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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스님 중광 만행'展이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8월 21일까지 열린다. 사후 9년 만에 열린 전시라 전시물이 적지 않다. 붓과 먹으로 달마와 동자승과 학을 주로 그린 선화와 글씨부터 아크릴로 그린 추상과 구상의 유화와 도자기, 테라코타 등만 해도 150여 점이고 그 밖에도 중광의 자작시, 행위예술이 담긴 사진, 그가 출연한 영화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걸레 스님의 누더기 옷은 그의 얼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가 평소에 즐겨 입었던 누더기 옷이다. 그 자신과 그의 패션과 스타일의 상징물이라 할 만하다.

 

81년 우연히 인사동 조계사에서 열린 구상 시인의 시화전에 갔다가 본 그의 패션은 군화에 깁은 군복패션이었는데 가관이었고 거기에 재치 있게 골라 쓴 빨간 모자 또한 걸작이었다. 장욱진 화백이 길에서 우연히 만나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중광을 향해 대뜸 한다는 말이 '중놈치고 옷 한번 제대로 입었네'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중광은 선(禪)을 근간으로 한 전방위 예술가

 

이번 전을 기획한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대중은 중광을 파계승이자 기인으로만 알고 있으나 실은 예술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실천하는 예술가였다"며 "서예미술관에서 중광 전이 열린 건 그가 서예를 모든 예술의 으뜸으로 봤기 때문이다"라고 부언한다.

 

중광은 우선 시인이었다. 그의 시를 누구보다 세심하게 봐온 구상 시인은 화집 '미친 스님'에서 "오늘의 예술가 일반은 시적이긴 해도 시인이 아니나 중광은 시인이다. 시가 표현 이전에 존재하듯 중광의 그림은 언어 이전의 시다"라고 극찬했다.

 

그는 이렇게 시뿐만 아니라 선(禪)을 근간으로 하는 전방위 예술가였다. 그림은 물론 서예와 도예에 능했고 액션페인팅이나 행위예술에서도 누가 넘볼 수 없었다. 성과 속을 넘어선 구도자였고 또한 영화배우이기도 했다. 성에 대한 탁견을 보이는 논객이었고 여성을 최고의 스승으로 모시는 페미니스트였다.

 

중광 왈 "난 피카소보다 한 수 위"

 

그는 백남준이 시도하려 하다 못한 자신의 성기에 붓을 묶어 그림을 그리는 광기도 보이며 거침없는 예술세계를 펼쳤다. 이런 그를 알아준 건 국내보다는 국외에서였다.

 

중광은 1977년 영국 왕립아시아학회에 초대를 받았고 거기서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라는 퍼포먼스를 하며 자작시를 낭송해 '걸레 스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세상의 더러움을 닦아주는 걸레가 되겠다는 정체성을 만천하에 선언한 셈이다.

 

그의 재능을 진작 알아차린 랭커스터 버클리대 동양학과 교수도 '미친 스님(Mad Munk)'을 저술했고 이 책에서 그를 '한국의 피카소'라고 추켜세웠다. 그러자 중광은 자신은 드로잉도 없이 5초 만에 그림을 그릴 수 있기에 피카소보다 한수 위라고 익살을 피웠다.

 

그의 작품은 대영박물관, 샌프란시스코동양박물관, 록펠러재단 등에 소장되어 있다.

 

너털웃음, 언어와 몸짓이 다 예술

 

그에게 수행은 따로 없다.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수행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되고 몸뚱이만 뒹굴어도 예술이 된다. 'ㅆ', 'ㅈ'으로 시작하는 진한 욕설마저도 자연스럽게 예술이 된다. '하늘의 순진(天眞)'을 깨달은 기인이나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우리가 문명 속에서 잃어버린 '동심, 해학, 애욕'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그의 너털웃음 또한 범상치 않다. 수행의 고수가 아니면 넘볼 수 없는 경지다. 그러면서 그는 '세상을 훔치며 벗기며 산다'고 했다. 이게 뭔 말인가 하니 자신은 책을 많이 읽어 남의 진리를 많이 훔쳤고 욕심에 빠진 사람들 옷을 벗기며 살았다는 뜻이다. 기막힌 비유다.

 

중광은 또한 1986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 '허튼소리'와 1989년 이두용 감독의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에서 주연으로 출현했다. 제5공화국 시절 '허튼소리'는 사전검열에서 12곳이나 삭제되기도 했으나 아시아국제영화제에서 한국우수영화로 선정되었다. 또한 '청송으로 가는 길'에서 중광은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까지 올랐다. 연기가 천연덕스러웠나 보다.

