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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강의 건너편에서 바라본 봉선사 노사나불
 이하강의 건너편에서 바라본 봉선사 노사나불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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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3일째 날이 밝았다. 이틀 동안은 잔뜩 찌푸린 하늘과 흩날리는 눈발에 고생스러웠는데, 다행히 구름이 걷히고 해가 얼굴을 드러냈다.

첫 코스인 용문석굴은 둔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로 꼽히는 곳이다. 용문석굴은 북위 427년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400여 년 동안 공을 들인 작품이다. 하남성과 낙양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하며, 명성에 걸맞는 규모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재는 2345여 개의 석굴, 2800여 개의 비문, 50여 개의 불탑, 10만개 정도의 조각상이 남아 있으며 현존하는 종교, 미술, 서예, 음악, 의료, 건축 등 방면의 살아 있는 역사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대형 돌조각 예술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용문석굴의 북문 입구
 용문석굴의 북문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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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의 주차장에서부터 입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전동차를 이용해야 한다. 이곳뿐만 아니라, 중국의 관광지들은 자가용이 들어갈 수 없어 전동차나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날씨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아직 오픈된 전동차에 몸을 맡기기엔 조금은 추운 날씨다. 그래도 아침의 맑은 공기와 차가운 바람이 더해지니 상쾌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이드로부터 받은 티켓은 용문석굴, 향산사, 백거이묘 등 4곳을 관람할 수 있는 통합관람권이다. 뒷면은 엽서 형식으로 되어 있어 관람이 끝난 후 주차장 근처 우체국에서 보낼 수 있다. 낯선 곳에서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엽서 한 장 보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도전해볼까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더라.

용문교와 이어지는 북쪽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햇살을 머금은 이하강이 반짝 반짝 빛난다. 강의 동쪽으로는 동산석굴, 서쪽으로는 서산석굴이 마주한다. 강변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는 걷기 좋은 길이다. 남쪽 입구까지 걷는데만 약 20~30여 분이 소요되는 길이인데다가 석굴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빈양삼동은 북위때 시작하여 당나라때 완성된 것이다,
 빈양삼동은 북위때 시작하여 당나라때 완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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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소개할 것은 '빈양삼동'이라고 불리는 석굴이다. 계단을 올라가면 한 벽면에 총 3개의 석굴을 만날 수가 있는데, 이곳에는 각기 다른 시기에 조각된 불상들이 놓여 있다. 이곳은 용문석굴에서 가장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북위의 '효문제'가 어머니께 덕을 쌓아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 가운데 석굴만 완성하는데 80만 명의 인력을 동원했음에도 2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나머지 두 개의 석굴은 당나라 때가 되어서야 완성이 되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각 석굴에 놓여진 불상의 생김새가 다르다. 북위 때의 것은 갸름하고 얄상한 생김새라면, 당나라 때의 것은 조금 둥그스름하게 복이 가득한 생김새를 갖고 있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의 심미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만불동으로 이동하는 도중, 돌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중국인을 보았다. '저게 뭐라고 저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걸까?'하며 무심코 지나치는데 옆에 오던 가이드가 던진 한 마디에 모두 돌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하남성의 국화인 모란꽃 모양이 새겨진 돌이라고 한다. 누가 인위적으로 그려넣은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새겨진 무늬라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용문석굴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이라 칭해지는 불상, 떨어져 나간 머리 부분이 안타깝다.
 용문석굴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이라 칭해지는 불상, 떨어져 나간 머리 부분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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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에서 유명한 곳 중의 하나인 만불동은 동굴 하나에 불상이 만 개 이상 새겨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석굴은 당나라 때 당고종과 측천무후의 만수무강과 사후 극락 왕생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만 개가 넘는 불상들이 촘촘하게 새겨진 것도 그렇지만 각 불상의 표정이 제각각 다른 것 또한 신기하다.

만불동에는 용문석굴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빼어난 균형미로 가장 요염한 자태를 자랑하는 이 보살상은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의 넋을 빼놓기도 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미녀의 얼굴은 잘려나간 상태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용문석굴에는 이렇게 얼굴이나 코, 목등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불상들이 많다. 세월에 의해 훼손되거나, 종교적·사회적인 이유로 고의적으로 파손된 것이다.

용문석굴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봉선사의 노사나불
 용문석굴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봉선사의 노사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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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히 들어선 석굴들과 거대한 불상들이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중에서도 용문석굴의 백미라면 봉선사의 노사나불을 꼽는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노사나불은 높이가 무료 17.14m로 머리 크기만 3m라고 하니 그 크기가 엄청나다. 크기도 크지만 측천무후의 얼굴을 본 떠 만든 것으로 예술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으로 훼손된 역사적 유물을 복구하려는 공사가 한창이다.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노사나불은 가히 압도적이다.

다른 일행들이 천천히 관람을 할 동안 강 건너에서 바라본 용문석굴의 모습을 담기 위해 함께한 라베이더님과 열심히 뛰었다. 일행에서 빠져나온 우리 때문에 차질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숨을 헐떡거리며 다리를 건넌 후 몇 컷을 찍고 돌아서려는데 멀리서 일행들이 우리쪽으로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차피 이쪽으로 올 것을 모르고 부질 없는 뜀박질을 한 것이다. 라베이더님과 허무하게 실소만 주고 받았다. 우린 뭐한거냐며….

