 지중해로 진출하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에 이어 네 번째로 큰 도시이기도 했다.

트리에스테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에 속하게 되었고, 아드리해의 끝에 있는 항구도시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유럽이 동·서로 갈리면서, 서방진영의 끝에 위치한 항구로 교역량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동유럽이 민주화되고 동·서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옛 명성을 회복해 가고 있다. 현재 트리에스테는 선박제조, 무역과 같은 상공업과 관광·교통의 중심지로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 인구는 20만 5천 명이다.

세자나의 사피르 호텔
 세자나의 사피르 호텔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트리에스테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근교에 있는 세자나로 간다. 세자나는 슬로베니아 땅으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세자나에 도착하니 현대적인 디자인의 카지노 호텔 사피르가 우릴 반긴다. 이곳이 관광휴양지임을 알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로비에 광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호텔과 광물, 잘 어울리지 않는 배합이다. 알고 보니 주변의 동굴과 광산에서 채취된 광석들이라고 한다. 이번 발칸여행에서 우리가 묵은 호텔들은 건물의 외관이 현대적일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도 실용적이고 아주 편리했다.

세자나는 현재 트리에스테에서 포스토이나 동굴을 거쳐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로 가는 교통의 요지에 있다. 포스토이나 동굴까지는 35㎞ 떨어져 있으며, 류블랴나까지는 80㎞ 떨어져 있다. 고속도로와 철도가 이곳을 지나가며, 세자나 자체에도 꽤 유명한 식물원과 문화유산이 있다. 세자나는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문화적으로 서유럽과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세자나가 유고슬라비아 땅이 된 것은 1945년 5월이며, 1991년부터 슬로베니아에 속하게 되었다.   

기차를 타고 역사적인 동굴 속으로

포스토이나 지형
 포스토이나 지형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씨가 좋다. 이제 우리는 바닷가 지역을 떠나 다시 산악지역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찾아갈 포스토이나 동굴은 해발 550m의 피브카(Pivka)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피브카 강이 흐르고 포스토이나가 그 중심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포스토이나에서 2 ㎞쯤 산으로 들어가면 포스토이나 동굴에 이르는데, 1818년 이 지역 주민 루카 체크에 의해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미 야네즈 바이카르트 발바소르 같은 사람에 의해 언급되고 있다.

그 후 전문탐험가와 동굴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동굴의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했고, 1819년부터 일반 사람들에게 개방되었다. 1824년부터는 안내자가 생겼고, 1825년에는 이곳에서 무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1872년 마차를 통한 관광이 시작되었고, 1884년에는 동굴 안에 전기가 가설되었다. 1914년 처음으로 동굴기차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1945년 이것은 전기기차로 대체되었다. 동굴 전체 길이는 20㎞이며, 현재는 그 중 5.2㎞ 정도만 관광객에게 개방되고 있다.

포스토이나 동굴 입구
 포스토이나 동굴 입구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포스토이나 동굴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니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9시 첫 입장에 맞춰 왔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동굴로 가는 길에는 피브카 강이 흐르고 있다. 강에는 나무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면 관광안내소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슬로베니아와 포스토이나 동굴에 관한 자료를 얻는다. 슬로베니아 지도, 류블랴나 가이드북, 슬로베니아 음식을 소개한 '슬로베니아의 맛(Taste Slovenia)' 등 상당히 전문적인 자료다.

그리고 포스토이나 동굴 앞에 서니 1818년에서 2011년까지 3천4백만 명이 이곳을 방문했다는 깃발이 펄럭인다. 동굴 입구는 동향을 하고 있어 동굴 안으로 아침 햇살이 비쳐든다. 그러나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전기조명이 불을 밝힌다. 우리는 기차 타는 곳으로 간다. 기차는 한 자리에 두 명씩 네 명이 한 조를 이루는 형식이다. 그러한 기차를 연결하여 한 번에 백 명 이상을 태우고 간다.

동굴 기차
 동굴 기차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기차가 출발하자 시원한 바람이 몸에 부딪친다. 눈앞으로는 기기묘묘한 석회암들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동굴의 높이는 꽤 높은 편이지만 낮은 곳은 머리가 부딪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기차는 3.2㎞를 달려 우리를 동굴의 종점에 내려놓는다. 이제야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1.8㎞를 걸을 예정이다.

걸으면서 석회암 동굴의 진수를 맛보다

방해석 장식의 석회암 동굴 모습
 방해석 장식의 석회암 동굴 모습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걸으면서 지나갈 곳은 다채로운 길(Colorful passage), 큰 산(Great mountain), 아름다운 동굴(Beautiful caves), 러시아 길(Russian Passage), 연주회장(Concert hall)이다. 먼저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커튼으로 불리는 석회암 벽이다. 그리고 다양한 모양의 석주와 석순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가니 오르막이 시작된다. 공간이 점점 더 크고 넓어지면서 정말 다채로운 종유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스케일도 크다. 지금까지 본 석회동굴과는 차원이 다르다.