 

성과 속, 동과 서를 초월한 진정한 종교인

 

그는 또한 성과 속, 동과 서를 초월하는 종교인으로 삶과 종교와 예술을 하나로 봤다. 모든 법은 하나로 통한다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을 믿었다. 그러기에 그에게 종교 갈등이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랑과 자비는 둘이 아니고 하나였다. 불교와 기독교에 깊이 들어가면 서로 만난다고 봤다.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사람만 형제자매가 있는 게 아니다. 종교도 그렇다. 형제자매가 서로 싸우고 헐뜯으면 그 집안은 망한다. 타종교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경하고 의지하고 상부상조해야 한다. 형제자매 종교가 되어야 사회가 안녕하고, 나라가 번창하고, 국제사회에서 앞서 갈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무조건 믿는 종교는 함정이 많다고 경고하면서 종교인을 빙자한 위선자가 많으니 종교를 제대로 알고 믿으라고 충고한다. 그는 또 "불교, 유교, 개신교, 천주교는 하나같이 맹신자가 100에 90명에 이르고 나머지 10명 중에도 눈이 열린 자가 한두 명뿐이다"라고 해 종교에서 불신보다 맹신이 더 나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원초적 생명의 원천인 성(性)의 찬미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성에 대한 그의 독특한 해석이다. 그는 성교를 성교(聖交)로 봤고 애욕을 모든 걸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인간 에너지의 원천으로 봤다. 섹스마저도 동심으로 보기에 하늘의 마음으로 담을 수 있었고 그러기에 최고의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그의 성 담론 중 일부를 여기에 옮겨본다.

 

"섹스는 자연스럽게, 남이 알건 말건, 보건 말건, 개처럼 닭처럼 돼지처럼 장소 가릴 것 없이 정직하게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 개나 돼지들은 우리보다 나은 선지식(善知識)들이다. 섹스와 명예에서 해방되지 않고는 절대 자유인이 될 수 없다. 다만 마지막으로 지킬 것은 양심의 혼뿐이다. 그 다음이 무아(無我)이다. 무아만이 율사(律師)가 된다."

 

여성과 모성을 최고로 모시는 페미니스트

 

끝으로 그의 여성과 모성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자. 그는 자신을 파계승으로 만들 정도로 여성을 탐했다. 그러나 그것도 원효처럼 속세를 깊이 체험하기 위한 구도의 한 방법이었다. 결국 오랜 수행 끝에 여자를 수도자의 선생으로 받들었고 예술의 모태가 됨을 고백하게 된다. 그는 마침내 여자를 버리지도 소유하지도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글 가운데는 어머니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의 글이 여러 편 있다. 또한 '내 스승은 위대한 여자'라는 시에서 여자를 통해 지혜의 눈을 뜨고 무애철학을 터득하게 되었다며 여자의 신비한 위력을 입이 침이 마르도록 찬미한다. 여자라는 위대한 존재가 없었다면 내가 화가나 시인이 결코 될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최후 고백이다.

 

걸레스님 중광의 중요활동과 발자취

 

1935년 1월 4일 중광(重光, 고창률) 제주도 출생 I 1960년 통도사 구하스님 제자가 됨

1977년 영국왕립 아시아학회에 참석해 '나는 걸레'라는 시 낭송 후 '걸레스님'으로 불림

1979년 'The Mad Monk'(버클리대학 동양학과장 랭커스터 교수 지음)출간

1979년 미국의 공영방송 PBC와 CNN, 일본의 NHK, 영국의 SKY Channel 작품 소개

1979년 10월 조계종단으로부터 승적을 박탈당함 I 1981년 서울 '미(美) 화랑' 중광 초대전

1983년 뉴욕에서 록펠러재단 초대전을 열었고 하와이 주립대학 동서문화센터 초대전

1985년 '허튼소리'출간 1986년 영화 '허튼소리'아시아 국제영화제 출품, 한국우수영화로 선정

1988년 화집 '중광인터내셔널(도쿄)' 출간 I 1990년 영화 '청송으로 가는 길' CNN 월드뉴스 방영

1991년 '나는 똥이올시다' 출간. 종합예술집 '9×9=50'출간. 한국평론가협회 미술부문 수상

1991년 일본·영국·미국 TV 중광 방영 I 1993년 제8회 국제 LA 아트페어 초대 퍼포먼스

1994년 '나는 세상을 훔치며 산다' 출간 I 1996년 제일제당의 영문 캘린더

1997년 '현대미술의 거장'에 '동심' 판화 선정. 독일 함부르크미대 초빙교수

2000년 가나아트센터 '괜히 왔다갔다 한다' 전 I 2002년 3월 9일 입적. 묘비명 "괜히 왔다 간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8월 21일까지 입장료 성인 5000원 
8월 6일 오후 2시 김수용 감독의 특강: '나는 왜 허튼소리를 만들었나' 
장소: 예술의전당 아카데미 홀 02)580-1300


태그:#중광, #걸레스님, #구상 시인, #THE MAD MONK,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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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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