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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앞쪽 왼쪽이 나의 남동생(9살)이고 가운데가 막내 여동생(6살) 우측이 필자(12살) 그리고 뒷편이 필자의 큰 형님이다.
▲ 도영이 할베의 55년전 빛바랜 사진 사진 앞쪽 왼쪽이 나의 남동생(9살)이고 가운데가 막내 여동생(6살) 우측이 필자(12살) 그리고 뒷편이 필자의 큰 형님이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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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개하는 빛바랜 사진은 필자가 12살 그리고 손 아래 남 동생이 9살, 막내 여동생이 6살 때 찍은 사진이다. 이제 어언 내가 6학년 7반의 나이가 되었으니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 강산이 자그마치 다섯 번 하고도 반이 지났다(55년 전).

그런데 어쩌다 좋은 세상 만나 나 같은 노인도 디카 들고 다니며 사진 찍어 내 마음대로 인터넷에도 올리고 글을 쓰고 있으니 그야말로 이 사진 속의 꼬맹이(필자)인 도영이 할아버지 출세를 해도 정말 크게 출세한 것이 맞는 것 같다. 이런 내 모습 보며 어떤 친구는 나더러 "개천에서 용 났다"고 놀리기도 한다. 

이야기는 필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나이 7살 때 6·25사변(1950년 6월 25일)으로 피난을 나온 곳이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약산 동) 마을이다. 그런데 이곳 마을은 다행히 우리 어머님의 친정 동네이고 나에게는 외가 동네가 된다.

우리 여덟 식구 대가족은 외가댁 사랑방에 피난 보따리를 풀고 정착할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 슬하에 4남 2녀가 있었는데 피난민이신 부모님께서는 여섯 명의 자식들 제대로 교육 시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우선 살아있는 가족들 연명이나 하면 다행으로 생각하던 시절이다.

그래도 다행히 큰 누님, 큰 형님은 6·25사변전 초등학교를 졸업하셨고 나의 손위 형님은 6학년 재학 중 피난 나와 곧바로 6학년에 편입해 초등학교 졸업하셨다. 형님이 졸업한 다음 해에 나는 9살이 되어서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앞줄 외편이 필자(12살) 이고 가운데 여동생(6살) 오른쪽 남동생(9살) 그리고 뒤줄 왼쪽 김재명 형님, 우측 홍성관 형님
▲ 도영이 할베의 55년전 빛바랜 사진 앞줄 외편이 필자(12살) 이고 가운데 여동생(6살) 오른쪽 남동생(9살) 그리고 뒤줄 왼쪽 김재명 형님, 우측 홍성관 형님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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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형편이 이렇게 어렵다 보니 나의 '큰 누님은 17살 어린 나이'에 "열 식구 벌지 말고 한 식구 입 덜랬다는" 속담처럼 먹는 식구 한 입 덜려고 생판 부지 떡 거머리 노총각 매형에게 시집을 가셨다. 큰 형님은 서울에서 사업하시던 삼촌 사업장에서 낮에는 일을 도와 드리고 밤이면 주경야독을 하며 중·고등학교에 다니셨다.

그러면서 큰 형님은 여름방학, 겨울 방학이면 친구들과 함께 시골집을 찾곤 하였는데 그 시절 큰 형님과 친구들은 나에겐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려운 시절에도 서울에 사는 형님 친구들은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시골에 사는 우리를 그렇게 귀여워하며 사진을 찍어 주고 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수십 년 된 빛바랜 앨범을 정리하다 보니 그때 그 시절 큰 형님의 친구 분들께서 찍어 주신 우리 삼 남매 사진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사진이 너무 오래되어 '빛바랜 사진 속(5X5Cm) 아이들이 과연 나와 내 동생들이란 말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우리 삼 남매의 어린 시절 모습이 생소하게 보인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사진을 보며 배꼽을 잡고 킬킬대고 웃었다. 이 사진이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진'일지 모르지만 나와 내 동생들에게는 이보다 더 소중한 사진이 어디 있겠는가? 이 볼품없는 빛바랜 사진을 그냥 앨범 속에 처박아 두기보다는 스캔 작업으로 복원해 나의 "카페(http://cafe.daum.net/salamstory)와 블로그(http://blog.daum.net/salamstory) '빛바랜 사진 이야기' 게시판에 올렸다. 그렇게 신기하고 좋을 수가 없다. 이곳에 실린 사진을 올해 10살 된 초등학교 3학년 손자 아이에게 보여주며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작은고모 할머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사진은 내가 26살때쯤 찍은 사진이다. 앞줄 왼쪽이 남동생이고 오른쪽 바지저고리 입은 아이가 (필자)이고 뒷줄 왼쪽이 나의 손위 형님이고 오른쪽이 외사촌형이다.
▲ 빛바랜 사진으로 본 형제들 이 사진은 내가 26살때쯤 찍은 사진이다. 앞줄 왼쪽이 남동생이고 오른쪽 바지저고리 입은 아이가 (필자)이고 뒷줄 왼쪽이 나의 손위 형님이고 오른쪽이 외사촌형이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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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손자녀석은 깔깔대고 배꼽을 잡고 웃으며 "할아버지 거짓말한다며 절대로 우리 할아버지 아니"라고 우겼다. 그러니 이 아이에게 무슨 설명을 어떻게 제대로 해줘야 할지.

60년 전 할아버지 어린 시절 빛바랜 사진을 보며 자기 할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초등학교 3학년생 어린 손자 아이가 이해하기를 바라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한 걸까.

"그래 이 녀석아! 정말 할아버지 말이 믿기지 않으면 믿지 말아라. 하지만 그 빛바랜 사진 속 그 '세 아이'들이 분명히 너의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 그리고 작은고모할머니란 것을 이다음 훗날 이해하길 바란다."

'모든 것은 일 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워지는 것이다'란 푸쉬퀸의 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날이다.


태그:#빛바랜사진, #청파, #윤도균, #윤대균, #윤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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