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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윈난(雲南)성은 '치차이윈난'(七彩雲南)이라 불린다.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구름의 남녘이라는 뜻이다. 그 칭호처럼 윈난은 자연과 민족이 다양하다. 아열대 우림부터 만년설을 뒤집어쓴 고산지대까지 기후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드넓은 중국 대륙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약 25%가 윈난에서 발견될 정도다. 해발 76m에서 6740m에 이르는 표고차로 인해 중국 남단 하이난다오(海南島)에서 북단 헤이룽장(黑龍江)까지의 날씨가 한꺼번에 모두 나타난다.

 

수십 개의 민족은 저마다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를 영위하고 있다. 윈난에만 있는 15개 소수민족을 포함해 성 내에는 26개의 민족이 집거하고 있다.

 

화려한 의복과 노래솜씨가 일품인 이(彛)족, 대리석 공예로 잘 알려진 바이(白)족, 위룽(玉龍)설산 아래에서 동파문자를 사용하는 나시(納西)족 등 소수민족은 자신들의 언어와 종교, 문화, 풍속을 갖고 있다.

 

쿤밍(昆明)시 동남쪽에서 86㎞ 떨어진 스린(石林)은 윈난의 자연과 민족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스린은 이름 그대로 '돌의 숲'이다. 기묘한 형상의 카르스트 지형이 12㎢에 펼쳐져 있다. 다(大)스린, 샤오(小)스린, 나이구(乃古)스린, 창후(長湖), 유에후(月湖), 즈윈둥(芝雲洞), 치펑둥(奇風洞) 등 7개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다.

 

석림이 위치한 행정구역은 이족자치현이다. 이족은 중국 서남부 산악지대에 주로 산다. 언어는 티베트·버마어계이고 조상신과 하늘, 땅, 바람, 번개 등 자연신을 숭배한다. 옛날부터 이족은 농경생활을 하면서 목축과 수렵도 병행했다.

 

지금은 하나의 이족으로 통칭되지만, 크게 흑골 이족과 백골 이족으로 나뉘었다. 흑골 이족은 지배 계급으로 본래 중국 서북부에서 이주해왔다. 성격이 거칠고 호전적인 흑골 이족은 쓰촨(四川)성 서남부 량산(凉山)산맥에 주로 살고 있다.

 

백골 이족은 인구는 많지만 흑골 이족에게 지배를 받거나 노예가 되었던 피지배 계급이었다. 윈구이(雲貴)고원에 주로 흩어져 사는데, 스린의 이족은 백골 이족의 한 일족이다.

 

 

 

이족자치현 내에는 카르스트 지형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전체 면적이 무려 400㎢에 달한다.

 

중국의 카르스트는 윈난뿐만 아니라 구이저우(貴州), 광시(廣西), 광둥(廣東), 푸젠(福建) 등 여러 지역에 있다. 그 중 윈난의 스린은 규모가 가장 크고 형상이 다양하며 아름답다. '천하제일기관'(天下第一奇觀)이라는 격찬까지 얻을 정도다. 카르스트는 석회암 지대가 오랫동안 물에 녹아들어 형성된 침식 지형이다.

 

윈난 스린의 역사는 약 3억6000만년 전 고생대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윈난은 바다의 일부였다. 하지만 아시아대륙과 인도대륙이 충돌하면서 윈난은 점차 돌출하면서 육지로 변했다.

 

바다 속 석회암층이 솟아오르며 바닷물과 충돌하고 기묘한 돌의 숲을 만들어갔다. 약 2억8000만년 전부터 스린은 기본 형상이 갖추어졌다. 여기에 끊임없는 지각 변동에다 풍화와 침식까지 겹쳐지면서 바위는 천년 고목처럼 색깔마저 거무죽죽하게 변해갔다.

 

스린에 가보면 빽빽한 열대우림에 다양한 수종(樹種)의 나무숲처럼 돌이 펼쳐진 듯하다. 셀 수 없이 많은 형태와 크기의 돌이 스린 전체에 끝없이 솟아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신이 내려와 땅에 돌의 씨앗을 뿌려 싹이 뜨고 자라난 듯하다.

 

스린 입구를 지나면 바로 돌의 숲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잔디밭 위에 삐죽빼죽한 돌나무들이 서 있다. 거대한 돌나무는 목을 젖혀야 볼 수 있을 만큼 크고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줄지어 서 있는 돌나무는 서로 어깨를 맞이하여 바위 산맥을 보는 듯하다. 산맥 앞에는 아직 자리지 못한 키 작은 바위가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특이한 돌이나 암벽에 생김새에 따라 이름을 붙여놓았다는 점이다. 스린 주변에 거주하는 이족의 전설과 설화를 이식해 놓은 것도 흥미롭다.

