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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만드는 거 내가 감독이고, 내가 예술가라는 생각을 갖으면 좋잖아요(웃음)"(박황재형 작가)

 

"너무 완벽주의를 추구하시는 것 아닌가요. 오전 내내 열심히 붙여 놓은 건데 그냥 하시지. 너무 더딘 것 같네요"(지역주민)

 

"어르신들 역량이 있는데 이왕이면 여러분들의 손으로 만든 훌륭한 작품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결국 지금은 조금 더디고 힘들더라도 결과를 보면 대만족 하실거에요. 지역주민들도 지금의 노력에 대해 많은 찬사 아끼지 않을 겁니다"(박황재형 작가)

 

4월 5일 오후 1시께, 봄 날씨 답지않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부개1동 철로변 공장 담벼락 밑에서 지역주민과 한 예술가가 즐거운 실랑이를 벌인다. 이유인즉, 자연과 예술과 사람이 조화로운 감성마을만들기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타일벽화 그리기가 시작된 담장 밑에서 향후 작품 방향에 대해 주민과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풍경이다.

 

인천시 부평구 부개1동 주민센터는 지난해 10월께 열린 부평권 도시대학에서 '소통과 나눔의 S라인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로 대상을 차지한 뒤,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지역 현장을 살피다 오래된 단독주택의 담장을 벽화로 꾸며 예술친화적인 마을로 탈바꿈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 지난 3월 1일부터 주변 청소를 마친 후 4월 5일을 기점으로 약 3개월간에 걸쳐 '마을 담장 벽화그리기'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승희, 이정희, 주선희 작가 등이 참여하고 있는 벽화그리기 프로젝트 타이틀은 '십장생도(十長生圖)다. '십장생도'는 상상의 선계(仙界)를 형상화한 것으로서 산·바위 등의 묘사에 화원풍의 청록산수법을 많이 사용하는 등 색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그림은 대각선 구도를 취하여 오른쪽에는 육상의 장생물을, 왼쪽에는 수중의 장생물을 그렸다.

 

이번 작품에 함께 참여하는 김반하 문화생성연구소 큐레이터는 "십장생은 동양에 있어 영원히 죽지 않거나 오래 사는 것으로 여겼던 열 가지 즉, 해·산·물·돌·구름·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생명의 영원성을 표현했다"며 "낡고 허름한 공장 담벼락을 십장생도로 새롭게 꾸며 주변 지역의 주민들이 오래도록 이 지역에서 터를 닦아나가고, 자연친화적인 삶 속에서 더 나은 행복을 염원하고자 기획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공공예술은 진정성을 담보해야

 

이번 감성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는 공공예술 작가들의 모임인 문화생성연구소(IDAC, 이하 아이닥)가 수차례에 걸친 현장 실사 끝에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고 있다. 아이닥 대표를 맡고 있는 박황재형 작가는 "결과 보다는 작품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단순한 인원 동원과 형식적인 벽화 그리기가 아닌, 지역 주민 스스로의 손으로 다시 태어나는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각인 시켜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대표는 "이를 통해 예술가들의 진정어린 고뇌도 교감할 수 있다. 일례로 '예술작품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비쌀까'라는 의문에 대해 스스로 체험하고 습득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한 뒤 "결국 문화예술의 주인인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체화해 가는 이런 활동을 통해 공공예술의 진정성이 담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자리 창출 작업의 일환으로 함께 참여한 주민 김아무개씨는 "우리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참여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예술가 선생님들께서 세세한 것까지 일러 주시니 조금씩 재미와 자긍심이 갖게 됐다"며 "작은 작업이라도 서로 논의하고 방향 설정을 해나감으로써 얻는 소소한 과정이 많은 걸 알게 해주었다"고 소회를 전해 주었다.

 

이어 타일 자르기를 하고 있던 주민 이아무개씨도 "자르고, 붙이고, 부수고, 떼어내고, 다시 자르는 일련의 작업이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보람있고 좋았다"며 "특히 이런 예술 작업에 함께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전국은 지금 공공예술 붐(boom)

 

한편 이번 공공예술 프로젝트가 몇년 전부터 전국 지자체에서 기획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어 향후 문화예술 판도의 신선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문화연대의 한 관계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공공예술은 예술가 개인 작업에서 벗어나 삶의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 나가는 사회적 작업이며 지역사회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개발, 지역 주민의 문화적 감수성 및 삶의 질 향상 등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에서 향후 지역문화예술 아이템의 중요한 화두로 작용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공공예술프로젝트로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문화나눔 ▲쾌적하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의 실현 ▲주민참여형 공공미술의 새로운 모델창출이라는 목적 아래 시행하고 있는 '아트 인 시티'다. 대구 달서구 SCN 성서공동체 FM 건물과 옥상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대구성서공단프로젝트'를 비롯해 대전홈리스프로젝트, 부산수정동프로젝트 등이 '아트 인 시티' 사업으로 추진됐다.

 

또한 안양아트시티 21구현을 위한 공공예술프로젝트,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 열우물길 프로젝트, 충남 아산시 '우리동네 가꾸기 사업', 충북 옥천의 멋진 신세계 프로젝트, 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 벽화 프로젝트, 서울시 낙산 공공미술프로젝트 등이 진행됐다.

 

낙산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명훈 대구 성서공단 예술감독은 웹진 '미술과 함께 거닐다'라는 책을 통해 "미술이 공공의 적이 아닌 이상에 인간 삶의 질 문제를 경제논리보다는 문화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다면 좀더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돈이면 모든 문제와 숙제가 해결될 것 같이 말하지만, 공공미술이란 것이 어느날 갑자기 여기저기에 자신의 생활영역을 불편하게 점령한 것 같이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사이 우리의 무관심이 수많은 소외를 만들었음을 자각할 수 있다면, 이제라도 관심과 대화를 시도할 때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이 감독은 "공공미술로 그려진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우리는 단순히 미술 작품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이야기 상대를 만나며, 빈곤이 아닌 풍요를 만나며, 세상에 대한 증오가 아닌 배려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그:#부개1동, #공공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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