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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 일반노조 소속 제주도립예술단노조지회는 노동탄압에 맞서 한달 넘게 노숙투쟁 중이라고 합니다.
▲ 한달 넘게 노숙 투쟁중 제주지역 일반노조 소속 제주도립예술단노조지회는 노동탄압에 맞서 한달 넘게 노숙투쟁 중이라고 합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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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8일 오후 7시경이었습니다. 제주가족여행 중 마지막 날이라 제주공항서 가까운 찜질방을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제주문예회관 옆에 찜질방이 있었고 산책도 할 겸 해서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따라 비도 많이 내렸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산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안에서 쉬게하고 저 혼자 밖으로 외출을 나왔습니다.

제주문예회관 앞에서 제가 많이 겪어온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예회관 앞 길엔 천막이 쳐져있었고 각종 현수막과 벽보가 나붙어 있었으며 깃발이 비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왜 이 무더운 여름에 저런 고생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 한번 알아보기로 한 것입니다.

"울산에서 가족여행 왔는데요. 왜 이러고 있는지 궁금해서 들어와 봤어요. 이야기 들어보고 <오마이뉴스>에 좀 올리고 싶어서요."

간단하게 사진기와 공책, 필기구만 들고 찾았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천막농성을 해왔는지 천막 안에는 살림도구가 꽤 있었고, 농성중인 이는 아이들과 자장면을 시켜 함께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쑥 들어간 저에게 잠시 경계의 시선을 보내더니,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자, 반가운듯이 앉으라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텐트 속에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여러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우린 제주도립예술단노조 조합원입니다. 민주노총 일반노조 지회죠."

어떤 한분이 그렇게 말하며 저에게 종이 한장을 내밀었습니다. 우선 읽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자회견문'이라는 큰 글이 먼저 보였습니다. 그리곤 '막장으로 가는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진흥본부 도립무용단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란 글이 이어졌습니다.

'도립무용단 안무자의 성희롱사건,은폐,축소 의혹'
'헌법도 막지 못하는 문화진흥본부장의 정치활동금지 방침'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꼼수, 기간만료 빙자한 지회장 부당해고'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니, 그들이 왜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았습니다. 지회장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지회장을 찾았으나 자리에 없었습니다. 천막에 있던 이들은 그가 경찰서에 조사 받으러 갔다고 했습니다. 경찰서는 문예회관 길 건너편에 떡 버티고 있었습니다. 한 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지회장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제주도립예술단노조는 왜 그곳에 천막을 쳤을까

"제가 지회장입니다."

잠시 기다린후 지회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회장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 양지호 지회장 잠시 기다린후 지회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회장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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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누군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옆에 있던 한 분이 제 소개를 하자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저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렇게 양지호(42) 지회장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왜 이렇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지난 4월 9일 안무자가 새로 왔어요. 취임 하루만에 우리 여성 조합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2차로 수치심을 주었고 고압적으로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시도도 했어요. 더 기가 막힌 건 심지어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피해자를 고소하는 일까지 발생했다는 겁니다."

안무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난 2004년과 2006년에도 새로온 안무자로부터 여성 조합원이 성척 수치심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진흥본부측은 단 한차례도 예방교육을 진행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재발방지 노력보다는 사건을 축소·은폐 하는데 급급했다고 합니다.


- 언제부터 천막을 쳤고 요구사항이 뭔가요?

"문화진흥본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도립무용단 안무자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축소·은폐하려는 시도를 즉시 중단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공식사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 제주도와 문화진흥본부가 자행하고 있는 조합원에 대한 정치탄압을 즉각 중단해 달라는 것이고요. 제주도와 문화진흥본부가 진행한 지회장에 대한 부당해고를 철회하고 원직복직 시켜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30일부터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 갔습니다. 그날이 바로 제주도지사 퇴임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기자회견문을 보면 도립예술단원 대부분은 공무원이 아닌 2년마다 재위촉 되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진흥본부측은 공무원 신분이라며 정치활동을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제주도청에 질의한 결과 인적자원부에서 '예술단원은 공무원법에 의한 신분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고 공무원 정원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이라고 볼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 지회장님은 언제 제주도립예술단원이 되었고 언제부터 노동조합을 생겼나요?
"저는 92년부터 단원으로 일해 왔어요. 그러다 얼마간 나가 있다가 2001년에 다시 들어 왔지요. 우리 노조는 2007년 3월 8일 창립되었지요. 여성 단원이 많다보니 3월 8일 여성의 날을 선택해 노조창립대회를 열었지요."