용문석굴도 그렇지만 강가의 풍경에 마음을 뺏겨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한적한 시골풍경이며, 햇살을 등진 늪과 같은 운치있는 풍경에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강둑을 따라 쭉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뛴 덕분에 그나마 시간을 벌었으니 다행이다 싶다.

향산사의 전경
 향산사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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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합류를 한 후 다시 전동차를 타고 향산사로 이동한다. 전동차 탑승장에서 향산사 입구까지는 불과 1분도 안 걸리는 거리, 전동차를 탄 것이 민망할 만큼 짧은 거리다. 차에서 내린 후 계단을 올라 숨이 차오른다 싶을 때쯤 향산사에 이른다.

당나라의 3대 시인으로는 두보, 이백과 더불어 백거이를 들 수가 있다. 향산사는 용문석굴 관광지 내 향산에 있는 아담한 사찰로 중국의 3대 시인 중 한 명인 백거이가 18년 동안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보통은 용문석굴을 찾는 이들은 석굴만 보고 돌아가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패키지 여행의 장점 중 하나라면 놓칠 수 있는 부분까지 짚어줄 가이드가 있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향산사에 들어서면 종루와 고루가 쌍둥이처럼 마주하고 있다. 기상시간은 고루에서 북을 쳐서 알리고, 취침시간은 종루에서 종을 쳐서 알린다고 한다.

천왕전에 모셔진 미륵불과 위타보살, 그리고 4대천왕
 천왕전에 모셔진 미륵불과 위타보살, 그리고 4대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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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의 앞쪽으로는 천왕전이 있다. 천왕전에는 미륵불과 위타보살, 4대 천왕이 모셔져 있는데 그 중 가이드가 들려준 위타보살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위타보살은 사찰을 보호하는 신이기 때문에 칼을 들고 있는데, 그 자세에 따라 사찰의 성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칼을 위로 들고 있다면 그 사찰은 재워만 줄 뿐 먹여주지는 않는 곳이고, 밑으로 들고 있으면 그 반대이며, 옆으로 들고 있으면 둘 다 허락하는 사찰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다 숙식을 할 곳이 없어 절을 찾게 된다면 위타보살의 자세부터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슬며시 웃음을 흘린다.

나는 한국의 사찰을 사랑한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찾은 외국의 사찰은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겉은 소박하지만, 많은 것을 품고 있을 것 같은 한국의 사찰과는 달리 중국의 사찰은 겉은 화려한 듯하지만 뭔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여백의 미가 없이 빽빽히 들어선 건물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사찰은 조용히 걸으며 사색하는 맛이 있는 반면, 향산사에서는 그런 맛을 느낄 수가 없다. 한 곳만 보고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아직은 한국의 사찰이 훨씬 더 좋다.

향산사에서는 이하강과 용문석굴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향산사에 오르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확 트인 전경이 마음 속까지 뻥 뚫어주는 기분이다.

경내를 둘러보고 나가기 전, 백거이 묘로 통하는 뒷문 옆 건물에 전시된 초상화들을 보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가이드에게 물어봤더니 백거이와 그와 함께 글을 쓰던 문인들의 초상을 전시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관리가 소홀해 보이는 백거이의 묘
 관리가 소홀해 보이는 백거이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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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사에서부터 백거이의 묘로 가는 동안은 호젓하게 걷기 좋은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가로는 수풀이 우거져 신선한 공기를 제공한다. 그 깨끗함이 온전히 몸으로 느껴진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리조트 같은 건물들이 보이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공산당이나 고위급 간부들의 별장이라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10분쯤 걷다 보면 백거이의 묘 입구에 이른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용문석굴에 입장할 때 끊었던 표 한 장으로 모든 코스를 돌아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분실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행 중 한 명이 표를 분실해 입장을 하지 못할 뻔했다. 다행히 가이드의 도움으로 새로 표를 끊어 입장을 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의 돈을 더 지불해야 했다.

산뜻한 공기를 만끽하며 정원같은 묘원을 걷다 보면 백거이의 묘를 만날 수 있다. 중국에서 묘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 줄은 모르지만, 이곳이 묘라고 했을 때 조금 놀라웠다. 묘 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도 그렇고 잡초가 무성한 것도 그렇고 관리를 얼마나 소홀히 했는가가 보여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깔끔하게 정리된 묘의 모습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잘 가꿔진 묘원이나 깔끔한 산책길과는 다른 모습이 약간은 혼란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영화 '소림사'의 배경이 되었던 용문석굴 앞쪽의 상가거리
 영화 '소림사'의 배경이 되었던 용문석굴 앞쪽의 상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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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석굴의 마지막 코스인 백거이의 묘까지 둘러본 우리는 다시 전동차를 타고 매표소 쪽 상가지구로 나와 주차장까지 걸었다. 상가지구에서부터 주차장까지는 마치 영화세트장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영화 <소림사>의 세트장으로 쓰였던 곳이라고 한다.

영화 속의 무대가 실제 소림사가 아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것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더욱 놀라웠다. 깔끔하게 정리된 듯한 건물 외관과는 다르게 길 거리에는 음식물 쓰레기들이 넘쳐 나와 있어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산 위에서 보았던 리조트 형의 별장들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랄까? 불과 몇 Km 떨어지지 않는 거리 내에서 중국의 상반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



태그:#중국, #정주, #낙양, #용문석굴, #패키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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