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픈 곳

 

저는 대학생입니다. 작년 봄 학기에 듣던 수업에 사진작가 이시우씨가 특강을 하러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하신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몸의 중심이 어디라고 생각하나? 심장? 뇌? 나는 우리 몸의 중심은 바로 '아픈 곳'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곳이 아프면 치유될 때까지는 온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지 않나. 마찬가지로 세계의 중심도 '아프고 소외된 곳'이다. 아픔이 있는 곳이야말로 세계의 모순이 집중된 곳이다. 그 문제가 풀릴 때 사회와 세계의 모순이 해결될 것이다."

 

2009년 7월, 우리 사회의 중심은 바로 평택에 있는 '쌍용자동차 공장'입니다.

 

쌍용자동차 도장공장에 공권력 투입을 강행하면 '제2의 용산참사'가 우려된다는 글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려된다'는 표현은 잘못되었습니다. 이미 평택에서는 제2의 용산참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해고노동자 사망, 희망퇴직한 노동자가 절망에 못 이겨 자살, 점거파업 중인 노동자의 아내가 우울증으로 자살… 이런 식으로 쌍용차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목숨을 잃은 사람이 벌써 여섯 명에 이릅니다.

 

30일 현재 쌍용차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옥쇄파업을 시작한 지 70일, 굴뚝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79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찰과 사측의 강제집행으로 공장 안에서 극한대치가 벌어지고 물도, 전기도, 식료품도, 의약품도 끊긴지는 열흘 가량이 되었습니다.

 

요 며칠 새 언론을 통해 전쟁터와 같은 공장 모습이 전해지자, 그렇게 '지금 눈앞에 드러나는 폭력'만이 많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회사도 무책임하고, 노조도 너무 강경하게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일견 중립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쪽도 나쁘고 저쪽도 나쁘니 대화로 풀자'는 입장은 당장 힘과 권력이 너무나 불평등하게 존재하는 가운데, 강한 쪽의 편을 드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싸움에 다 적용할 수 있을 법한 그런 '느슨하고 한가한' 입장으로는 사태의 본질을 볼 수 없습니다. 제대로 된 '해법'을 찾기 위해선 쌍용차 사태라는 이 아픔이 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차근차근 되짚어보아야 합니다.

 

금융자본의 인질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고 싶다!

 

금융이 세계화되는 시대에 경제는 극도로 불안정해집니다. 거품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그 거품이 꺼지고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를 고스란히 감내하며 죽어가야 하는 것은 평범한 노동자들입니다. 위기를 불러온 투기자본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요. 그런 아이러니한 현실을 일컬어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금융투기자본의 인질'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쌍용차 문제는 이 금융세계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04년, 정부와 경영진의 결정으로 중국의 상하이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했을 때, 쌍용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반대를 표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상하이차는 단물만 쏙 빼먹고 도망가버렸습니다. 이른바 '먹튀'자본이었던 것입니다. 곧 회사와 세계경제 모두에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노동자 정리해고'입니다. 쌍용차 사측은 2646명의 대규모 구조조정안을 내놓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자기이익만 챙기고 도망가 버린 상하이차에게 잘못을 물을 방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팔아넘긴 정부와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방도도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일 해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살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데도 이들이 "이건 너무 부당하다!"고 외치며 싸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경제가 어렵고 회사가 어려우니 노동자 해고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믿음'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는 왜 살리고, 회사는 왜 살려야 하는 걸까요?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지켜지고 나아지기 위해서 살리는 거 아닌가요? 경제와 회사를 살린다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쫓아내 실업자로 만들고, 수많은 서민들을 집에서 쫓아내 철거민으로 만든다면 그건 무언가 잘못된 겁니다. 더군다나 경제위기가 벌어진 원인이 무분별한 투기를 일삼은 금융자본에게 있는데, 그 거대 자본을 지닌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부자가 되어가고 있다면 더 그렇겠지요.

 

정리해고에 맞서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싸움은 "우리 모두가 금융자본의 인질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고, "더 이상 금융자본의 인질로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용산 유가족들과 곳곳의 철거민들이, 평택의 농민들의, 대학생들이, 평택 쌍용차 공장 앞으로 달려가서 연대하는 것입니다.

 

쌍용차의 대량해고를 막아내지 않는다면 위기를 명분으로 한 해고는 전국 곳곳으로 확산될 것이며, 우리 사회는 노동자가 일회용품처럼 쓰이다 곧 버려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될 것임을(이미 많이 그렇게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알고 있기에 그것을 막기 위해 함께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몇몇 언론은 그렇게 연대하는 이들을 가리켜 '외부세력'이라 말하지만 대체 누가 외부세력입니까? 쌍용차 노동자들의 문제가 바로 우리 모두의 문제인데 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인질이 되어' 이 불안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인걸요.

