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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가 일본에서 비롯된 음식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자가 활동했던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중국에서는 육류나 생선을 불에 익히지 않고 얇게 저며 식초로 양념한 회가 널리 퍼져 있었다. 공자 자신도 회를 무척 좋아해서 "생선회나 육회는 얇게 썰어 먹을수록 소화가 잘 된다"고 노래할 정도였다. 이탈리아에도 생선살을 소스나 기름에 버무려 먹는 회가 있는데, 주로 참치 살을 올리브기름에 버무려 먹는다고 한다.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중에서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겉그림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겉그림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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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시대의창 펴냄)는 전쟁 때문에 생겨났거나 전쟁 덕분에 널리 퍼진 음식들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음식(문화)들을 대략만 살피면, 커피와 크루아상, 환타, 두부, 라면, 미숫가루, 탕수육, 만두, 브리치즈, 소시지와 베이컨, 통조림과 스팸, 오렌지 마멀레이드, 젓갈, 부대찌게, 흑빵, 럼주, 파스타 등과 오늘날 잔치 음식의 대표가 된 뷔페 등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이들 음식들의 발생과 전파 사연을 '난리 통에 생긴 음식'과 '전쟁이 남긴 음식'으로 나눠 들려주는데, '생선회를 너무 좋아하다가 죽은 어느 책사 이야기'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일본이 생선회의 원조 국가가 아니라는 것과 공자가 어떻게 먹는 것이 좋다고 논할 정도로 회 마니아였다는 사실이 썩 흥미롭다.

생선회를 너무 좋아하다가 죽은 사람은 <삼국지>의 한 인물인, 조조의 책사 '진등'이다. 한때 여포의 책사였던 그는 조조의 능력에 반해 조조의 책사가 되나, 서주를 쳐 유비를 없애려는 조조의 계략을 유비에게 미리 알려줘 유비가 죽음을 모면하게 한다. 결국 서주는 조조에게 빼앗기고 관우는 유비의 가족들을 살리고자 조조에게 거짓 항복까지 하게 되지만….

생선회를 너무 좋아하다가 죽은 조조의 책사 '진등'

진등 덕분에 서주를 얻은 조조는 그의 공을 치하하며 광릉 태수 자리를 상으로 준다. 그리하여 그는 광릉 태수로 유유자적한 말년을 보낸다. 당시 광릉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강에서 잡은 생선으로 요리하는 음식들이 많았는데, 특히 생선을 익히지 않고 날로 먹는 회가 유명했으며 생선회를 즐기는 중국 사람들이 많았단다.

진등은 수많은 물고기 요리 중 특히 날로 먹는 생선회를 무척 즐겼다. 그런 그는 점점 알 수 없는 병세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명의 '화타'가 충고한다. "생선을 날로 먹어 생긴 병이니 익혀 먹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3년 안에 병이 재발하여 죽게 된다"고. 하지만 그는 화타의 충고를 무시하고 생선회를 계속 즐겨 먹다 3년 안에 병이 재발하여 죽고 만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언제 생선회가 등장했을까? 14세기 말, 무로마치 막부 때에 처음 나타났다. 그 이전까지는 일본에서도 생선은 끓이거나 찌는 방식으로 조리했다. 기계식 그물을 사용하는 어획 방식과 생선을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하는 냉동기술이 등장하는 현대 이전까지, 일본에서 생선회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생선 초밥도 생선회를 쉽게 먹을 수 없는 서민들을 위해서 생선살을 조금씩 발라내 밥 위에 얹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중에서

그런데 공자나 진등만 회에 미쳤던 것은 아니 모양이다. <삼국지>에 보면 조조도 회를 무척 즐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좌와의 일화 등이 나오니 말이다. 송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소동파도 생선회를 무척 즐겼단다. 우리 역시 오늘날 생선회나 육회, 초밥을 즐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생선회를 가리켜 "살아있는 생선의 살을 그대로 먹는 비위생적인 음식"이라며 도리질하던 미국인들과 유럽인들 사이에 회 마니아들이 점차 늘고 있다나.

중국의 내로라하는 역사인물들이 즐겼던 생선회가 언제 어떻게 중국에서 인기를 잃었는가. 생선회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여 중국집의 인기메뉴인 탕수육 이야기도 생선회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인지라 다른 주제보다 좀 더 특별하게 읽혔다.

탕수육, 영국인이 미워서 생겨났다고?

탕수육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영국은 무역적자를 해결하고자 중국에 아편을 수출하고 중국은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과 정치인들까지 아편에 찌드는 상황이 되고 만다. 아편전쟁에 승리한 영국은 중국에 "힘들게 젓가락질 하지 않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중국인들은 비통함을 곱씹으며 영국인들이 포크로 쉽게 찍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여 바친다. 이것이 탕수육의 시초이다.

