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교북동 골목 모퉁이에 자리한 서울노숙자선교회 앞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급식을 싣고 있다.
 교북동 골목 모퉁이에 자리한 서울노숙자선교회 앞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급식을 싣고 있다.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이것 참…. 이게 선교회야?'

하늘은 잿빛 구름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도심에서 보던 현대적인 회색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때가 끼고 회색 기운 가득한 서울시 종로구 교북동, 기자가 닿은 곳은 그 후미진 골목 귀퉁이에 있는 '서울노숙자선교회'였다. 선교회에 들어서자 어스름한 주방에서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그때, 등 뒤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오셨어요? 찾는데 힘들었죠?"

그를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노숙인을 취재하려던 기자는 '교북동에 한 목사가 안 좋은 환경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공짜로 준다'는 소문을 들었다. 몇 번의 연락 끝에 만나게 된 그, 15년째 서울역·용산역에서 노숙인 무료 급식하고 있는 최성원(66) 목사다.

그가 운영하는 노숙자선교회는 일주일에 세 번, 한 번에 약 130~140명의 노숙인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무료 급식이 있는 날이면 최 목사와 그의 아내는 오전 5시 30분부터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조리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필자가 노숙자선교회에 닿았을 때 사고가 터졌다.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 남성 자원봉사자의 목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이모(목사의 아내)! 큰 밥통이 고장 났어요. 바빠 죽겠는데 고장나면 어떡해…."
"그럼 일단 작은 밥솥으로 밥하고, 고장 난 것은 한쪽으로 치워놔요."

서울노숙자선교회는 재정이나 시설 모두 취약한 상태다. 지난겨울에도 전기요금·가스비·수도요금을 내지 못해 한겨울을 냉골에서 지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주일에 세 번 무료급식은 어떻게 해서든 준비했단다. 그럴 때는 동료 목사들에게 손을 벌려 근근이 선교회를 유지할 수밖에. 기자가 '요새 상황은 어떠냐'고 묻자 최 목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원이 거의 없으니 힘든 것은 마찬가지지요. 지금 전기요금이랑 가스비가 3개월치 밀렸어요. 며칠 전에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와 밀린 세금 안 내면 끊어 버리겠다고 하더군요. 착잡하죠. 공무원들은 와서 '잘 돼가고 있느냐'는 말은 안 하고 '선교회 옆에 쓰레기 당장 치워라', '제때 세금 내라'라고만 하니 기운이 빠지기도 합니다."

비록 할 수 있는 말은 '자활하시라'는 말 뿐이지만

따스한채움터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숙인들. 무료급식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다.
 따스한채움터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노숙인들. 무료급식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다.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목사님. (음식을) 다 실었어요. 이제 출발해야겠는데요?"

이날 그들이 무료 급식을 하는 곳은 서울역에 있는 따스한채움터였다. 서울시가 마련한 이 건물에는 약 10개 교회들이 무료급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 목사는 소형 트럭에 몸을 싣고 운전대를 잡으며 기자에게 입을 열었다.

"따스한채움터 같이 노숙인들에게 급식해 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죠. (그 시설이) 없을 때는 역 광장에서 급식했으니까요. 하지만 밥만 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요. 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에요. 노숙인 무료급식은 그들을 연명시킬 수는 있겠지만, 훌훌 털고 일어나게 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일하게 만들어야죠."

어느덧 닿은 서울역. 따스한채움터 앞에는 무료급식을 타러 온 노숙인들이 줄에 줄을 서 있었다. 12시가 지나고 노숙인들이 하나둘 식당 안으로 입장했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엎드려 있는 이, 반쯤 눈을 감고 있는 이들이 눈에 밟혔다. 그때, 급식대 앞에 선 최 목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정부는 공정사회를 약속했어요. 소외된 자들에게 재도약의 기회를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된 것은 없어 보입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원가 1500원짜리 식사를 위해 길바닥에서 만날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희망을 가져야 해요. 자신을 믿고, 힘을 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활을 위해서 이렇게 음식이 차려졌어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맛있게 드시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세요."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서울시는 올해 '사회 취약계층 보호 및 자활지원 강화'와 함께 '자활 지원 사업 내실화·자립능력 제고'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최 목사처럼 현장에서 노숙인 자활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에게 서울시의 지원은 쥐꼬리만큼도 안 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노숙인들에게 '자활하시라'는 말 뿐이었다.

