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2월부터 지켜본 서울 부암동 백사실계곡, 서울환경연합은 여름이 다가오는 6월 13일 어김없이 백사실계곡을 찾았습니다. 겨울의 적막함과, 봄의 생동감을 넘어 이제는 여름의 성숙함을 머금고 있는 백사실계곡. 점점 높아지는 온도계의 수은주처럼, 그 생명의 벅찬 박동 또한 더욱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백사실계곡으로 진입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오늘 답사에서는 '동명폭포'를 첫 관문 삼아 백사실계곡으로 진입합니다. 과거에는 9곡 폭포로써 한양의 멋을 한층 더해주었던 동명폭포는 현재 그 주변을 성벽처럼 두르고 있는 주거지들에 의해 그 멋진 모습을 잃어버린 상황입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요? 바위를 깎으며 수천 년을 흘러온 동명폭포는 여전히 그 위용을 뽐내며 모든 물이 그렇듯 위에서 아래로 흘러갑니다.

백사실 계곡이 홍제천으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동명폭포를 따라 힘차게 흘러내려야 합니다. 현재는 성벽처럼 주변을 둘러싼 주택가와 각종 하수도관 덕분에 과거의 명성에 비해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바위를 깎으며 수 천년간 흘러온 폭포의 위용은 여전히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자연환경과 멋진 경관을 잘못관리 하였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 동명폭포(좌), 동명폭포를 찾은 할미새(중간), 웅덩이에 모여 있는 버들치의 치어들(우) 백사실 계곡이 홍제천으로 합류하기 위해서는 동명폭포를 따라 힘차게 흘러내려야 합니다. 현재는 성벽처럼 주변을 둘러싼 주택가와 각종 하수도관 덕분에 과거의 명성에 비해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바위를 깎으며 수 천년간 흘러온 폭포의 위용은 여전히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자연환경과 멋진 경관을 잘못관리 하였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 손민우

관련사진보기


동명폭포를 지나 현통사의 담벼락을 따라 얕게 흐르는 계곡을 만납니다. 과거에는 물이 일반 성인의 배꼽까지 차 있던 이 곳은, 콘크리트 보가 들어선 뒤로 모래가 퇴적되어 적은 양의 물이 흐르는 개울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백 마리의 버들치 치어나 올챙이, 가재, 도롱뇽 유생들의 안전한 서식처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이 복원된다면 더욱더 좋은 서식처가 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현통사 앞을 지나는 개울(좌). 과거에 보가 설치되지 않았을 때는 수심이 일반 성인의 배꼽까지 왔었다고 전해진다. 이 지점에서 발견된 가재(중간)와 올챙이(우) 그 외에도 수백마리의 버들치 치어들과 무럭무럭 자란 도롱뇽 유생들의 주된 서식처가 된다.
 현통사 앞을 지나는 개울(좌). 과거에 보가 설치되지 않았을 때는 수심이 일반 성인의 배꼽까지 왔었다고 전해진다. 이 지점에서 발견된 가재(중간)와 올챙이(우) 그 외에도 수백마리의 버들치 치어들과 무럭무럭 자란 도롱뇽 유생들의 주된 서식처가 된다.
ⓒ 손민우

관련사진보기


계곡의 흐름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감탄할 만한 경관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도심 속의 청계천이나, 실개천들에서 인력을 투입해 쉴 새 없이 닦아주어야 하는 청태가 아닌, 자연그대로의 싱그러움이 돋보이는 이끼들도, 모두가 백사실을 아름답게 이루고 있는 자연이라는 이름이자, 순수함의 결정체입니다.

돌틈을 따라 흐르는 물 주변으로 자라있는 이끼(좌), 하천양안을 따라 무성히 자란 식물들(중간), 꺼벙한 눈을 끔뻑이지만 제법 재빠른 몸놀림을 보여주었던 도롱뇽 유생(우)
 돌틈을 따라 흐르는 물 주변으로 자라있는 이끼(좌), 하천양안을 따라 무성히 자란 식물들(중간), 꺼벙한 눈을 끔뻑이지만 제법 재빠른 몸놀림을 보여주었던 도롱뇽 유생(우)
ⓒ 손민우

