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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7일.

 

잊지 못할 그날이 꼬박 365일이 지나 다시 찾아왔다. 난 지난해 12월 17일, 일제고사에 대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자기결정권을 줬다는 이유로,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 통보를 받았다. 나를 포함해 서울지역 교사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최혜원)이 같은 이유로, '성적비위행위'에 해당된다는 이유로 파면·해임 징계를 받고 아이들 곁을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2009년 12월 17일. 우리 7명의 해직교사는 법정에 섰다. 많은 날들을 학교에서,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우리는 지난 1년을 길에서 보내야만 했다. 사랑하는 아이들 곁을 떠나 있었지만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고 걱정해주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있어 힘겨운 해직생활을 잘 지탱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길에서 보낸 1년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이 '학교'가 아니었을 뿐, 아이들도 우리와 항상 함께 했다. 누군가의 생일날이 되면 교육청이 '성적조작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파렴치 교사'라며 내쫓은 교사들을 초대해 서로 축하와 위로를 받기도 했다.

 

몇몇 아이들은 시험을 망친 날이나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날이면 선생님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챙기시라"고 전화하는 아이도 있었고 중간고사가 끝난 날에는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이 모여 선생님 자취방을 찾기도 했다. 학교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꼬박 1년, 해직교사인 내가 걸어온 길

 

지난 9월, 우리는 징계 당사자인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징계 취소 요구 행정소송'을 시작했고, 17일 마지막 결심이 열린 것이다.

 

17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101호 법정. 우리는 '재판 결과에 따라 내년에는 꿈에 그리던 학교로 돌아가 아이들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상기된 얼굴로 법정에 들어섰다.

 

이번 재판에 쟁점이 되는 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 일제고사 강제시행이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학생의 행복추구권과 학생과 학부모의 자기결정권에 위배된 것이 아닌가 여부와 둘째, 학생과 학부모의 시험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알려준 행위가 과연 학교에서 쫓아낼 만큼 중대한 범죄행위인가 여부다.

 

우리의 주장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일제고사로 인해 보호받아야 할 학생의 학습권과 행복추구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으며, 학생의 학습능력이 오직 일제고사 점수로 평가받고 있어 학교교육과정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설사 일제고사 자체에 대한 논의는 제외한다 하더라도 학부모와 학생에게 일제고사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알려주었다는 이유로 해임이라는 징계를 받는 것은 너무 과도하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입장은 여전히 분명하다. 해직된 7명의 교사들은 인사권자인 교육감의 직무명령을 수행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의 지시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고, 이들이 일제고사에 대한 안 좋은 정보를 제공해서 결과적으로 학생이 시험에 응하지 않았으므로 징계는 정당하다는 것. 특히 성추행이나 금품수수같은 행위는 개인적인 비위에 해당하지만 이들의 범죄는 국가시책을 방해했으므로 정부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할 공무원으로서 성실의 의무와 복종의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교사의 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정을 가른, 일곱 해직교사와 방청객의 눈물

 

법정은 조용하고 고요했다. 이 고요함은 일곱 교사들의 최후진술이 시작되면서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먼저 선사초등학교 송용운 교사는 "이미 지난 소청심사위원회에서 해임 결정을 하면서 교육청에서는 '이들의 징계가 경감되어 학교로 돌아간다면 일제고사를 제대로 시행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도 이들이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일곱명의 교사들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았다"며 "사법부에서는 우리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여기지 않으리라 믿으며 명명백백한 판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 교사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지난 1년을 보내면서 마음속에 담아뒀던 말들을 꺼내놨다.

 

"공부 못하는 학생을 교탁 앞에 앉혀 놓고 '너는 공부를 못하니까 교탁 앞이 바로 네 자리다'라고 하면 그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할까? 그 앞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기보다 위축되어 포기해 버린다. 비유하자면 일제고사는 이런 교육방법이다. 학생에게 긍정적인 학습동기를 부여하기보다 그나마 남아있는 자존감을 허물어버리는 반교육적인 방법이다."

 

이어 광양중학교 윤여강 교사가 말문을 열었다. 윤 교사는 "해임에 적용된 법령위반 내용이나 징계과정을 보고 겪으면서 같은 교육계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들 앞에 많이 부끄러웠다"며 "아이들은 말이나 수업보다 교사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들은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여강 교사는 더 이상 진술을 이어가지 못하고 흐느꼈다. 재판에 참가한 7명의 교사는 물론 이들을 격려하러 와서 방청석에 앉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다.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으며 교사들의 최후진술은 계속됐다.

 

청원초등학교 김윤주 교사도 최후진술에 나섰다. 그는 "물론 법정에서는 법률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야 하지만 이 문제는 아이들의 눈으로 봐야 진실을 볼 수 있다"며 "법률적인 잣대로 이 사건을 바라보기보다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게 가장 미안"

 

거원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10년차 박수영 교사는 "해직되고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들이 무슨 대가를 바라고 이미 학교에서 쫓겨난 사람 옆에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우리 일곱명은 시험성적을 조작한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라 학부모와 아이들의 권리를 찾아주려다가 부당한 권력에 희생된 사람들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유현초등학교 설은주 교사는 "아이들 곁에서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 꿈"이라며 "작년에 헤어지면서 상처받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장 가슴이 아프고 빨리 복직해서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길동초등학교 최혜원 교사는 "아이들 교육보다는 자신의 입신출세에 누구보다도 성실했던 사람들이 내린 징계는 인정할 수 없다"며 "이 순간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작년 아이들과 학급문집을 만들지 못하고 헤어진 일이다, 복직하면 우리들의 아픔까지 담은 학급문집을 만들어 나누어 가지겠다"고 소회했다. 

 

우린 지난 1년을 담담하고 씩씩하게 버텼다. 하지만 김윤주 교사 말처럼 "담임으로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오는 31일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이번 행정소송에 대한 선고가 있는 날이다. 우리 해직교사 7명과 학부모,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억지로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상처 입은 어린 학생들에게 기쁜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태그:#1, #1, #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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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 학부모학생의 자기결정권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직된 해직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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