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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최근에 한 학자의 사적인 생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국역사에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하신 분이셨다. 그 분은 정치학자였지만 사생활에서도  민주적인 분이셨으며 페미니스트적인 생활을 하셨다는 주위의 증언이 있었다. 그 분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생각하지도 않고, 공적으로 선언을 하신 적은 없지만 생활은 양성평등적인 삶이었다는 칭찬이었다. 나도 그 분을 존경하고 있었고 그 분의 사생활도 아마도 학문하는 것과 같이 올곧으시리라 예측은 했었다.

 

그런데 내가 그 이야길 들은 후에 드는 생각은 왜 그 분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하는 사람이 오히려 그 분이 스스로 칭하지 않으면서 그런 생활을 하신 것을 높이 사는 듯한 태도에 페미니스트라고 공언하면 왜 안 되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서 여성들 중 특히 여성 이슈에 관심이 많은 여성 중 몇 명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여성 활동가들도 주저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남녀를 불문하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사전의 표현을 빌리면 페미니스트는 '남녀평등(성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을 뜻한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양성 평등이 옳다고 믿는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이 갈등 없이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라고 생각하냐고 물으면 아마도 대부분은 아니라고 답할 것같다.

 

서구에서도 여성들에게 페미니스트라고 물으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 우연히 구글에서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았다. "당신은 페미니스트입니까"라는 질문을 여성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의 말과 표정이 아주 재미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으니.."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나는 사회주의자다" "난 여성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지 않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나를 무엇으로 생각하든 사람들은 나를 흑인으로 본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를 공격적이며 요구가 많으며 전혀 여성적이지 않은 사람들로 생각한다" "나는 휴머니스트이다" 등이었다.

 

이상의 동영상에서 본 바와 같이 페미니스트는 그 기본 주장과 달리 다양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배타적이고 정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하고, 대부분은 부끄러운 줄 모르는 뻔뻔한 이미지 등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사실상 사회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존재적 실체와 다른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남성과 여성의 역할, 이미지는 그러하다.

 

또한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면 그 수준과 기준은 무엇이며, 굳이 페미니스트로 자기 정체성을 밝혀야 하는가하는 의문도 제기될 것이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생각하지 않는 여성과 남성 중 일부는 스스로 기준(?)에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무엇이라고 호칭하고 규정짓는 것은 자신의 인생의 태도나 목표를 자기 자신과 자신의 주위에게 밝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교에 관한 질문을 보자.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교회나 절에 다니냐고 문는다. 서구에서는 직접으로 기독교인(불교인)인가 묻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하여 (사적인 질문이라 피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답한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불교인)이 똑같은 수준의 신앙심을 갖고 똑같은 교파를 믿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의 종교적 신념을 단순하게 답한다. 중요한 것은 수준, 교파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정치적 신념에 관해서 말해보자. 누군가 사회주의자라고 말할 때,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며,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지향과 주위에 선전을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로서 노력하려는 자세일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가 단순하다는 것은 아니다. 양성평등을 믿지만 그 원인과 생활에서 불평등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양성평등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며, 성에 기초한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저항이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로 공개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성에게는 포용력 있는(?) 모습으로 비쳐줄 수 있겠지만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커밍 아웃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라고 커밍 아웃하는 순간부터 자신이 속하는 조직에서 (특히나 남성들이 대다수인 조직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왕따 당하는 분위기에 있기 쉽기 때문이다.

 

난 공개적으로 꼭 정체성을 밝히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신념으로 인해서 왕따당하는 분위기, 경계의 대상이 되는 사회, 조직의 문화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들이 커밍 아웃하지 않을 때, 여성주의적 가치가 비가시적이 되고 여성주의적 가치는 더욱 주변화되어지고 그 속에서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성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경계를 넘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자.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의견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그 다양한 이해는 편견일 수 있고, 오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두려움없이 반응하고 노력하는 것도 평등 사회를 위한 실천일 것이다. 특히 우리가 오늘날 있게 여기에 있게 한 것은 수많은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들) 덕분이다. 세상의 위협에서 꿋꿋히 맞서서 페미니스트로서 일어선 여성들이 우리를 여기에 있게 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뻔뻔한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차별의 대상인 여성이 오래된 종속과 억압을 끊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차별받는 소외된 그룹과 사회에 대한 보내는 연대의 관점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다. 소외된 대상으로 또 다른 소외를 만들고 있지 않은지, 또 다른 소외에 침묵하지 않은지 성찰하는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가부장적 문화가 뿌리깊은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가치이며 실천이다.

덧붙이는 글 | 김애화님은 새세상연구소 연구위원입니다.


태그:#페미니즘 , #양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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