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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처음으로 수확해 본 복숭아. 솎아주기를 너무 적게하여 씨알이 작지만 맛이 아주 좋아 매년 집사람이 농수산 시장에서 사다주던 수밀도 복숭아를 이제 그만 사도 될 것 같다. 복숭아 장기저장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 복숭아 평생처음으로 수확해 본 복숭아. 솎아주기를 너무 적게하여 씨알이 작지만 맛이 아주 좋아 매년 집사람이 농수산 시장에서 사다주던 수밀도 복숭아를 이제 그만 사도 될 것 같다. 복숭아 장기저장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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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공자 자존심

우리들 대부분은 성장과정의 환경에 따라 인성이 형성되고 일생 동안 그 범주를 크게 못 벗어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우리 집에는 과일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 윗집 남길이네 집에는 단감나무가 몇 그루 있었고 아랫집 경렬이네 집에는 커다란 배나무가 장독대 옆에서 풍성한 열매를 자랑했다.

우리는 이웃들이 다 갖고 있는 커다란 논도, 참외와 수박이 열리는 널찍한 밭도 없었다. 다행히 어머님께서 9남매 중 장녀인 외갓집이 나주군 봉황면 유지였다. 방학 때마다, 어머님은 나를 새 옷과 신발로 단장 시켜 친정으로 보냈다. 광주에서 온 귀공자가 된 나는 삼촌과 이모들 후광을 등에 엎고 마을 내 또래 애들에게 온갖 악동짓은 다 했던 것 같다.

수박과 참외밭을 헤집고 다니고, 수십 마리 병아리와 오리들을 쫓아다니며 괴롭혀도 삼촌과 이모들만 혼날 뿐, 면죄 특권을 받은 나는 "오냐! 잘했다"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안하무인 독불장군이었다. 적어도 외할머니 친손자가 생길 때까지는 그랬다. 외갓집 특권은 삶의 역경을 이겨내는 귀공자의 자존심이 됐다.

풍성한 농사를 짓고 싶었던 바람은 늘 가슴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시랑헌에는 많은 땅은 아니더라도 자급자족할 만한 땅이 있다. 부지런하시고 강한 할아버지, 억척스러우신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을 만큼 밭이 있고, 많은 논과 밭도 더 마련할 수도 있지만, 두 분 모두 내 가슴 속에 계시니 현실은 그저 아리고 그윽한 추억일 뿐이다.

오메! 내 복숭아

시랑헌은 나와 집사람이 4년 동안 주말을 이용하여 손수 지은 오두막 당호이다. 퇴직 후, 후회 없는 제2인생을 살아갈 생각으로 2006년 지리산 자락에 마련한 2만여 평의 임야로 통하는 교두보다. 내가 설계하고 건축할 시랑헌 본 집터와 주변 공터에는 다양한 정원수와 과일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나무를 가꾸는 지식이 얕은 데다 무농약 무비료를 고집했으니 모두 성장을 멈춘 나무들이 되었다. 올 초에는 후배가 권한 대로 과일나무 밑동 주변을 파고 퇴비를 한 포씩 묻어줬다.

4년 전 묘목 구입 할 때 우선 과일을 보려는 생각에 성목도 한 그루 구입했지만 비료를 주지않아 성장을 멈췄다. 올 봄에 한 그루에 한 포씩 퇴비를 묻어 줬더니 올해는 성장도 시작했고 과일도 맺었다. 과일나무와 대화가 시작된 기분이다. 그 때 같이 온 묘목에서도 풍성한 과일이 열렸다.
▲ 복숭아나무 4년 전 묘목 구입 할 때 우선 과일을 보려는 생각에 성목도 한 그루 구입했지만 비료를 주지않아 성장을 멈췄다. 올 봄에 한 그루에 한 포씩 퇴비를 묻어 줬더니 올해는 성장도 시작했고 과일도 맺었다. 과일나무와 대화가 시작된 기분이다. 그 때 같이 온 묘목에서도 풍성한 과일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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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는 과일이기 전에 한약재료라는 생각이 우선이다. 몸을 따뜻하게 한단다. 신맛이 없는 살구다. 많이 열렸다. 새와 같이 수확했다. 씨를 빼고 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후 간식으로 먹을 생각이다. 기대가 크다.
▲ 살구 살구는 과일이기 전에 한약재료라는 생각이 우선이다. 몸을 따뜻하게 한단다. 신맛이 없는 살구다. 많이 열렸다. 새와 같이 수확했다. 씨를 빼고 껍질을 벗겨 건조시킨 후 간식으로 먹을 생각이다.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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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자란 양이 지난 4년 동안 자란 것보다 더 크게 자라더니 복숭아와 살구나무에 열매가 맺었다.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매달린 열매의 절반이 넘게 솎아 줬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열매를 남긴 모양이다. 보름 전에 다니러 온 친구가 복숭아를 보더니 크기가 작지만 지금이 수확 적기란다. 날이 지나면 복숭아 씨알이 더 커질 거라고 기대한 나는 수확을 일주일 뒤로 미뤘다.