 

스린 사이사이에는 호숫물이 남아 있어 회색빛 바위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고 있다. 푸른 하늘과 기묘한 형상의 돌 숲, 녹색 나무, 맑은 호수 등은 한 폭의 산수화를 보듯 아름답다.

 

 

 

오랜 옛날에는 바다 속에 잠겨 있던 만큼 스린의 돌나무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돌 목부분에 있는 뚜렷하게 선처럼 파인 자국이 그것이다. 이 자국은 바다 밑 흙 속에 파묻혀 생겨났다.

 

스린 풍경구에서 다스린과 샤오스린이 주요한 볼거리다. 다스린에는 주로 키가 큰 돌나무와 바위 산맥이 많다. 다스린 중앙에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공터 앞 암벽에는 빨간 색으로 '스린' 두 글자를 새겨 놓았다. 그 아래에는 '천조기관'(天造奇觀)이란 글자가 있다. 하늘이 만들어놓은 기묘한 풍경이란 뜻이다.

 

암벽 샛길로 지나가다 보면 두 개의 커다란 돌나무 사이에 바위 조각이 떨어질 듯 걸쳐져 있다. 현지 사람들은 이 돌을 '양심석'이라 부른다. 양심이 불량인 사람이 지나가면 떨어지는 돌이란 뜻이다. 스린 내에는 이런 양심석이 여러 개 있는데, 실제로 떨어져 사람이 다친 일도 있다고 한다.

 

다스린의 돌나무 사이사이에는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어떤 길은 사람 혼자 간신히 다닐 수 있을 만큼 좁다. 길을 오가다 보면 돌의 숲에서 헤매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다스린에서 가장 높은 암벽 위에는 왕펑팅(望峰亭)이 있다. 왕펑팅에 올라서면 스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열대우림처럼 빽빽하게 모여 하늘을 찌르는 듯한 돌의 숲은 장관을 이룬다.

 

왕펑팅에서 내려오면 바위틈의 돌이 유리처럼 반질하게 빛난다. '스린의 심장'이라 일컬어지는 돌로, 남자는 왼손으로 여자는 오른손으로 만져야 한다. 일종의 무병장수와 만사형통을 비는 의식이다.

 

기묘한 형상과 재미있는 설화가 갖추고 있어 스린은 명나라 때부터 이미 중국에서 이름난 명승지였다. 1950년대 중국정부에 의해 관리가 시작되어 1982년에는 중국 내 최초의 5성급 풍경구로 지정됐다. 2007년 6월에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시켰다.

 

 

다스린과 달리 샤오스린은 오밀조밀한 배치 구조에 아기자기한 돌나무가 많다. 샤오스린 중앙에는 잘 꾸며진 잔디밭과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 맞은 편에는 머리에 화관을 쓰고 등에 짐을 진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돌 하나가 서 있다. 한 젊은 연인의 슬픈 사랑이 깃들어 있는 전설을 배경으로 한 '아스마'(阿詩瑪)다.

 

옛날 윈난의 아저디(阿着底)라는 곳에 이족의 한 분파인 싸니(撒尼)족이 살았다. 싸니족의 한 마을에 아름다운 처녀 아스마와 근면하고 용감한 청년 아헤이(阿黑)가 있었다.

 

두 젊은이는 민족 최대의 축제인 훠바제(火把節) 때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얼마 뒤 아스마와 아헤이는 산차화(山茶花)를 예물로 삼고 자연신이 보는 앞에서 정혼을 했다.

 

하지만 두 연인의 사랑은 곧 커다란 암초에 부딪쳐야 했다. 마을의 세도가인 러부바라(熱布巴拉)의 아들 아즈(阿支)가 아스마를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아즈는 권력과 돈을 가진 아버지에 기대어 아스마를 차지하려 했다. 사람을 보내 결혼을 강요했는데, 아스마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화가 난 아즈는 아헤이가 양떼를 몰고 방목하러 나간 사이에 아스마를 강제로 끌고 왔다. 끌려가는 도중 아스마는 정혼의 징표인 산차화를 물에 떠내려 보냈다. 떠내려온 산채화를 본 아헤이는 아스마에게 변고가 생긴 것을 짐작하고 급히 마을로 돌아왔다.