천정에는 유리가 녹아내린 것처럼, 뾰족한 침 모양을 한 방해석 장식이 붙어 있다. 큰 산은 동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동굴의 입구보다 40m나 높다고 한다. 이곳에는 노아의 방주, 마천루 등의 이름이 붙은 종유석이 있다. 아름다운 동굴에서는 스파게티 모양의 석회석이 천정에서 흘러내려 정말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마치 가는 빨대가 천정에 붙어있는 것 같아 사람들은 이 지역을 파이프 실(Pipe chamber)이라고 부른다.

석회석이 파이프처럼 매달린 모습
 석회석이 파이프처럼 매달린 모습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여기서 터널을 두어 개 지나면 러시아 길에 이르게 된다. 러시아 길이라는 명칭은 러시아 포로들에 의해 만들어진 러시아 다리 때문에 생겨났다. 러시아 길은 동굴 입구보다 20m나 낮은 곳을 지나고 있어 지금 현재도 석순과 석주, 종유석 등이 생성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떤 곳에는 물이 흘러내리면서 끊임없이 석회석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침식의 결과는 수만 년이나 되어야 나타날 테니 그냥 현재의 현상을 보고 즐기는 수밖에는 없다.

브릴리언트 석주
 브릴리언트 석주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러시아 길을 지나면 걷는 길의 마지막 지점인 연주회장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는 포스토니아 동굴의 상징인 브릴리언트 석주가 있다. 말 그대로 화려하고 빛나는 석주다. 이곳 연주회장은 그 면적이 가장 넓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면적이 3천㎡나 되고 높이가 40m나 된다. 그러므로 만 명 정도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울림현상이 좋아 실제로 연주회가 열리기도 한다고 한다.

석순과 석주가 잘 발달된 모습
 석순과 석주가 잘 발달된 모습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곳을 지나면 작은 수족관이 나타는데 그곳에 인간의 얼굴 모양을 한 물고기 휴먼 피시(Human fish : Proteus Anguinus)가 있다. 그런데 어두워 잘 보이질 않는다. 이곳 동굴 안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작은 동굴박물관이다. 포스토이나 동굴의 역사와 현황을 글과 사진을 통해 잘 설명해놓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책과 기념품을 팔고 있다. 나는 포스토이나 동굴을 자세히 소개한 책을 한 권 산다. 이제 나와 아내는 기차정거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면 십분도 안 돼 동굴을 빠져 나갈 수 있다.
  
포스토이나 동굴 밖에서 본 풍경

휴먼 피쉬 티셔츠
 휴먼 피쉬 티셔츠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기차를 타고 다시 동굴 입구의 그레이트 홀에 도착하니 동굴 속으로 흐르는 피브카강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밝은 세상이 우리를 기다린다. 밖에서 우리는 커피를 한 잔 마신다. 동굴의 온도가 낮아 몸이 차가워지기도 했고, 또 조금은 여유를 갖고 동굴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나서 이곳의 기념품들을 살펴본다. 동굴과 관련된 물건이 대부분이다. 그중 휴먼 피시를 이용한 티셔츠, 손수건, 식탁보 등이 눈에 띈다.

들어올 때와 달리 시간 여유를 가지고 동굴 주변을 살펴보니 자연이 참 아름답다. 강과 나무 그리고 집들이 아주 잘 어울린다. 꽃과 식물 그리고 나무를 어쩜 이리도 잘 가꾸었을까? 함께 한 우리 팀 사람들 모두가 이곳을 떠나기 싫은지 카페나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색다른 것을 본 데다 날씨가 좋고 분위기까지 좋기 때문인 것 같다.

나무와 꽃 그리고 집이 어울리는 풍경
 나무와 꽃 그리고 집이 어울리는 풍경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나와 아내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피브카 강을 따라 걷는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심어져 있다. 우리는 이내 강에 놓인 목조다리를 건넌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이 그렇게 맑지를 않다. 더 많은 석회암 지대를 지나야 물이 맑게 정화될 모양이다. 포스토이나 동굴을 보느라 우리는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냈다. 다음 찾아갈 곳은 줄리앙 알프스 산록에 있는 호수도시 블레드다. 블레드까지 거리는 103㎞로 1시간 30분쯤 걸릴 예정이다. 이제부터는 길이 좋아 시간도 절약되고 여행도 조금은 편해질 것 같다.


태그:#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 동굴, #피브카강, #석회암, #종유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