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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의 상장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23일 삼성생명 주식의 공모가가 11만 원(액면가 500원의 220배)으로 결정되었고, 이제 공모주 청약 및 주금 납부 등의 마지막 절차를 거쳐 오는 5월 12일에 상장된다.

이로써 시가총액 22조 원으로, 삼성전자(4월 26일 종가기준 122.8조 원), 포스코(46.6조 원), 현대차(29조 원), 신한지주(23조 원), 한전(22.4조 원)의 뒤를 잇는 시가총액 6위의 거대 상장사가 출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76%의 가치는 4.6조 원에 달하고, 삼성전자 지분 3.88%(4.1조 원)를 능가하는 재산목록 1호가 되었다.

속은 쓰리지만, 이미 끝난 일...

서울 태평로 삼성빌딩(자료사진)
 서울 태평로 삼성빌딩(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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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지금 필자의 속은 무척 쓰리다. 지난 10여년간 경제관련 시민운동에 관여한 필자로서는 생명보험회사(이하 생보사) 상장 문제만큼 철저한 실패를 맛본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삼성생명이 있다.

지금도 필자는 2007년 1월 제3차 생보사 상장자문위원회(위원장 나동민 박사, 현 NH보험 대표, 이하 상장자문위)가 내린 결론에 대해 결코 동의하지 못한다. 즉 "생보사는 완전한 주식회사이며, 배당 문제 등에서 보험계약자의 권익을 침해한 바도 없고, 따라서 상장에 따른 자본이득은 모두 주주 몫이다"라는 결론에 대해 한마디도 동의할 수 없다. 당시 나동민 위원장은 상장자문위의 보고서야말로 노벨 경제학상 감이라고 자화자찬했지만, 그 보고서에 내재된 이론적⋅실증적 오류에 대해서는 그 누구와도 토론에 응할 용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필자는 삼성생명의 상장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비록 동의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결론이 내려진 일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필자가 비록 연구실에서 공부만 하는 학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다는 식의 혁명가도 아니다.

상장자문위의 결론에 따라 2007년 4월 당시 증권선물거래소가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개정안을 의결했고, 곧이어 당시 금감위가 이를 승인했다. 이를 기초로 이미 동양생명과 대한생명이 상장했고, 삼성생명도 상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마디로, 시장은 생보사 상장을 전제로 이미 많이 움직였다. 현 상황에서 생보사 상장, 특히 삼성생명 상장을 저지하는 것(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가능성도 희박하지만)은 시장의 안정성을 깨는 일이다. 내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생각해도, 불특정 다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 수는 없다. 더구나 소액주주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래서 속은 쓰리지만, 코멘트하지 않았다.

상장은 경영판단의 문제, 그러나...

그런데 최근 삼성생명의 상장(IPO; Initial Public Offering)이 가시화되면서 재미있는 논란거리가 생겼다. 비상장 회사가 상장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신주를 발행하여 성장을 위한 새로운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주주가 구주 매각을 통해 기업가치 성장의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생명은 총 4443만 7420주를 공모하는데, 이게 모두 삼성차 채권단과 신세계⋅CJ 등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된 친족그룹이 보유한 물량이다. 즉 삼성생명이 새로 주식을 발행하지도 않았고, 이건희 회장 등의 지배주주가 기존 주식을 팔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런 이상한 상장을 도대체 왜 하느냐'라는 논란이 생긴 거다. 이것이 오늘 이 글의 주제다.

물론 상장을 하느냐 마느냐, 한다면 어떻게 하느냐 등은 순전히 경영판단 상의 문제다. 즉 불법이 아닌 한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다만 상장 이후에는 불특정 다수의 외부 소액주주가 생겨나고, 이들 사이에 끊임없이 주식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장회사는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를 위한 보다 엄격한 제한이 따른다. 바로 그 지배구조의 관점에서 이번 삼성생명의 이상한 상장에 대해 살펴본다.

신주를 발행하지 않은 이유

우선, 삼성생명은 왜 신주를 발행하지 않았나? 더구나 작년 11월 삼성생명이 처음 상장 계획을 발표할 때 '2015년 글로벌 톱 15위권 진입을 위한 자본확충의 필요성'을 그 명분으로 내세웠던 점을 감안하면,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분명 있다.

그러나, 신주 발행은 비용이 많이 드는 자금조달 방식이기 때문에, 상황이 변했다면 굳이 신주를 발행할 필요는 없다. 2009년 12월 말 현재 삼성생명의 지급여력비율(보험사의 자본적정성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은행의 BIS비율에 해당한다)은 309.8%인데, 이는 경쟁사인 대한생명의 228.1%, 교보생명의 243.3%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국내시장에서의 경쟁만을 생각한다면 신주 발행의 필요성은 없다.