관련사진보기


자연이 빚어놓은 백사실계곡의 절경들. 자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자리에 있지만 절대 자신을 뽐내지 않는 겸손함으로 숨막히는 경관을 자아냅니다.
 자연이 빚어놓은 백사실계곡의 절경들. 자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자리에 있지만 절대 자신을 뽐내지 않는 겸손함으로 숨막히는 경관을 자아냅니다.
ⓒ 손민우

관련사진보기


배달음식은 약과...계곡에서 고기까지 구워 먹고

백사실을 찾을 때마다 드는 기분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간직한 곳을 방문하는 일이란 벅찬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백사실은 그 아름다움 아래로 슬픈 상처를 숨기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환경연합이 5월 한 달간 진행한 백사실 일일 모니터링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한 달간 방문객이 약 5387명에 달합니다. 평일에는 일평균 93명이, 휴일에는 일평균 310명이 찾습니다. 우천 시를 제외하면 방문객 집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휴일 평균 400명이 넘는 방문객들이 백사실을 찾습니다. 텔레비전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미인박명이라는 속담이 사람뿐만 아닌, 자연환경에도 적용되는 희한한 경우입니다. 몇몇 방문객들은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써 하천 진입이 금지된 백사실계곡에 무단으로 진입하기도 합니다. "무단진입 시 2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경고문도 일부 방문객들에겐 이해하지 못할 상형문자에 불과합니다. 특히 어린 도롱뇽과 올챙이, 버들치 등이 자라나기에 더욱 조심해야 할 시기에 하천 진입을 하는 것이니 더욱 위태로운 행동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약과에 불과합니다. 하천변에서 치킨을 먹거나, 잔칫상에 가까운 음식을 배달시켜놓고 술을 마시는 방문객도 가끔 보입니다. 문화유적 36호로 지정된 별서 터에서는 고기를 구워 드시는 분들까지 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생태경관보존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멀쩡히 서 있고, 위와 같은 행위를 금지하는 문구가 버젓이 써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모험들은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백사실을 잠깐 찾는 방문객들에겐 잠깐의 즐거움이 계곡과 산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에게는 해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계곡의 모든 생물들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인간의 이기심 덕분일까요? 수많은 방문객에 의해 하천 생태계가 훼손당하고, 산길이 깎여 토양이 유실되고, 무심코 버려지는 쓰레기에 물이 오염되어도, 몇몇 방문객들은 무심한 행동들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지구의 탄생역사를 24시간으로 단축시키자면, 인간이 나타난 시간은 단 30초도 채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인류가 자연을 전적으로 지배의 대상으로 본 시각은 19세기 말엽에나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생태계는 급속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수백 종의 동물들이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으며 모든 생명의 터전이던 대지는 차가운 아스팔트로 뒤덮였습니다. 산은 폭파되어 바다를 메우고, 그 자리에 살던 수많은 생명들은 터전을 잃고 신음합니다. 더구나 지금의 인류는 '기후변화'라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거대한 힘에 휩쓸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자그마한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오만의 티끌이 부메랑 되어 인간의 눈앞에 돌아온 '원죄의 태산'입니다.

생물들의 서식처에 우리는 잠시 놀러온 것

백사실계곡. 현재 백사실계곡은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하천으로의 진입이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상황이다.
 백사실계곡. 현재 백사실계곡은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하천으로의 진입이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상황이다.
ⓒ 손민우

관련사진보기

환경을 지키는 일은 커다란 것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작은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조금은 특이하게 생긴 다른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껴 줄 수 있는 마음이, 지구를 지키는 첫걸음이 됩니다. 그들을 어여삐 생각한다면, 그들이 살고 있는 하천에 무단으로 진입해 그들의 생태를 교란시키거나, 그 주변에서 잠깐의 쾌락을 위해 음식을 먹고 하천에 쓰레기를 버리는 일들이 전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백사실 계곡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롱뇽과, 올챙이와, 버들치와, 가재 등, 여러 생명체들이 그들만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며 살아가는 곳이 바로 백사실이라는 자연의 보물입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 바로 백사실계곡입니다. 친구들과 혹은 가족들과 백사실을 찾을때,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 잠시 놀러온 것 뿐이라는 사실을요.

백사실을 지키는 조그마한 행동이, 우리의 푸른 서울을, 더 나아가 푸른 지구를 지키는 티끌이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훗날 지구를 지키는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지구를 지키는 첫걸음, 백사실계곡을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손민우 기자는 서울환경연합 활동가입니다.



태그:#백사실계곡, #생태경관보존지역, #서울환경연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