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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오지호 화백 (1905~1982). 한국을 대표하고 문화수도 광주에 서양화가 중 큰 인물이다. 그의 아들 승우 승윤 역시 그림을 그리는 화백으로 지금은 손자도 그림을 그린다 3대 화가 집안이다.

하지만 오화백을 기념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알바 볼수 있는 공간이 없다. 있긴 하지만 규모가 작아 작품과 사진을 전시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다.

광주는 지금 문화수도 광주를 말하면서 문화전당 공사가 한창이다. 이 와중에 굳이 오지호 화백의 이름을 꺼내는 이유가 거기 있다. 지산2동 에 자리한 오지호 화백의 가옥 안에는 1954년 부터 1982년까지 오 화백이 조선 대학교에 출강하면서 그림을 그린 화실이 있다.

지금 한창 화실 공사가 진행 중인데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미 세상을 떠난 오 화백이 벌떡 일어나 호통을 칠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한국 서양화단에 끼진 영향력이 크지만 그를 기념하고 그의 발자취를 사람들이 밟아 볼 수 있는 공간은 전혀 마련되지 못했다.

특히나 그가 조선대학교 미술학과를 설립하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누구 하나 그가 살았던 가옥을 찾는 이가 없다. 그나마 문화수도 관광 벨트에 가옥이 포함되면서 가옥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헌데 가옥은 시지정 기념물 6호로 지정돼 광주광역시에서 관리한다. 기념관은 이미  마련돼 있어야하고 남녀 노소 쉽게 찾아 오 화백의 작품과 당시에 사진들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오 화백을 기념하는 사생대회나  오지호 화백이 가고자 하는 길을 따라서 한번 걸어 볼 수 있는 그런 문화 마당이 이미 마련되어 있어야한다.

하지만 작은 기념관 하나 있긴 하지만 차남인 오승윤 화백의 그림과 오지호 화백의 사진들이 먼지 속에 쌓여 언제가 될지 모르는 전시 공간을 마냥 기다리고 있다. 문화수도 광주에 가옥만 포함 되었지 화백의 미술세계 와 그림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이 없어서 말뿐인 문화수도 라는 말이 딱이다.

아직 문화수도 공사가 진행 중이므로 가옥을 기점으로 기념관을 짓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기념관 역시 단순히 전시 공간이 아닌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과 후손들이 가옥과 함께 살람살이가 가능한 공간과 주말이면 어린들에 체험 학습장이 돼야한다.

오지호 화백이 그림 세계가 아이들에게도 십게 다가갈수 있는 작품 세계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사생대회' 라든지 '오지호 화백의 그림 따라하기' 이런 부분이 가능하다.

가옥을 지키고 있는 후손들이 기념관을 통해 수익 창출이 이루어져 후손에 살림살이에도
도움이 돼야 문화재를 지키고 가꾸는데 자부심과 긍지가 살아난다. 단순히 기념관으로써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리는 수준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는 조건이 붙을 수 있다. 미술학 교수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 특히나 서양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미술에 관심이 깊은 사람들이 기념관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필수 답사 코스로 지정돼 어떻게 오 화백이 삶을 살았는지 그의 삶의 철학은 어떠했는지
알아보는 학술대회로 이어져야한다. 더이상 그의 미술 세계를 먼지 속에 묻어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유럽에 대형 미술관과 유명한 화가를 기념하는 장소를 생각하면 한국에 서양화를 이끈 서양화가 가옥과 화실 그리고 기념관 하나 없이 먼지 속에 묻힌 모습을 비교해 보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하고 기념관 건립이 시급한 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듯 하다.


태그:#뭉화수도 , #오지호 가옥 , #오지호 화백 ,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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