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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프랭크 라 뤼(Frank La Rue, 이하 특별보고관)는 지난 10월 13~14일 동안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아 지역의 사이버 표현의 자유 현황과 과제"의 국제심포지엄과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과 유엔특별절차 활용방안" 국제 워크샵 참석차 한국을 방문하였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제도)는 유엔인권메커니즘 중 하나로써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인권침해사항이 발생하였을 때 피해 당사자 또는 피해 당사자와 연관된 개인이나 단체에서 특별보고관에게 관련 사항을 알리고 이에 대해서 개입을 요청하면, 특별보고관은 그 사항에 대해서 당사국에 관련 사항을 질의하고, 필요시 당사국에 방문하여 조사방문을 수행할 수도 있고, 이에 대해서 유엔차원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번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한국 방문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사실에 대한 보고관으로서의 조사방문이 아니라, 아시아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와 민변을 포함한 인권시민단체들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하는 목적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표현의 자유 사례에 대해서 언급을 하거나 한국 정부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도 할 수 없는 순수 학술차원의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10월 13일자 동아일보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떴다.

 

"4박5일간 진보단체들만 접촉, 일정 안맞아 정부면담 거절, '한국 인권상황 왜곡전달' 우려" 

 

그리고 이어 조선일보에서는 이 기사를 받아서

 

"좌파단체들만 면담… 한국 인권상황 왜곡 우려"

 

(역시 조선이 한수 위, 동아는 진보인데 그대로 받아 베낀 조선은 헤드라인에 좌파, 이 미세한 차이가 어쩌면 조선과 동아의 차이일 수도 ^^)를 내보냈다. 내용은 간단하다. 특별보고관이 한국 진보단체만 만나고, 법무부 면담을 거절했고, 그러니까 진보이야기만 들으면 편향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어처구니없는 보도와 관련해 주최측은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였으나, 다음날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서 "유엔 표현자유 특별報告官과 자유 대한민국의 명예"를 통해서 "좌파 이념에 입각해 민주질서를 흔드는 불법·폭력 집회를 주도하거나 옹호한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대한민국의 인권상황을 세계에 전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우리는 유엔 특별보고관으로서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특별보고관의 자격도 인정할 수 없고, 이 초청을 추진한 세력은 한국국민의 명예를 실추시킨 반국민집단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하지만 프랭크 라 뤼 보고관이 만난 개인과 단체는 소위 동아, 조선이 찍고 싶은 진보, 좌파단체 뿐만 아니라 외교통상부 관계자와 국가인권위 관계자들, 고려대학교 로스쿨 관계자들도 있었다. 아주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된 기사이기에 좀 더 멋진 논리로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이유를 찾자면, 설령 고려대학교와 외교통상부, 국가인권위 담당자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하여도 이 심포지엄이 특별보고관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아시아 인권단체인 포럼아시아가 추진했던 행사임에도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신문사와 반대편에 있는 단체들의 행사를 진보 또는 좌파로 맞추고 싶은 그들의 비합리적, 비상식적 과도한 의미부여에 있다는 것이다. 참가자들과 초청자는 조선과 동아가 믿고 싶어 하는 단체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법무부의 태도도 정말 우습다. 법무부는 이 사실이 언론에 의해 조금 이슈화되자 보도자료를 통해 법무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빠져나가려 했다. 보도자료 내용을 보면  "1개월 이상의 지속적 면담 요청에도 면담 일정 조정 무산" 또한 "'09년 10월 7일 특별보고관을 법무부 차원에서 면담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 외교통상부에 관련 사실을 전달함"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외교통상부에서는 덜컥 특별보고관과 15일에 면담을 하였다. 이건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이는 법무부가 일정조정하다가 특별보고관측과의 면담이 무산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말 못할 또는 말 할 필요도 없는 이유 때문에 일정이 안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동아와 조선에게는 특별보고관이 정부 측은 안 만나고 진보, 좌파단체만 만나려고 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되는지 도통 모르겠다.

 

사실 그 특별보고관이 누구를 만날지는 특별보고관이 결정을 한다. 특별보고관이 이 행사를 주최하는 주최측의 꼭두각시가 아닌 이상 법무부의 아무개를 만날지 외교부의 누구를 만날지는 자신이 알아서 결정할 것이고, 주변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았던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특별보고관 한국 방문일정 조율 중에 특별보고관이 가능하다고 제시한 날짜에 법무부측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고 외교부는 가능하다고 했기에 면담이 되었던 것이고 이는 그 자체가 특별보고관이 동아와 조선이 말하는 진보좌파단체만 만나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건 기본적인 사실관계일텐데, 법무부는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자신들은 노력했지만 특별보고관이 만나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전체행사의 코디 중 한 명으로 활동했던 개인이 지켜본 프랑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한국 방문동안 거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고, 동아와 조선이 걱정하는 좌파 빨갱이만 만난 게 아니고, 외교통상부, 국가인권위, 고려대학교, 심포지엄에 참석한 정부담당자, 심포지엄과 워크샵에 참석한 수많은 개인, 학자, 엔지오활동가, 정부관계자, 국경없는 기자회 관계자, 국제앰네스티, 포럼아시아, 심지어 동향인 과테말라 유학생도 만났다. 

 

일정 중 특별보고관도 동아와 조선의 기사를 접했다. 그랬더니 한국 기자들과의 기자간담회를 자청하면서, 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기사에 대한 불편함을 표현하면서 "나는 누구하고도 만날 수 있고, 만나고 싶다. 심지어 그 기사를 썼던 (동아, 조선) 기자들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내년 즈음에 한국에 정식으로 조사방문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사실 내가 보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는 인권적인 측면에서 전 정권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후퇴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그런데 특별보고관은 동아, 조선일보를 통해서 한국의 표현의 자유 현황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 하고 싶어 했지만, 학술방문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진정한 표현의 자유 실상과 한국 메이저 언론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정 중 자신의 방문이 조사방문이 아님을 무던히 강조하던 특별보고관에게 이번 일이 한국이라는 외형적 인권 발전국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알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한편으로 동아와 조선이 없었다면 내년의 한국 조사방문 희망사항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동화씨는 현재 민변 국제연대위 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프랭크 라 뤼, #표현의 자유, #유엔특별보고관, #조선일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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