 

 

경제위기,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경제위기라는 시기는, 기존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자, 이제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하는 물음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그때도 요즘처럼 '위기 극복'이란 이름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위기가 극복되었을까요? 그렇다고 말하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하는 IMF 이후 10여 년 동안, 한국사회는 비정규직의 바다, 실업자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래 경제가 어렵다는데 해고는 어쩔 수 없지'하고 타협하고 받아들인 결과, 우리는 오늘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항상 불안한 사회에 살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만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자기계발'을 해왔지요. 비정규직이나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요. 그러나 다시 한 번 위기가 왔고, 이제는 커다란 공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던 노동자들마저 수천 명이 잘려나가게 되었습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싸움을 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에 1000여 명씩 소리 없이 잘려나가고 있는데 연봉을 몇 천 받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싸우는 건 이기적'이라느니 하는 노동부 장관의 말은, 정말이지 괴상한 접근법입니다. 오히려 '이제는 심지어 정규직 노동자들까지도 위협받는구나! 여기서 함께 막아내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의 미래는 없구나!'하는 위기감을 공유해야 합니다.

 

이번 위기는 더 크고, 더 광범위하고, 많은 이들이 오래 지속되리라 예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라도 다른 사회를 상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위기 극복'이란 것을 특정 경제지표가 올라갔는지 아닌지의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국민들의 삶이 정말 나아졌는지를 따져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보통사람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정부의 행태에, 2008년-2009년 한국엔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이 오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미디어법이 철회되고, 상식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민주주의'란 그것을 초과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이들의 삶이 지켜지는 사회', '금융투기자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모으고 얘기를 나누는 과정이 바로,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민주주의입니다.

 

폭주하는 금융자본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가 당장 월스트리트의 증권거래소를 파괴하거나, 금융계의 큰 손들을 파산시킬 거대한 사기극을 구상하거나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고 파괴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공간들, 이를테면 지금의 쌍용자동차 파업 현장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함께하는 것,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널리 알리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연대가, 우리의 무기입니다

 

파업이 시작되고 나서, 평택 쌍용차 공장에 몇 번 다녀왔습니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요즘엔 그곳에 다녀오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어제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수천 명의 노동자와 시민사회·대학생 단체들이 모여 공장을 향해 행진했지만, 결국 공장까지 가지도 못했고, 안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물과 먹을거리를 전달하지도 못했으니까요.

 

행진하는 사람들 바로 위로 가까이 다가온 헬기가 일으키는 바람과 굉음 덕분에 모두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서로의 손만 꼭 붙잡고 있어야 했고, 그 헬기에 타고 있는 경찰은 최루액이 든 비닐봉지를 던져대기 때문에 그걸 피하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헬기가 잠시 멀리 떠나갔을 때 정신을 차려보면 온 몸이 흙먼지투성이가 되어있었습니다. 항의를 할 수도 없고, 맞붙어 싸울 수도 없습니다. 물대포를 앞세운 전경들에게 숨이 차게 쫓기면서도 저들은 저렇게 강한데 우리는 왜 이렇게 무력할까. 분한 마음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에겐 헬기도 없고(정말 간절합니다. 헬기를 띄워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물과 음식과 의약품을 전달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악당을 단숨에 처치할 대단한 능력도 없습니다(하다못해 장풍이라도 쏠 줄 안다면 참 좋을 텐데요. 하도 막막하니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하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 무력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라고 냉소하고, 우리 모두가 외면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무력해지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쌍용차 노동자들의 싸움이 정당하다고, 평택에서 달려가서, 그리고 내가 사는 곳 곳곳에서 외치는 일입니다. 작지만 중요한 일입니다. 미디어악법도 통과되었다는데, 주류언론이 못 한다면 앞으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자가 되어서 더 많이 진실을 알려야 할 거 아녜요. 한 사람이라도 더 진실을 알았으면 좋겠고, 한 사람이라도 더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삶을 지키고,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그저 여럿이 함께 힘을 모으는 것, 그것밖에는 없었고, 지금도 없는가 봅니다.

 

함께합시다. 작은 것부터. 그리고,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이 자꾸만 '산자(해고되지 않은 노동자)'와 '죽은 자(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를 나누고, 그들 간의 싸움으로 몰아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파업 중인 노동자들은 '네가 죽고 내가 살자'고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너를 밟아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논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함께 살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타인의 해고를 외면한다면, 한 번 피 맛을 본 그 해고라는 칼날이 곳곳의 힘없는 노동자들의 삶을, 다시 당신의 삶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이 '허무맹랑한 협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번 주 내에, 늦어도 8월 초 중으로 쌍용차 문제는 끝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어떤 결말이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요. 많은 언론은 쌍용차 문제의 결말이 '평화 협상 타결'이 될거냐 '공권력 투입'이 될거냐 하는 식으로 쓰고 있네요. 저는 더 중요한 논점은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 대화이든 폭력진압이든 여기서 파업이 패배로 끝난다면 매한가지 아닌가요? 결말을 선택해야 한다면 '정리해고를 막아내고 승리하느냐', '그렇지 못하고 타협하고 물러서거나 진압당하거나 하여 패배하느냐' 둘 중 하나가 되겠지요.

 

쌍용차 정리해고는 꼭 막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건 노동조합의 폭력투쟁이나 시위대의 물리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경찰과 회사는 너무나 강하니까요.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 승리는 '쌍용차 노동자 정리해고는 말도 안 된다!'라는 전사회적인 여론 속에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사회의 가장 '아픈 모순'이 해결되는 것은 그렇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을 하고 연대를 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아고라에 올렸습니다.


태그:#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연대, #쌍용차, #점거파업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