"전 바보여도 좋으니 이 일을 계속하렵니다"

"맛있게 드시고 자활하세요!"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일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공이다.
 "맛있게 드시고 자활하세요!"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일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공이다.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12시 42분. 급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준비해온 음식이 동났다. 설거지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 뒷정리를 맡긴 최 목사는 다시 트럭에 올라탔다.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 했다. 노숙자선교회 운영의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해야 하는데, 이 작업을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서울시청으로 향하는 길에 한국 사회 고질병처럼 여겨지는 대형 교회 문제가 떠올랐다. 헌금이 모이고 모여 '어린 양'들에게 쓰이지 않고 큰 교회를 더 크게 만드는 공사를 벌이는 것이 한국 교회 아니던가. 지나가는 말로 대형 교회 문제를 흘리자 최 목사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요. 교회가 돈을 쌓아 놓는 것도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종교가 사회를 걱정했잖아요? 근데 이제는 사회가 종교를 걱정해요. 교회가 부의 축적기관이 된 셈이죠. 아이고. 이거 보세요. 지금 차에 기름이 다 떨어져 가거든요. 저 같은 목사들은 차에 기름 넣을 여유도 없는데 어떤 교회나 단체는 정부 보조금으로 차를 구입합니다. 참 놀라운 일이죠. 이럴 때마다 되레 '내가 바보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래도 제가 좋아서, 지금까지 한 것들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게 하려고 계속 이 일을 합니다. 하하."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준비 중인 최성원(왼쪽) 목사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준비 중인 최성원(왼쪽) 목사
ⓒ 김지현

관련사진보기

지인을 만나고 나온 최 목사 얼굴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할 수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축하한다'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그는 필자를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시동을 걸었다.

"제 소원이 뭔지 아세요? 제 소원은 '노숙자'라는 단어가 사전에서 사라지게 하는 거예요. 물론 쉽지는 않죠. 저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지금 이 상황에서 제 소원은 이뤄지지 못할 거예요. 저 같은 사람들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책적으로도 실효성 있게 대책이 나와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생각하는 노숙인 정책은 첫째, 노숙인들이 더 이상 길바닥에서 생활하지 않게끔 거주 공간을 마련하는 것, 둘째, 알코올중독 등 노숙인들의 고질적 질환을 치료하는 것, 그리고 셋째, 자활·자립을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지금 최 목사는 무료급식 사업을 유지하기도 힘든 형편이지만 여유가 생기면 공동 주거 공간 마련, 심리치료 강의 개설, 일자리 알선 등을 체계적으로 할 계획이다. 사실 그가 운영하는 노숙자선교회의 자원봉사자들 다수는 노숙인 출신이고, 최 목사는 그들의 자활 덕분에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청사진은 얼핏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고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노숙인들의 자활에 자신의 삶을 바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계획의 실현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됐다. 정부가 나서도(특별히 나서지도 않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을 일을 민간 차원에서 하니, 그 어려움은 이루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지하철역 근처에 트럭을 세운 그는 굵직한 손으로 기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살포시 웃으며 '조심히 살펴가라'는 그, 사실 그 말은 되레 기자가 해야 할 말이었다. 어느새 소형 트럭은 기자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져 갔다. 도심의 회색보다 훨씬 거무칙칙한 회색 트럭, 하지만 그 트럭이 향하는 곳은 그 어느 행선지보다 밝아 보였다. 그는 오늘도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 식사를 나르고, 트럭을 몰며 거리 위를 달리고 있다.



태그:#노숙인, #무료급식, #서울노숙자선교회, #자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