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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하다는 말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싶다. '산 자(정리해고 대상 제외된 자)'였던 남편은 열심히 함께 땀흘리던 동료들이 억울하게 일터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남편은 궁지로 몰린 동료들의 옆자리에 섰다. 걱정하는 아내에게 큰 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이 60일간 투쟁을 하면서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노조'로 매도당하고 있어도, 그냥 모른 척 하면 아무 일도 없을 남편이 몇 달째 임금이 밀리는 와중에 동료들과 '함께' 살겠다는 그 진심을 누구보다 그의 아내는 알고 있었다. 아내는 동료들의 억울함을 눈감고 지켜볼 수 없는 남편을 믿었다. 집으로 소환장이 와도, 손해배상 청구 서류가 와도, 아내는 '안전하게만 돌아와'라고 했다.

 

하지만, 도대체 숨구멍이 트이지 않고, 몰아세워진 모퉁이에 새 길이 세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회사 파산신청을 해야 할 거 같단 얘기가 사측에서 흘러나오고,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현실을 방기하며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다가 공권력 투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그 동료들은 이게 답이 아니지 않냐며, 우리에게도 쌍용차는 지켜야 할 내 일터라고, 함께 살리자고 울부짖었지만 그 외침조차 전경들의 구호소리와 방패 소리에 으스러졌다.

 

사측은 모든 대화를 끊고 공권력과 보수언론을 앞세워 '노조 옥죄기'에 나섰고, 사측 직원이 아내를 찾아와 '계속 남편이 평택공장에 남아 있으면, 정말로 손해배상청구로 집도 잃고 감옥도 가고 재산도 빼앗기고 회사도 다닐 수 없을 것'이라고 인심써서 살짝 알려주듯 말해주었다. 그렇게 법원의 강제집행이 진행되려던 어제, 그의 아내는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맸다. 4일 전쯤, 아내에게 처음으로 '거기서 나오라'는 눈물섞인 호소를 들어야 했다며, 그녀의 남편은 좀 더 아내에게 안심되는 말을 해주지 못했던 본인을 자책하며 머리를 숙였다.

 

노조 간부 아내 자살 소식 후 진행된 기자회견

 

아내를 잃고 고개숙인 간부의 눈물이 괴롭다. '착한' 사람이라 비호해주고픈 그가 '과격한' 세력으로 오해받고 있는 현실이 불편하다. 그렇게 만든 사측과 보수언론도 너무도 기만적이다.

 

사측은 과연 회사를 살릴 맘이 있는 걸까? 파산신청을 해도 당장 손해볼 건 경영진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될 대로 되라일지도 모르겠다. 노동자들의 삶도, 소비자들의 불안함도,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있지 않은 이상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 소비자들의 신뢰문제도 일부 '몰지각하고 이기적'인 노조의 폭력적 행동이란 이미지 속에 쳐넣으면 그만이겠지. 그들의 기만에 속이 끓는다.

 

어제 평택공장 앞에서 진행되었던 기자회견 얘길 듣고선 더욱 그러하다. 심리적 압박감에 몇 사람이 심장발작으로 죽어갔음에도, 기어코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에도 사측은 요지부동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뚝심있단 소릴 듣지!' 하며 신념의 강자란 타이틀을 얻고 싶은가보다.

 

노조 간부 아내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기자회견이 진행됐었다. 여기서 사측은 본인이야 '뚝심의 경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몰라도, 내 눈엔 '내 기만의 끝'을 보여주겠단 포부로 보일 뿐이다. 기자회견을 방해하기 위해 사측은 늘상 스피커를 통해 크게 노래를 틀어놓는다. 어제 기자회견도 그 적용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더욱이나 그 선곡이 아주 기가 막혔다.

 

'오 필승 코리아'

 

'승리'가 가당키나 한 단어인가

 

대체 누굴 향해 부르는 필승 코리아인가. 필승 사측인가? 필승 정부인가? 필패 노조를 바라는 건가? 노조 간부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직후, 대체 '승리'가 가당키나 한 단어였나? 그렇게 인간적 도리를 할 줄도 모르는 것이 우리나라 중기업 쌍용차의 현주소인가? 갑자기 웃음이 난다. 아니지 않냐는 거였는데, 최소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양심과 지켜야 할 선, 그걸 모르는 것이 쌍용차의 현주소가 맞는 거 같아서 말이다.

 

61일간의 그들 싸움을 조금만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든 알 거다. 대화를 간절히 원했던 측이 어느 쪽이었는지 말이다. 사측과 정부는 대화를 기피하며 언론공세로 이번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회사를 인수해 기술력만 빼먹고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차익을 남겨 떠난 상하이자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노조 쪽은 공적자금 투입요구만을 일방적으로 했던 건 아니었다. 대화를 통한 협상이 가능함을 계속 공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뒷짐진 손은 풀리지 않고, 먼산을 응시하는 눈은 눈 앞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로 돌려지지 않았다. 경찰력과 보수언론을 업고 이번 파업을 해결하려는 '강한' 의자만이 읽힐 뿐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교대근무, 무급휴가, 분사안 등 다양한 절충안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가. 사측이 지는 싸움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사측이 지는 것이 노동자들이 이기는 길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쌍용차 노조가 바라는 것도 그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상생의 길을 트자는 것, 서로의 노력으로 동반자살, 공멸의 길을 막자는 것.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더 이상 이 상황을 버텨내기엔 노조원들과 그 가족들의 심리적 압박감의 정도가 감히 상상 초월이지 않나. 더 파업이 이어질수록 쌍용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바닥을 칠 것도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맨날 '노동 유연성'만 읊어대지 말고 '사측 유연성'을 보여달라. '정부의 유연한 대처'를 보여달라. 노조에게 유연해지라 얘기할 수 있을만큼 유연함의 일가견이 있는지 증명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누구도 지지 않는, 노조에게도, 사측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정부에게도 필승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정말 상하이자본에 대한 책임론 때문에 부담스러운 거라면 한마디 하겠다. 영국의 10대 잡지 중 하나이자, 전세계 엄청난 인터넷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가디언'지가 이렇게 독자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물론 단 한 가지는 아니겠지만, 중요한 한 요소는 '솔직함'이다. 오보를 내보낸 언론이 그 오보를 스스로 인정, 정정하는 것은 참 보기 드문 일이다. 하지만, 가디언은 오보를 냈을 때 바로 그 다음 날, 첫 표지에 "we are sorry"라고 찍었다.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를 했을 때엔, 잘못을 했을 때엔, 이를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기대할 뿐이다. 그래야 의도가 아니었음을 헤아리고, 진심을 서로 믿어줄 수 있는 거다. 대통령에게 수많은 사과요구들이 쌓여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는 모습이 참 어리석어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부디 잘 판단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http://our-dream.tistory.com/ 중복게재


태그:#쌍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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