- 노동탄압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2007년 노조창립 이후 단협체결을 하고 보니 투쟁과정서 5명이나 탈퇴 하더군요. 총단원이 31명이고 17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었는데 그 중 5명이나 탈퇴 해버렸어요. 황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이해도 갔어요. 우린 모두 2년마다 재갱신 해야 재취업 되는 비정규직이거든요. 9월 말 일부로 5명이 기간만료가 잡혀 있었어요. 탈퇴하는 조합원이 와서 그러더라고요. 미안하다고요. 안무자가 그러더랍니다. 노조탈퇴하면 재갱신 받아 주겠다고요. 안타깝더라고요. 그럴수록 더 뭉쳐 싸워야 노동현실이 개선될 텐데 탈퇴하겠다는 사람 억지로 잡는다고 될일도 아니더라고요."

"그냥 기간만료 통보서 한통이면 끝나는 현실이죠"

- 지회장님은 어땠나요?
"저에 대해서도 탄압이 만만치 않았어요. 제가 초대지회를 맡았을 때부터 사용자의 탄압이 시작되었으니까요. 처음 해고되고 나서 8개월 싸워 복직했어요. 그땐 조합원이 17명 정도 되었지요. 그러다 제가 일반노조 부위원장 일을 1년간 하면서 보니 노조가 위태위태 했어요. 그래서 다시와서 지회장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남은 노조원이 7명 이더군요. 사측의 탄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었어요. 그것을 막을 길이 없더라고요.

2009년 8월 30일부로 단협이 만료됐으나, 무용단 정상화에 박차를 기하자고 해서 11월 정기공연 이후 단협을 갱신하자고 의견을 모았지요. 그렇게 노력했으나 노동자의 권리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없고 온통 금지규정만 들먹였어요. 노조와해를 바라는 거 같았죠. 저는 지난해 조합원들의 임금체불과 연가보상비 내놓으라고 소송을 걸었더니 괴씸죄를 물어 다시 기간만료 통보를 했더군요. 우린 비정규직이라 해고가 아니라 그냥 기간만료 통보서 한통이면 끝나는 현실이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이용하는 습성은 대기업 회사 뿐만이 아닌가 봅니다. 공무원 조직도 대기업 회사와 별반 다를 게 없나 봅니다. 그곳에도 비정규직이 존재했습니다. 저 또한 대기업 사내 하청 비정규직으로 10년간 다녔지만 매년 계약 연장을 위해 근로계약서를 새로 써야 했었습니다. 제주도립무용단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년마다 기간만료에 대한 재갱신 계약을 하지 못하면 하던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요구하는 것을 보니 그냥 일반적인 것이었습니다. 인간이면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를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안무자는 성희롱을 인정하고 피해 여성단원에게 사죄하라'
'도청공무원은 노조와해공작을 중단하라'
'현 안무자 자질 없으니 교체하라'
'부당해고된 무용단원 원직복직 시켜라'
'임단협 교섭에 성실히 응하라'
'2년마다 재계약 맺는 체계 중단하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라'
'자질있고 지역특성에 맞는 안무자 뽑고 노조도 참여권 부여하라'

노동자도 사람일진데 왜 사용자들은 지금도 70년대 방식으로 노동자를 대할까요?

"지금 부당해고 싸움도 진행중이고 그동안 체불한 연가보상비도 청구소송 준비중입니다. 조합원들의 탈퇴를 지켜보며 사측의 의도된 개입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우린 더이상 갈곳이 없습니다. 이기려고 싸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배 단원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말 있느냐는 질문에 양지호(42) 지회장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는 사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힘들지만 희망에 가득찬 그의 눈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울산 대기업은 대부분 휴가에 들어 갔습니다. 제주도로 수많은 인파가 휴가를 떠났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관광차 제주도 가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을 때 그들은 천막 속에서 당연한 권리를 되찾고자 농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멋진 관광도시 제주 한켠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몇이나 될까요?

제주도립예술단원은 일반직 외에 현장에서 직접 무용을 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에 대해 비정규직으로 뽑아 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임금에 노비처럼 대우받아 왔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그런 구조를 바꾸고자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 그들은 왜 노숙투쟁을 하고 있을까요? 제주도립예술단원은 일반직 외에 현장에서 직접 무용을 하고 공연을 하는 사람에 대해 비정규직으로 뽑아 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저임금에 노비처럼 대우받아 왔다고 말합니다. 이번에 그런 구조를 바꾸고자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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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공무원, #관광도시, #노동탄압, #무용단, #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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