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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 때문에 집을 날리게 된 자칭 삼류소설가인 '나'에게 뜻밖의 자산가가 나타난다. 정 사장이라고 하는 자산가는 '나'의 빚을 청산해줄 테니 어떤 미션을 수행하라고 말한다. 사람들의 집을 구해주라는 미션이었다.

 

정해진 금액이나 까다로운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주라는 것인데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생명 같은 것이 '집'이 날아갈 판이니 두 번 세 번 고민할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하기로 한다. 사람들 집 마련해주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집을 구해주는 여자 이야기가 담긴 <내 집 마련의 여왕>은 여러 모로 눈길을 끈다. 첫째 이유는 소설가 김윤영의 첫 장편소설이라는 사실이다. 등단 이후 <루이뷔똥>, <타잔>, <그린 핑거>등의 소설집을 선보인 그녀는 현대인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하며 그녀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그렇기에 장편소설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눈길을 끄는 두 번째 이유는 소재 때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내 집 마련의 여왕>은 돈과 부동산이 널뛰기하는 한국사회에서 사람들 집을 마련해준다는 이야기다. 10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를 담아낸 소설인 셈이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소재를 지닌 김윤영의 첫 장편소설은 어떤 모습일까. 출판 일을 조금 해보고 글을 조금 썼던 '내'가 부동산을 상대로 쉽게 이길 리는 만무하다. 초짜인 만큼 공부를 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유머가 넘친다. 부동산을 공부하는 '나'의 어수룩하고 우왕좌왕하는 그 모습은 하나의 시트콤처럼 유머러스하다. 김윤영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약간은 낯선 모습이지만 그것이 나쁘지는 않다. 작가의 글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웃음을 만들어주는 사이, 절박하게 집을 찾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미션이 시작된 것이다. 첫 번째 미션은 어렵게 살아온 형제에게 집을 마련해주라는 것이다. 형제가 갖고 있는 돈은 4천만 원이 좀 안 된다. 사장에게 2천만 원 정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하니 갖고 있는 돈은 약 6천만 원이다. 이 돈으로 살만한 집은 어느 것이 있을까?

 

고민하는 찰나, 철없는 동생은 아파트면 좋겠다고 말한다. 서울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서울에서 6천만 원 갖고 번듯한 집을 구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떡 몇 개로 기적을 만들라는 얘긴가'라고 기겁하는 것이 당연할 만큼, 집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미션이라는 것도 있지만, 집다운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형제의 사연이 너무나 절박하기 때문이다. 집이 없어 받아야 했던 그 숱한 서러움 앞에서 누가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집다운 집에서 남들 눈치 안 보고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누가 현실타령하며 정신 차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동분서주한다. 발품을 팔며 경매에도 참여하면서 사람들에게 집을 구해주는데 그 모습이 가슴을 파고든다. 집 없어 서러움 당하는 사람, 집다운 집에 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괴로움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기에 그런 것일 게다. 과연 누가 이 소설을 단순한 소설로 생각하며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것의 강도가 세다.

 

그것에 실종된 남편과 말문이 막힌 딸아이의 사연이 더해지면서 <내 집 마련의 여왕>은 때때로 왈칵, 하게 만들기도 한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애틋하게 그렸기에 그런 것일 테다. 여러 모로 눈길을 끌었던 <내 집 마련의 여왕>은 소설의 소재도 그렇거니와 서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슴을 감동시키는 셈이다.

 

돈 냄새와 눈물 냄새 사이에서 풍겨오는 짙은 여운이 나쁘지 않다.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저자의 노력이 느껴지는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와 가족의 애틋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김윤영의 첫 번째 장편소설 <내 집 마련의 여왕>, 살아있는, 감동적인 소설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내 집 마련의 여왕

김윤영 지음, 자음과모음(이룸)(2009)


태그:#김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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