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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는다. 외출해 사람들과 만나 볼일을 본 뒤 집에 돌아온다. 대부분 사람들이 무심코 반복하는 일상. 김병수(24. 천안시 쌍용동)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고도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된다. 도움이 있어야 한다. '장애' 때문이다.

장애인의 꿈 키우는 활동보조 서비스

활동보조인 김영순씨가 중증장애인 김병수씨를 돌보고 있는 모습.
 활동보조인 김영순씨가 중증장애인 김병수씨를 돌보고 있는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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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질환으로 근육병을 앓고 있는 김병수씨. 근육의 힘이 점차 빠져나가고 몸이 굳어져 팔과 다리를 사용 못하게 되는 '진행성 근이양증'. 병수씨의 병명이다.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여덟살 때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몸이 굳어지며 정규학교는 초등학교까지만 다녔다. 초등학교도 아버지 등에 업혀 다닌 시간이 더 많았다. 어머니 김영옥(55)씨의 말이다.

"혼자서는 꼼짝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몇 년 전에는 조금씩 걷기도 했죠. 일이 있어 잠깐 집을 비웠는데, 혼자 화장실을 갖다오다가 넘어졌대요. 넘어진 충격으로 고개가 뒤로 젖혀졌는데, 바로 할 수가 없었대요. '살려달라'는 외침을 듣고 달려온 옆집 사람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 거려요. 24시간 누군가 곁에 있어야만 합니다."

장애와 질병도 학구열은 꺾지 못했다.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지난해는 한양사이버대학교에 편입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병수씨의 앞으로 꿈은 대학 교수. 대학원까지 진학해 '장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 당사자로 장애인의 권리와 복지를 가르치며 연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중증장애를 안고 있지만 병수씨의 외부 활동은 활발한 편.

지역 장애인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해 평생교육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는 매주 하루씩 천안시영상미디어센터에 나간다. 그곳에서 다른 장애인 여섯 명과 함께 영상물을 만들고 있다. 몇 달 뒤 영상물이 완성되면 중.고교생들의 장애인식개선 교재로 사용된다.

혼자 힘으로는 몸의 자세를 바꿀 수도 없고, 겨우 손가락만을 움직여 컴퓨터를 사용하는 병수씨가 어떻게 외부활동을 하고 영상물도 제작할 수 있을까. '장애인 활동보조지원 사업'덕분이다.

활동보조인 지원사업으로 부담 덜은 가족들

'장애인 활동보조지원 사업'이란 신체적.정신적 이유로 원활한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을 파견해 자립과 사회참여를 돕는 정부 사업이다. 장애 1급의 중증장애인이 대상이다.

활동보조인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목욕도움, 세면도움, 식사도움, 외출시 동행, 배설도움 등 폭 넓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는 중증장애인들은 소득 수준에 따라 매달 2~4만원의 본인부담액을 납부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인 김병수씨는 저소득층인 탓에 본인부담액이 면제된다.

충청남도는 정부의 장애인 활동보조지원 사업 외에 2008년 4월부터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추가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추가지원 사업은 정부 활동보조지원을 받는 장애인 가운데 활동보조인의 돌봄 시간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월 40시간의 활동보조인 인건비를 충남도와 일선 시.군이 분담해 일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병수씨의 경우 정부 활동보조지원 100시간에, 충남도 추가지원 40시간을 합해 매달 총 140시간을 활동보조인이 방문해 원하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천안에는 병수씨처럼 정부 활동보조지원 사업과 더불어 충남도 추가지원 사업까지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이 85명에 이른다.

활동보조인 지원사업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병수씨의 어머니 김영옥씨는 "그동안은 가족들이 모든 책임을 떠맡아 잠시도 곁을 떠나기가 어려웠다"며 "활동보조인이 생긴 뒤로는 안심하고 바깥 일도 처리하는 등 부담을 한결 덜게 됐다"고 말했다.

병수씨도 장애인 권리를 새삼 인식케 됐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가족 아니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내가 필요한 부분을 당당히 얘기하게 됐죠. 무엇보다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리는 것 같아 좋습니다."

활동보조 추가지원 사업, 천안시 도비 바닥나

7월과 8월 무덥기는 매일반. 그러나 김병수씨가 체감하는 기온의 폭은 크다. 천안시가 편성한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추가지원' 사업의 도비 재정이 바닥나 자칫하면 이달 하순부터 사업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추가지원까지 보탠 140시간도 장애인이 필요한 시간보다는 부족합니다. 더 늘려주지는 못해도 추가지원 40시간이 없어지면 공부나 외부 활동 등 생활에 지장이 상당해지죠."

활동보조인이 오지 않는 시간은 고스란히 가족들 몫으로 남는만큼 어머니 김영옥씨의 얼굴에도 근심이 비쳤다.

충청남도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추가지원 사업'의 중단설이 등장한 까닭은 무엇일까. 활동보조인 파견과 관리를 담당하는 민간기관의 관계자는 "8월부터 충남도 활동보조 추가지원 사업이 중단되니 대상자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라고 7월말쯤 천안시에서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우려처럼 활동보조 추가지원 사업은 중단될까. 아직은 '미지수'이다.

천안시 장애인팀 이영준 담당자는 "활동보조 추가지원 사업은 충남도 시책 사업으로 도비 30%, 시비 70%로 예산이 구성된다"며 "도비가 거의 소진돼 8월 사업비가 감당되지 않아 충남도에 예산 증액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1회 추경을 포함해 올해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추가지원 사업비로 시 예산에 편성된 금액은 1억7713만원. 이 가운데 시비가 1억2399만원, 도비가 5314만원이다.

충남도 노인장애인과 관계자는 "천안시의 도비지원 증액 요청을 예산부서에 전달했지만 도 재정여건이 쉽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며 "증액지원의 가부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천안시 이영준 담당자는 "도비 책정이 늦어지면 우선 시비라도 집행해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며 "8월 중순까지는 어떻게 할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성현 진보신당 충남도당 조직부장은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에 경기불황까지 겹쳐 지방정부의 돈 가뭄이 심해지며 일선 현장에서 복지사업의 축소나 중단 등의 문제가 계속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37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활동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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