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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 모셔진 명월이 영가와 영정. 영정은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화가이며 그를 연모한 것으로 알려진 '이시이 하쿠테츠'가 직접 그린 영정이다.
▲ 명월이 영가 제단에 모셔진 명월이 영가와 영정. 영정은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화가이며 그를 연모한 것으로 알려진 '이시이 하쿠테츠'가 직접 그린 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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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사람들이 명복을 빌었으니, 극락왕생했을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구천을 떠돌던 명월이의 영가가 안식처를 찾았듯이 이제야 제 마음도 조금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하안거 해재날인 24일, 경기도 남양주시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본사인 운악산 봉선사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여성생식기 표본의 당사자인 기생 명월이 천도재(薦度祭)의 마지막 의식인 소전의식(영가와 영정, 옷가지 등을 불로 사르는 절차)을 마친 혜문 스님은 이렇게 심경을 밝혔다.

이날 천도재는 해마다 백중날(7월 보름) 치르는 불교 전례의식으로, 백중절은 불교에서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고도 한다. 우란분절은 부처님의 수제자인 목련존자가 생전 탐욕과 죄업으로 인해 아귀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살아 있는 자의 선업으로 지옥에서 구원한 날이다.

목련존자가 이런 사정을 부처님께 아뢰자 부처님은 "출가 전에 지녔던 모든 재산을 대중에게 베푸는 보시행으로 어머니의 업장을 소멸시키라"고 말씀하셨다. 존자는 그 말씀을 들어 보시행을 함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벗어나게 했다. 다른 사람의 공덕으로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불교의 구원관에 따라, 우란분절은 부모님과 무주고혼들의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천도재를 올리는 불교계의 큰 명절이다.

나라가 망한 시절, 살아서는 일본인의 노리개로, 죽어서는 일제의 야만적인 생식기의 표본으로 뭇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던 기생 명월이의 혼은 여러 인연으로 맺어진 많은 이들의 보시행으로 우란분절에 한 많은 이생을 훌훌 떠날 수 있었다.

혜문 스님은 왜 생식기 표본 파기 소송에 나섰나

봉선사 설법전인 청풍루에는 안밖으로 2천여명의 사부대중이 모여 천도재를 봉행했다. 이날 천도재는 명월이뿐 아니라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일제희생자 영가의 천도재도 같이 봉행했다.
▲ 천도재 봉선사 설법전인 청풍루에는 안밖으로 2천여명의 사부대중이 모여 천도재를 봉행했다. 이날 천도재는 명월이뿐 아니라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일제희생자 영가의 천도재도 같이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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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순 무용가가 살풀이 춤으로 영혼을 씻기는 의식을 하고 있다.
▲ 살풀이 김성순 무용가가 살풀이 춤으로 영혼을 씻기는 의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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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이 생식기 표본 소송사건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야만적일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마성에 자유로울 수 없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명월이는 일제 시대 명월관의 기생으로 실제 이름은 '홍련'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연모했던 일본을 대표하는 근대화가 '이시이 하쿠테츠'가 직접 그린 그의 초상도 있다. 그가 명월이라는 고유명사를 지니게 된 데에는 아마 명월관의 대표기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재색이 출중했던 명월이는 여러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를 사랑한 남자는 거의 복상사를 일으켜 죽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그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그의 생식기를 도려내어 표본을 만들었는데 일제가 만든 표본을 해방 후에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계속 보관하고 있었다.

"뭇 사람들이 이 끔찍한 표본을 보고 키득거리기만 했을 뿐 이제까지 아무도 표본의 반인륜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점에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지난 1월 18일 서울중앙지법에 '여성생식기 표본(이하 인체표본) 보관금지 청구의 소'(2010가합 4894호)를 제출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관된 인체표본을 '인도적 차원'에서 화장 등을 통해 적절히 조치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던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의 말이다.

혜문 스님도 소를 제기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대부분의 주변사람들도 "그냥 놔두시지요, 스님이 기생 아랫도리에 대해 말한다면 세상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십상입니다"라고 걱정하며 말렸다.

"생각할수록 망측한 일이라 조용히 넘어 가려 했어요. 그러나 불행한 삶으로 얼룩진 한 여인에 대한 생각이 끝끝내 나를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꿈속에 나타나서 '노리개로 살아 온 여인도 인간인데 기녀라는 이유로 표본으로 만들어져 농락당하고, 65년이 지난 해방된 나라조차 자기를 풀어주지 않는다'며 울먹이더군요."

