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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학교를 다니는 동안 머물 숙소에서 바라 본 홍천강변의 경치다. 맑은 강물과 어울리는 풍광이 서울에서 한 시간 이내에 도달할 거리에 있기 때문에 팬션 단지가 형성될 좋은 여건이다.
▲ 홍천강 한옥학교를 다니는 동안 머물 숙소에서 바라 본 홍천강변의 경치다. 맑은 강물과 어울리는 풍광이 서울에서 한 시간 이내에 도달할 거리에 있기 때문에 팬션 단지가 형성될 좋은 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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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30분이 되어 먼동이 트면 헤리가 짖기 시작한다. 나에게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하는 신호다. 이 시간은 대부분 108배를 마치고 식사 중이다. 짖는 정도가 심하면 상황이 급해져 밥을 미처 다 먹지 못하고 일어서게 된다.

개 5마리와 홍천강가 단칸방에서 살게 되면서 생긴 생활 습관이고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다. 

저녁 산책 후부터 먼동이 트는 시간을 기다렸으니 짖을 만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펜션이다. 헤리나 호야가 너무 짖어대서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가 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이곳에서 쫓겨날 판이기 때문이다.

숙소 앞 홍천강가는 넓은 갈대밭과 깨끗한 자갈이 널린 아름다운 곳이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강가에 이르면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라고 노래한 '김종환' 가수와 공감대가 형성된다. 나와 집사람도 자연스레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호야와 헤리는 아침과 저녁에 각각 한 시간 정도 산책을 시켜주는 대신 낮 시간에는 우리에 갇혀 있거나 목줄을 묶인 채 짖지 않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제시한 약속이다. 얼핏 보면 일방적으로 우리의 의무 사항만 있는 불합리한 약속 같지만, 홍천강가 갈대밭에서 맘껏 뛰는 호야와 헤리는 살아 움직이는 율동이다. 이를 공감하는 우리에겐 이 한 가지 선물 만으로도 과한 보답이다.

물을 좋아하는 헤리 때문에 아침산책은 강가에서 시작한다.
▲ 강가 산책길 물을 좋아하는 헤리 때문에 아침산책은 강가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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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와 헤리가 갈대숲을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활력을 얻은 다음 강뚝 산책길을 걷는다. 아침 산책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 강뚝 산책길 호야와 헤리가 갈대숲을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활력을 얻은 다음 강뚝 산책길을 걷는다. 아침 산책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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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강가 숙소를 구하기까지

지용한옥학교에 입학 예정된 학생들은 대부분 학생들은 20대 후반에서 40대 전반에 걸쳐있다. 학교에는 기숙사 시설이 갖춰 있으나 나이가 60인 나는 학생들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저녁에 일찍 자야 하고 오전 3시경이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생활리듬은 젊은 사람들과 단체 생활이 어려웠다. .

학교 부근이나 춘천에 숙소를 구하기 위해 4일간 헤매고 다니면서 우리가 하려는 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 절감했다. 구하려는 때가 여름 피서철인지라 방 하나의 가격이 서울 30평 아파트 임대료보다 비쌌고 10개월의 임대기간도 걸림돌이었다.

문제가 호야와 헤리에 이르면, 숙소 구하는 일은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동산, 각 마을의 이장댁과 민박집, 펜션을 3일간 뒤지고 다니면서 더 이상 헤매고 다니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허탈하여 설악산과 바다가 있는 동해안으로 떠나 2일간 여행하면서 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세우려 했으나 뾰쪽한 방법을 얻지 못하고 대전으로 돌아갔다.

8월 31일에는 지용한옥학교 2기 학생들의 입학식이 있었다. 숙소에 대한 대책이 없는 모텔이라도 이용할 생각으로 혼자서 홍천으로 올라왔다. 다행히 학교에선 나의 처지를 감안하여 전에 관사로 사용하던 건물을 숙소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사용하도록 조치해 줬다.

나이 60에 지병이 있는 중 늙은이가 청장년 젊은이들과 힘겨루기를 했고, 거기다 저녁마다. 3차원 건축 설계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학교 교육 내용을 정리하는 등 소중한 시간을 알뜰하게 보내겠다는 생각에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먹는 음식을 소홀히 관리했더니 생각보다 심하게 건강이 악화되었다.

한옥골조 짜기 일정을 마치고 주말에 집에 갔더니 집사람은 나를 더 이상 혼자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고 느낀 모양이다. 한옥학교 부근에 숙소를 구해 같이 살면서 나의 건강을 직접 챙기겠다는 결심을 한 모양이다. 그 다음 주중에 집사람은 홍천으로 다시 올라와 지금의 숙소를 구했다.

강원도에는 춘천, 화천, 홍천 등 강과 관련이 있는 이름을 갖는 도시가 많다. 강이 있다는 것은 깊은 산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홍천강은 홍천군 서석면 생곡리에서 발원하여 북쪽의 춘천 쪽으로 흐르다가 가평군 관천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울로 흘러 드는 143km 길이의 말고 깨끗한 강이다.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 수심이 낮고 수온이 따뜻하며, 강 유역이 넓어 물놀이 터로 적당한 홍천강이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숙소 인근에 있는 팔봉산 유원지는 수심이 얕은 데다 가벼운 산행까지 즐길 수 있고, 밤벌 유원지는 자갈과 모래가 1km 길이의 강변에 덮여 있어 항상 관광객으로 붐빈다.

10월 중순쯤 되면 홍천강가 펜션들도 비수기 철이다. 방이 없어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숙소까지 동이 난 여름 피서 철과 상황이 다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집사람은 지금 우리가 개 5마리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얻기 위해 상당한 고생을 한 모양이다.

홍천강가에 살게 된 '강'이다. 호야가 세마리 세끼를 낳았다. 새끼가 생기기전 나와 집사람은 암컷이면 '강'이라 부를 것이고 수컷이면 '산'이라 부르기로 했다.
▲ 강 홍천강가에 살게 된 '강'이다. 호야가 세마리 세끼를 낳았다. 새끼가 생기기전 나와 집사람은 암컷이면 '강'이라 부를 것이고 수컷이면 '산'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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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야가 수컷 새끼를 낳기를 바랬지만 모두 암컷이다. 세상에 나온지 한 달 반이 지나 생후 처음으로 엄마 젖 외 식사를 한다.
▲ 강과 세자매 호야가 수컷 새끼를 낳기를 바랬지만 모두 암컷이다. 세상에 나온지 한 달 반이 지나 생후 처음으로 엄마 젖 외 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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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돼? 이삿짐을 옮기고 둘이서 막걸리 한 잔으로 축배를 들면서 집사람이 심각하게 물어온다. 

앞으로 남은 나의 여생을 살아가면서 몸으로 해야 될 얘기를 한 순간에 입으로 하라니 들려 줄 대답이 궁하다. 지난 8월에 다녀온 설악산 백담사에 걸린 만해(萬海) 스님의 선(禪)을 정의한 시로 가름해 본다.

선(禪)은 선(禪)이라고 하면 곧 선(禪)이 아니다.
그러나
선(禪)이라고 하는 것을 여의고는
별로 선(禪)이 없는 것이다.

선(禪)이면서 곧 선(禪)이 아니요,
선(禪)이 아니면서 곧 선(禪)이 되는 것이
이른바 선(禪)이다.

…… 달빛이냐, 
…… …… 갈꽃이냐,
흰 모래 위의 갈매기냐

선(禪)을 생(生)이나 삶으로 바꾸면 내 얘기가 되는 것 같다.


태그:#홍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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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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