장마철이 시작된 6월 하순부터 구례 지방에는 주말이면 많건 적건 비가 왔다. 전전 주말, 나와 집사람은 수확기를 놓친 감자 때문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임전태세로 시랑헌에 들어섰다. 감자 잎과 줄기들이 누렇게 넘어져 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니 집터 복숭아나무 아래 어지럽게 떨어진 복숭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확의 적기를 놓혀 나무 밑둥에 떨어진 것을 급히 주어모으고 카메라를 가져다 사진을 찍었으나 렌즈앞에 맻힌 이슬 때문에 이미지가 흐리다. 종묘상카다로그에 맛자랑을 많이해 놨더니 정말이다. 맛이 너무 좋았다. 내년부터는 철저한 관리를 다짐해본다.
▲ 주워 담은 복숭아 들 수확의 적기를 놓혀 나무 밑둥에 떨어진 것을 급히 주어모으고 카메라를 가져다 사진을 찍었으나 렌즈앞에 맻힌 이슬 때문에 이미지가 흐리다. 종묘상카다로그에 맛자랑을 많이해 놨더니 정말이다. 맛이 너무 좋았다. 내년부터는 철저한 관리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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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내 복숭아!"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많이 내리지도 않은 어제 저녁 비에 절반 정도가 땅으로 떨어졌다. 아까운 생각에 성한 것 몇 개 주워 손바닥으로 훔치고 입으로 가져갔다. 작고 상했지만 껍질채 먹을 수 있는 복숭아다. 코끝에서 시작한 복숭아 향은 입안을 맴돌아 목구멍으로 사라지고 또 코끝으로 이어진다.

'응~ 이래서 복숭아는 신선들의 과일인 모양이다' 생각하면서 대여섯 개 먹다 보니 집사람이 생각난다. 시랑헌 쪽을 쳐다보니 집사람이 내 모습을 흥미롭게 내려다보며 웃는 얼굴로 서 있다. 나는 악동이고 집사람은 어린 시절 외할머니 모습이다.

급히 몇 개 따면서 집사람에게 청했다. 어릴 적 껄끄런 털 때문에 혼이 난 집사람에겐 복숭아는 좋은 인상의 과일이 아니지만 내 청을 거절하기 힘들었는지 내려왔다. 작고 상처 난 복숭아를 우물에 몇 번씩 씻더니 어렵게 입안에 넣는다. 눈알이 커지고 미소가 흐르는 것이 대단히 만족스런 표정이다. 한참 뒤 뱉는 일성은 "놀랍다"였다.

이 작고 상처 난 복숭아에는 남길이네 단감 맛과 경렬이네 배 맛도 배어 있다. 우리가 수밀도를 대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며칠이다. 혀로 맛볼 수 있는 맛만 맛이 아니다. 아쉬움도 맛이고 그리움도 맛이다. 우리는 아쉬움의 수밀도를 양손에 들고 또 입에 물고 먹으면서 흡족하고 행복한 발걸음을 감자밭으로 돌렸다.