반면, 현재 세계 30위권인 삼성생명이 15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 외국 생보사를 인수하는 등의 글로벌 전략을 고려한다면 자본확충이 필요하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확실성이 채 가시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무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중한 판단일 것이다.

따라서 작년 11월에 글로벌 톱 15위권 진입 운운한 것은, '삼성생명 상장이 향후 그룹의 지배구조와 승계구도에 어떤 영향은 미칠 것인가'라는 식으로 일파만파 번져나가는 세간의 관심을 비켜가기 위한 홍보팀의 애교 정도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이건희 회장이 구주를 팔지 않은 이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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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건희 회장은 왜 기존 보유주식을 매각하지 않았나? 이른바 천문학적 액수의 상장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도 말이다. 여기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삼성그룹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법적 논란 중의 하나가 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문제이다. 에버랜드를 단순한 놀이동산 회사로 생각하신다면, 삼성을 모르는 분이다. 에버랜드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였고, 따라서 삼성그룹 전체의 사실상 지주회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들 이재용 부사장 →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출자구조가 이재용 부사장의 3세 총수 등극을 위한 핵심고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출자고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생생명 지분의 가치가 에버랜드 자산총액의 50%를 넘으면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그 자회사(삼성생명)가 비금융 손자회사(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은 법위반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물거품이다. 작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을 통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이 제약조건은 제거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하나…. 이건희 회장으로서는 일생일대의 치욕이라 할 수 있는 김용철 변호사 사건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앞서 말한 금융지주회사법상의 제약은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일 때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특검이 찾아준 차명주식을 실명전환한 결과 삼성생명의 최대주주가 에버랜드(지분율 19.34%)에서 이건희 회장(지분율 20.76%)로 바뀌었다.

그래서 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문제를 걱정할 필요 없이 삼성생명의 상장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특검이 이건희 회장에게 준 최대의 선물이다. 단, 이건희 회장이 1.42% 이상의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할 경우, 다시 에버랜드가 최대주주가 되고 금융지주회사 문제가 재연된다는 점만 주의하면…. 그래서 이건희 회장은 구주매출에 나설 수가 없었다.

둘째, 앞서 언급했듯이,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지분은 그룹의 지배구조와 승계구도를 위한 핵심자산들이다. 이들 자산의 처분은 (그 대상이 3세 자녀들이건, 계열사이건, 공익재단이건, 또는 우호적 제3자이건 간에) 3세 자녀들로의 승계 및 계열분리를 위한 밑그림이 완성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삼성의 기업문화적 특성상, 이건희 회장이 건재하는 한, 이 밑그림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왕은 둘일 수 없다. 그리고 전략기획실 가신들의 입장에서도 이 밑그림을 계속 불확실한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그들의 현 지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당분간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을 파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누구를 위한 누구의 경영판단?

이것저것 다 빼고 나니, 남는 것은 하나 밖에 없다. 삼성생명이 신주 발행도 없고 지배주주의 구주 매출도 없는 이상한 상장을 하는 이유는 결국 이건희 회장의 삼성차 부채처리를 매듭짓기 위한 것이라는 결론 말이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삼성생명 주식을 처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향후 이건희 회장과 그 자녀들, 그리고 가신들이 펼칠 불확실한 파워 게임의 결과에 달렸다는 애매한 답변을 덧붙여서….

거듭 강조하지만, 원칙적으로 상장은 경영판단의 문제다. 공정한 조건으로 주식을 공모한다면,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삼성과 관련된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삼성생명의 상장을 순수한 경영판단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삼성생명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상장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두고, 삼성생명이라는 개별회사 차원의 독립적 경영판단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을 둘러싼 마지막 법률적 위험, 즉 삼성차 부채처리를 위한 것이든, 또는 3세 승계를 위한 계열분리의 시동을 거는 것이든 간에, 그것은 그룹 차원의, 아니 그룹 총수일가 차원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결론적으로, 비상장 회사가 상장을 통해 그 지배구조 상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제고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 통상적인 예임에 비추어본다면, 삼성생명의 상장은 오히려 해당 회사는 물론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상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의 최종적인 향배는 지금 이 순간 이건희 회장도 알지 못할 것이다. 비록 불법은 아니라고 하지만, 삼성생명의 그 이상한 상장이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덧붙이는 글 | 김상조 기자는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이자 경제개혁연대 소장입니다.



태그:#삼성생명 상장, #이건희, #삼성특검, #에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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