 

아헤이는 힘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아즈에게 노래 시합을 제안했다. 승자가 아스마를 차지하는 조건이었다. 3일 밤낮 동안 시합을 벌여 총명하고 목소리가 좋은 아헤이가 이겼다. 하지만 아즈는 아스마를 풀어주지 않았다.

 

아헤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러부바라의 집에 화살 세 발을 쐈다. 한 발은 집 대문에, 한 발은 집 기둥에, 한 발은 집안 탁자에 적중했다. 이에 놀란 러푸바라는 아스마를 놓아주었다. 두 연인은 기뻐 말을 타고 강과 계곡을 건너 집으로 향했다.

 

이 때 러푸바라가 하인들을 시켜 강 상류의 강둑을 터뜨렸다. 노도와 같은 물은 두 연인을 덮쳐 아스마가 급류에 휩쓸렸다. 아헤이가 울부짖으며 실종된 연인을 찾아 헤맸다. 다음 날 보니, 아스마는 이미 죽어 한 계곡 변에 돌로 변해 있었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돌인 만큼 아스마는 스린에서 가장 특이하고 아름답다. 아스마의 아름다움과 자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무엇보다 스린 일대에 사는 싸니족과 관련되어 여행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스린 입구에는 싸니족 여성들이 전통 민족의상을 입고 나와 있다. 가이드로 일하기 위해서인데, 무엇보다 화관(花冠)이 이채롭다. 둥그런 모양에다 울긋불긋한 색감으로 장식해 화사한 느낌을 준다.

 

화관을 자세히 보면 귀 위 부분에 쫑긋한 삼각형의 채접(彩蝶) 장식이 달려 있다. 이 장식은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는데, 두 개의 채접 장식을 달고 있으면 아직 시집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과거 싸니족 남성은 화관의 채접 장식을 빼서 프로포즈를 했다.

 

만약 채접 장식이 뽑힌 여성이 거절하면 남자는 3년간 여자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야만 했다. 남자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풍습이지만, 이는 싸니족이 모계중심사회이고 자유연애를 숭상했음을 보여준다.

 

스린을 구경한 뒤 밖으로 나오면 유달리 차를 파는 상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가게에는 여러 종류의 차가 있는데, 그 중 푸얼(普洱)차가 가장 많다. 윈난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차나무의 원산지다.

 

푸얼차는 윈난을 대표하는 발효차다. 오랜 옛날에는 소수민족만이 푸얼차를 즐겨마셨다. 18세기 청나라가 개토귀류(改土歸流) 정책을 시행해 직접 통치를 강화하면서 푸얼차의 명성이 중앙에까지 퍼졌다. 특히 1726년 푸얼차가 황실에서 마시는 공차(貢茶)로 지정되면서, 소수민족의 차는 황제의 차로 변신했다.

 

오늘날 푸얼차는 투기 열풍을 낳을 정도로 중국 부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오래될수록 품질이 좋고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푸얼차는 무엇보다 건강에 좋고 피부 미용에 효과가 커서 인기가 높다.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해준다.

 

기묘한 자연 풍광, 재미있는 문화와 전설을 가진 소수민족, 푸얼차의 깊은 맛 등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쿤밍 여행이 주는 큰 즐거움이다.

 

 

 

# 여행Tip

 

스린(石林)풍경구는 쿤밍에서 남쪽으로 86㎞ 떨어진 이족자치현에 위치해 있다. 스린의 개방시간은 8:30~18:00이고, 입장료는 140위안(한화 약 2만3800원)이다.

 

스린은 규모가 커서 제대로 보려면 3시간 이상 넉넉히 잡아야 한다. 날마다 주변 싸니족 사람들이 스린 곳곳에서 갖가지 민속공연을 벌인다. 휴식장소도 잘 되어 있으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둘러보는 것이 좋다.

 

쿤밍 도심에서 스린을 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쿤밍기차역과 베이징루(北京路)에 있는 진화(錦華)호텔에서 스린으로 출발하는 여행버스를 타는 것이다. 출발 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전 11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있다. 버스비는 왕복 30위안(약 5100원)으로 같은 버스를 이용해 오후에 돌아오면 된다.

 

둘째는 기차를 타고 스린으로 가면 된다. 쿤밍기차역에는 바로 스린으로 향하는 열차가 있다. 열차비는 왕복 30위안이고 소요시간은 1시간 반이 걸린다. 셋째는 차량을 빌려서 가는 것이다. 스린과 그 주변을 둘러보는 조건을 전제로 할 경우, 1일 대여료는 300위안(약 5만1000원) 안팎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윈난, #운남, #석림, #싸니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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