올해는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수확량을 보니 아직도 갈길이 멀다. 때를 놓이지 말아야 겠다. 정성은 기본이다. 적은 소출이지만 집사람은 벌써 몫을 지어놨다, 우리몴은 잘해야 상하거나 도톨이 만한 잔 씨알이 우리 몴이다.
▲ 야속한 감자밭 올해는 나름대로 한다고 했지만 수확량을 보니 아직도 갈길이 멀다. 때를 놓이지 말아야 겠다. 정성은 기본이다. 적은 소출이지만 집사람은 벌써 몫을 지어놨다, 우리몴은 잘해야 상하거나 도톨이 만한 잔 씨알이 우리 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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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한 감자밭

멀칭한 감자밭은 두둑 속까지는 젖지 않아 수확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랑헌으로 다시 올라 간 집사람은 20여 개 종이 상자와 호미를 가지고 돌아왔다. 올해는 20여 상자를 수확하겠다는 당찬 포부다. 나와 집사람은 두 그루째 감자를 수확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장미빛 환상에 젖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 두둑을 헤쳐 감자를 담았지만 겨우 한 상자 될똥말똥하다. '두 번째 이랑은 퇴비도 많이 들어갔고 파종 때부터 성장이 좋았으니 적어도 3상자 정도는 수확할 것이다'라고 스스로 달래면서 감자밭을 뒤졌지만 마찬가지 결과다. 야속하다. 밭이 우리를 배반했다는 생각에 서운함이 배어나고 감자를 캐는 일도 시들해진다.

시랑헌과 더불어 살면서 느낀 자연과 우주에 대한 감정은 항상 우리들의 짝사랑이었다. 상처를 입고 서운해 하는 쪽은 언제나 우리 쪽이었다. 우주인 자연은 아무런 언질이나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상호 약속하고 보장받은 것처럼 판단하고 행동했다.

시간에 쫓겨 퇴비를 때 맞춰 뿌리지 못했고 곱게 밭을 갈지 못했다. 퇴비는 뭉쳐 있었으며 이랑은 낮고 땅은 돌 같이 딱딱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배수가 되지 않았고 날이 가물 때에는 물을 주지 않았다. 감자가 씨알이 굵어질 때 해줘야 하는 북주기도 못했다. 종이상자를 20여 개 준비한 쪽은 우리다.

땅에서 나온 이러한 감자를 보고 그 량이 많다,적다 할수 있는 것인가 싶다. 사실은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내가 만든 우리의 식량이다.
▲ 감자 땅에서 나온 이러한 감자를 보고 그 량이 많다,적다 할수 있는 것인가 싶다. 사실은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내가 만든 우리의 식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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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메뉴는 수확한 감자를 압력밥솥에 삶은 것과 김치 그리고 6년 동안 숙성 시킨 매실주다. 식탁에 오른 감자는 상처 난 감자 중 좋은 것을 고른 것이란다. 기분과 달리 막 삶아 낸 햇감자를 입김으로 불면서 먹는 맛은 별미 중 별미였다. 집사람은 입천장이 벗겨졌다. 시장기와 완숙한 매실주가 반찬을 자청했다. 적은 소출의 불만에서 벗어나 추수에 감사하고 깊은 성취감에 젖는다.

가장기와 임서기

화제는 자연스럽게 금년 4월에 결혼한 아들과 며늘아기 얘기가 된다. 7월 말에는 아들도 휴가이고 며늘아기 직장도 방학인지라 시랑헌에 오겠단다. 예의상 꼭 필요한 하루 동안 시랑헌에 머물고 다음날부터는 주변으로 여행을 떠나겠단다. 아들은 아빠의 시랑헌 조성사업이 자기 어머니인 집사람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우 불만이다.

나는 평소 브라만교에서 일생을 학생기, 가장기, 임서기, 유행기로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타당하다고 생각해 가끔 나의 일생을 4단계로 구분해본다. 가정을 일구고 가꿔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이제 삶을 정리하려고 산으로 들어가려는 임서기의 내가 이제 막 가정을 일군 가장기의 아들에게 인간에게 가장 소중하고 참된 것 등을 운운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지금의 아들에게는 가정을 꾸려나갈 원동력인 집과 직장, 돈 그리고 승진 등이 정의이고 현실일 것이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그들의 삶의 쓰레기가 가장무도회의 뒷마당 같이 어수선하게 뒹굴 때 아빠와 엄마의 삶의 자취가 그들에게 등대나 나침반이 될 수 만 있다면 지금 나의 역경은 오히려 보람되고 알찬 삶이 될 것이다.

아리고 그윽한 꿈의 대상인 나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내 가슴속의 이미지는 지금 아들의 가슴속에 자리한 내 영상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 아들과 며늘아기에게 시랑헌이 '이상화' 시인의 마돈나가 되기를 빈다.


태그:#수밀도, #이상향, #이상화, #침실 ,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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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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