달짝지근한 고기 요리인 탕수육이 알고 보면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굴욕적인 요리인 것이다. 당시의 중국 요리사들은 튀김옷을 입고 펄펄 끓는 기름에 튀겨지는 고기를 패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영국인들에게 빗대지는 않았을까? 고려를 무너뜨린 이성계를 미워한 개성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성계육'이라고 부르며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는 일화에서처럼.

침략자 여진족을 물리치고 빼앗긴 국토를 되찾으려다 진회가 씌운 누명으로 죽은 악비의 슬픔을 비통해한 나머지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넣고 튀긴 것(유조)을 "이것은 못된 진회의 몸뚱이다"라며 질겅질겅 씹어댔던 송나라 사람들처럼. 비엔나를 집어 삼키려던 오스만 제국이 물러가자 비엔나의 한 재빵사가 오스만 제국의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의 빵(크로와상)을 만들어 비엔나 사람들이 즐겨 먹게 한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음식들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하루도 우리 삶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음식을 통해 만나기 때문일까? 알려고 들면 복잡하게 여겨지기도 했던 세계사의 여러 장면들과 민족과 국가 간 이해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이해가 쉽지 않던 수많은 전쟁들의 발생과 영향 등이 쉽게 이해되는 것은.

"유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환타 마시기를 꺼렸다"

초창기 환타 포장지에는 호랑이들에게 난폭하게 물어뜯기고 학대당하는 유대인들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유대인 탄압을 정당화하려는 히틀러의 정책이 반영된 것이다. 이 때문에 훗날 유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환타 마시기를 꺼렸다.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환타는 나치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막대하게 팔렸고, 나치는 이런 환타를 국민들과 유럽인들에게 독일의 위대함을 선전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는 보드카를 유난히 좋아해 매일 마셔댔는데, 이를 보다 못한 황후 마리아가 "폐하! 건강과 나라를 생각하신다면 제발 보드카를 끊으십시오!"라고 애걸할 정도였다.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당들이 아내의 등쌀에 술을 끊은 일이 있던가. 황후가 보는 앞에서 계속 보드카를 마시자니 잔소리가 귀찮고 하여, 알렉산드르 3세는 묘안을 생각해낸다. 구두공을 불러 보드카를 숨기고 다닐 수 있는 긴 장화를 만들게 한 것이다. 그 뒤로는 장화 안에 보드카를 넣고 다니며 황후 몰래 보드카를 즐겼다고 한다.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 '환타'와 '보드카' 이야기 중에서

환타와 보드카에 얽혀있는 이런 사연들도 흥미롭다. 소풍 때나 기껏 맛볼 수밖에 없었는지라 내게는 언제든 실컷 마시고 싶은 선망의 음료였던 환타가 나치의 선전도구로 악용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기까지  읽는 동안 한국전쟁 때문에 생겨났다는 '부대찌게'나 임진왜란 때 전해졌다는 우리의 대표 양념 '고추'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이들 외에 우리의 전쟁과 관련된 음식에는 미숫가루와 청어와 설렁탕, 소주 등이 있다. 오늘날 우리들이 즐겨 먹는 불고기의 원조로 보는 고구려의 맥적에 관한 좀 더 다양한 이야기도 다룬다.

전쟁이 났다고 모든 사람들이 나가 싸우는 것은 아니다. 난리가 나고 전쟁이 지나간 곳에서도 요리는 계속된다. 전쟁 통에 생겨나고, 전쟁이 남긴 음식들이 어떻게 우리 곁에 와 남게 되었는지, 우리들이 자주 먹는 음식들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알고 먹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책을 그다지 즐겨 읽지 않는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그런 책 같다.

워낙 많은 음식들의 이야기를 다루는지라 한 꼭지 글로 다 소개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그 대략만 소개하면 '▲맥주는 유럽이 아닌 중동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관우가 두부의 신이 된 사연은? ▲뷔페 음식 문화는 잔인무도한 해적들이 만든 것이다? ▲여진족을 물리치고 왜구토벌에 기여한 조선의 군량 미숫가루▲세계최초의 포도잼은?▲나폴레옹 전쟁이 만들어낸 통조림▲고대 유럽에도 젓갈이 있었다▲치즈 탄생 초기 수도사들이 치즈를 만든 이유는? ▲몽골 침략이 남긴 설렁탕? ▲소주는 이슬람에서 유래?▲시칠리아를 정복한 아랍인들의 선물 파스타▲군사들과 백성들의 허기를 달래고자 청어 잡이에 몰두했던 이순신?▲고양이 요리를 좋아한 마오쩌둥' 등의 이야기들이다.

덧붙이는 글 |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저자:도현신|시대의창|2011-02-21|값:13,800원



태그:#음식, #전쟁, #생선회, #탕수육,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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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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