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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여행 마지막 날 다시 태하를 찾았다. 한국의 10대 비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등대 전망대에서 본 울릉도 해안은 절경이었다. 올라갈 때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랐지만 내려올 때는 홀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은 등대에서 모노레일 승강장 못 미쳐 오른쪽으로 어렴풋이 나 있었다.

 

 

비가 내려 길은 더욱 확연해졌다. 멀리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깊은 고요 속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우산을 튕기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린다.

 

 

한갓진 솔숲은 해안절벽에서 끝이 났다. 정자에 잠시 앉아 비를 피하며 다리쉼을 하였다. 4일 동안의 울릉도 여행, 땀을 훔치며 돌아보았다. 길은 해안암벽으로 이어졌다. 비가 내리는 데도 어부는 배를 젓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어부는 여행자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큰 소리로 불렀으나 거센 파도에 묻혀버렸다.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다. 어부도 묵묵히 그물질을 할 뿐이었다. 배에 물이 찼는지 간혹 바가지로 물을 퍼내곤 했다. 파도가 해안절벽을 사정없이 때릴 즈음 어부는 뱃머리를 돌렸다.

 

 

이곳은 예전 배를 매어두고 항해를 위해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 하여 대풍감으로 불리던 곳이다. 지금은 낚시꾼들이 이곳을 더러 찾는다. 길은 절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졌다. 시커먼 암벽을 돌아서니 태하항이 나타났다.

 

 

나선형의 계단을 내려오는데 누렇다 못해 붉은 황토굴이 보였다. 예전 태하에는 많은 양의 황토가 있어 마을 이름을 황토구미라고 부르기도 했다. 성하신당에서 만난 태하리의 도봉춘(70) 할아버지에 의하면 고개 너머 학리에도 황토구미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보다 규모가 작아 작은 황토구미라 불렀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의 황토를 나라에 상납까지 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3년에 한번 삼척영장을 울릉도에 순찰을 보냈는데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섬 순찰의 증거품으로 바치게 했다.

 

 

이규원의 일기에도 이곳을 대황토구미(大黃土邱味)로 되어 있다. 개척 당시 사람들이 이곳에 와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곳 황토의 맛이 짠맛, 매운맛, 쓴맛, 단맛 등 아홉 가지 맛이 난다하여 황토구미(黃土九味)라고도 한다.

 

마을을 지나 성하신당으로 향했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전날 폭우로 인해 살피지 못한 성하신당과 광서명각석문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황토구미, #대풍감, #태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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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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