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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우체통에 <한겨레>가 꽂혀 있었다. 이사 후 처음으로 배달된 신문이다.
▲ <한겨레> 아침에 우체통에 <한겨레>가 꽂혀 있었다. 이사 후 처음으로 배달된 신문이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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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10월 12일), 우편함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한 달 전 신청한 <한겨레>가 이제야 처음으로 우리집으로 배달되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에서야 돈만 지불하면 필요한 것을 구입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많은 이들이 귀촌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시골의 이런 불편함 때문일 것이다. 

제주 시내에 있을 적에는 <경향신문>을 구독했다. 요일별로 다양한 테마를 정해 기사를 풍부하게 공급하는 <경향신문>의 지면구성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몇 해째 주간지 <한겨레21>을 구독하고 있기 때문에 일간지는 다른 언론사의 것을 구독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우리가 이사를 온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에는 신문보급소가 두 곳 있다. 그런데 두 개 보급소가 각기 다른 신문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같은 신문을 취급하면서도, 합의에 의해 영역을 구분해 영업을 한다. <한겨레>를 보급하는 영업소에서 <조선일보>를 보급하는 것을 꺼리는 시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끼리도 이웃사촌으로 사이좋게 지내는 농촌의 생활 분위기가 신문 유통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달 기다려 손에 쥔 <한겨레>, 반갑다

지난 8월에 귀촌하고 나서도 <경향신문>을 계속 구독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몇 군데 전화를 해서 신문보급소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살고 있는 남원읍에는 <경향신문>이 아예 들어오지도 않는단다.

20여 년 전 한겨레가 처음 창간될 때, 서귀포시 일대에 '한겨레 가족모임'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내가 아는 많은 이들이 이 모임에 참여해 <한겨레>를 후원했다. 그 모임이 깔려 있기 때문인지, 신문시장에 닥친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겨레>는 지역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경향>은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한겨레>가 경험했던 독자들의 자발적 후원운동을 거치지 못해서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지 못한 모양이다. '좋은 신문 만들기' 못지않게 '좋은 신문 보기'가 얼마나 절실한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어째든 <경향신문> 대신 <한겨레>를 구독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한겨레> 구독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보급소는 현재 들어오는 <한겨레> 부수와 독자수가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여분이 없다고 했다. 본사에 증부를 신청하면 될 게 아니냐는 말에는 보급소에서는 "한 부씩 증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본으로 10부를 증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배달하고 남는 분량은 보급소의 손실로 남게 된다"고 대답했다.  

보급소가 권하는 대로 <한겨레> 구독을 중단하는 독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2달이 다 되어서야 신문을 받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다리던 <한겨레>를 받아볼 수 있어서 반갑기는 하지만, 독자 한 명이 한겨레 구독을 중단한 것은 여전히 아쉬운 일이다. 우리 신문시장에서 '좋은 신문'을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귀촌을 하고나서야 제대로 깨우칠 수 있었다.

<한겨레> <경향> 절독 선언... 안타깝다

처음으로 배달된 한겨레가 '제주도에 2014년부터 영유아 무상교육이 실현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다.
▲ <한겨레> '제주·호남' 면 처음으로 배달된 한겨레가 '제주도에 2014년부터 영유아 무상교육이 실현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줬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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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난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몇 달 전에는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유시민씨가 <한겨레>가 사용한 제목을 빌미로 절독을 선언하더니, 이번 달에는 북한의 권력세습 문제에 대한 입장과 태도의 차이로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이 <경향신문> 절독을 선언했다는 소식이다.

다른 정치인들이 그랬다면 이해를 하겠지만, 참여정부 인사나 민주노동당이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상대로 발목 잡기에 나선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유시민씨나 민주노동당은 한때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의 피해를 몸으로 체득한 사람 혹은 집단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국가의 폭압에 반대해 왔고, 정경유착을 고리로 사회기득권세력에 종속되었던 일그러진 정치를 바로 세워서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을 가치로 여겨왔다. 그러면서도 돈과 물리력으로 무장한 수구집단과의 싸움에서는 대화와 토론을 무기로 상대를 제압하며 지지자들로부터 환희와 열광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종이신문 시장에서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는 매체가 <한겨레>와 <경향>을 제외하면 몇이나 있는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대화와 토론을 중시하는 이들이 대화를 단절하고, 절독을 선언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함이 느껴진다.

귀촌에서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많은 이들과 나눠봐야 겠다는 새로운 결심이 생겼다. <한겨레>나 <경향>이 좀 더 많은 가정에 배달되는 것이 이 땅의 민주화와 진보의 확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벌써 몇 군데 구독신청을 받아놓았다. 좋은 신문을 지키는 일은 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라는 깨우침이 새삼스럽다.


태그:#<한겨레>,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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