꿈에서 깨어난 혜문 스님은 종교인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에 "또다시 계란을 들고 바위를 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혜문 스님, 소송에 졌지만 생식기 표본은 파기

천도재의 마지막 의식인 소전례에 따라 살라지는 명월이 영정, 많은 이들의 보시행으로 그의 한 많은 혼은 안식처를 찾았다.
▲ 명월이 영정 천도재의 마지막 의식인 소전례에 따라 살라지는 명월이 영정, 많은 이들의 보시행으로 그의 한 많은 혼은 안식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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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제기 후 혜문 스님은 "견학용으로 잘 있는 표본에 왜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항의전화를 받기도 했고 "중놈이 기생 생식기에 왜 관심이 많으냐"는 야유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또 위자료 청구 부분에 대해서는 '돈에 눈먼 중'이란 혹독한 비난이 쏟아졌으며 법률가들도 "인권침해 요소는 인정하지만, 유족이 아닌 입장에서 표본의 처분을 주장할 당사자로는 적격하지 않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러나 혜문 스님은 "재판이란 형식 속에서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 또는 특수한 신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인간이 표본으로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라며 끝내 소를 제기했다. 스님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점들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현장검증을 통해 만천하에 표본의 실체가 드러나 재판이 언론에 관심을 끌었습니다. 표본은 의료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반인의 가학적 행위에 의해 난도질되어 있었고, 여성의 생식기 전체를 들어낸 끔찍한 모습이었으며 이에 재판부도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시민들의 제보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국과수는 이 표본을 공개적으로 진열해 놓았고, 심지어 견학 가서 구경했다는 고등학생조차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나에게 인간의 마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검찰은 "표본을 파기하라"는 재판부의 '화해권고'에 반발해 "재판부가 행정부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이의신청을 하고 지난 6월 14일 자발적으로 표본을 파기했다.

그 뒤에 열린 재판에서 혜문 스님은 "'위자료 청구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국과수가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달라는 취지에서 단 1원의 위자료라도 받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부장판사 임영호)는 지난 19일 이번 소송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00여 명이 함께한 명월이 천도재

명월이의 영가와 영정이 그의 천도를 위해 보시행을 한 혜문스님(오른쪽 두번째)과 이상근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영정 든 이) 등 관계자들에 의해 소전식장으로 가고있다.
▲ 행례 명월이의 영가와 영정이 그의 천도를 위해 보시행을 한 혜문스님(오른쪽 두번째)과 이상근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영정 든 이) 등 관계자들에 의해 소전식장으로 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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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 진 혜문스님은 우란분절에 가사장삼을 차려 입고 2000여 명의 사부대중과 함께 명월이의 천도재를 지냈다.

특히 봉선사(주지 인묵스님)는 이날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명성황후를 비롯한 일제 희생자 영가, 항일독립운동가 영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영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영가의 천도재를 같이 봉행해 이날 행사를 더욱 뜻 깊게 했다.

"나라가 망한 지 100년이 됐는데 식민지배에 희생된 사람들은 기억하는 행사 하나가 없는 나라입니다. 몇 달 전에 일본에서 한국인 접대부의 목이 잘린 사건이 있어도 접대부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에 젖어 양국의 여성단체들이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여염집 유학생이 그런 사고를 당했다면 아마 세상이 떠들썩했을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은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 모든 종교의 출발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창기인 막달라 마리아와 사마리아 여인의 영혼에 관심이 많으셨고, 부처님도 '우주 가운데 자기만큼 소중한 존재가 없다(天上天下唯我獨尊)'는 인간 존엄성 선언을 하신 겁니다."

우리 인권의식의 문제점을 지적한 혜문 스님은 '명월이를 애도하며'라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명월이를 애도하며

조선아! 이제 고개를 들어
동산위에 차오르는 저 둥근 보름달을 보아라
망국의 슬픔마저 잊고 키득거리는
경망한 네 나라의 사내를 깨우치러 100년의 세월을 넘어 떠오르는 명월(明月)
나라 잃은 못난 사내들의 시름겨운 취기를
어르고 달래던 기생의 몸은 그만 버리고
본래의 네 모습, 관음보살의 정신만 추슬러 오너라
망국의 어둠을 거두러
식민지의 어리석음을 깨치러 
두둥실 두둥실 하늘 높이 떠올라
네 나라 곳곳에 월인천강(月印千江)의 노래로 구비치거라
명월(明月)이 천산만락(千山萬落)에 아니 비친 데 없구나.


태그:#명월이, #혜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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