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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조문을 마친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봉화산 중턱 부엉이 바위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조문을 마친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봉화산 중턱 부엉이 바위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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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세상에……. 즈기 그 바위가?"

25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앞, 부산에서 왔다는 김아무개(45)씨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였다. 붉게 충혈된 그의 두 눈은 사저 뒤편으로 보이는 봉화산 중턱 부엉이 바위를 향해 있었다.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곳이다.

김씨 외에도 사저 앞에는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친 시민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그렇다고 조문객들이 봉화산을 오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경찰은 사저 옆을 지나 봉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폴리스라인으로 막아 놨다. 부엉이 바위 아래 40여 미터 지점에는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현장 증거를 나타내는 노란 깃발만 꽂혀 있다.

노 전 대통령 방에서 창문 열면 부엉이 바위가 바로 보여

하지만 조문객들은 그냥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머릿속에 오래오래 노 전 대통령의 흔적을 남기려는 듯 한참 동안 부엉이 바위를 바라봤다. 통곡하는 이는 없지만, 많은 시민들이 김씨처럼 북받치는 울음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또 어떤 시민은 핸드폰 카메라에 부엉이 바위를 담았고, 또 어떤 시민은 부엉이 바위를 배경으로 가족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느새 이곳은 노 전 대통령의 조문객들에게 반드시 들려야 할 '필수 코스'가 돼 버렸다. 한 누리꾼은 "국가적 슬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라고 했다.

부엉이 바위를 바라보며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은 조문객만이 아니다. 조문객은 또 떠난다. 그러나 그는 평생 떠나지 못하고, 부엉이 바위를 매일같이 지켜봐야 한다. 권양숙 여사 얘기다.

분향소에서 상주 역할을 하고 있는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은 "사저에 노 전 대통령 내외가 기거하던 방에서 창문을 열면 부엉이 바위가 바로 보인다고 한다"며 "측근들은 권양숙 여사가 그 방에서 그 바위가 보이기 때문에 더 괴로워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엉이 바위는 노 전 대통령의 유년 시절 추억과 꿈이 서려 있는 곳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출간된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유년 시절의 내 기억에서 봉화산과 자왕골은 빼놓을 수 없는 무대다. 나는 그곳에서 칡을 캐고, 진달래도 따고, 바위를 타기도 했다. 풀 먹이러 소를 끌고 나오는 곳도 항상 그 골짜기였다"(167쪽)라고 썼다.

대통령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온 노 전 대통령에게 지난 1년여간 부엉이 바위는 꿈과 추억 대신 위안의 대상이었으리라.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그 부엉이 바위에서 자신의 몸과 함께 생의 모든 고통을 훌훌 던져버렸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이 없는 공간에서 권양숙 여사 홀로 부엉이 바위를 바라봐야 한다. 사저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마치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다.

김씨는 "채소장수 하던 어머니와 어렸을 때 기도(절)하던 바위가 그라드라. 그 바위에서 돌아가신기라"며 "(자살이) '오래된 생각이었다'는 마지막 말이 방에서 창문 열고 저 부엉이 바위를 보면서 생각했던 거 아니겠나"라고 울먹였다.

충남 부여에 있는 성당에서 근무한다는 한 신부는 "권 여사로서는 매일 창문을 열고 저 현장을 본다면 엄청난 삶의 고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라며 "(남편의) 뒤를 따라가고 싶다는 심정이 아니겠나. 그러나 그럴수록 그 창문을 열고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가를 내고 왔다는 황보영(경기 양평)씨는 "권 여사의 심정을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눈앞이 캄캄할 텐데, 어쩌면 좋으냐"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 같은 사람도 (노 전 대통령) 이름만 나오면 가슴부터 울렁일 정도인데, (권 여사는) 얼마나 비통하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부산에서 온 이용희(57)씨는 "(창문을 통해 부엉이 바위를 보는) 권 여사의 마음이 찢어질 것"이라며 "옛날 생각도 날 것이고, 남편이 떨어지는 그 순간이 눈에 그려져서……. 얼마나 아프겠느냐"고 말했다.

'탈진' 권 여사, "다 비우고 편하게 가시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25일 새벽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거행되는 입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빈소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25일 새벽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거행되는 입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빈소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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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권양숙 여사는 이날 새벽 노 전 대통령의 입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슬픔을 애써 참는 듯 꾹 닫은 입술이 그의 슬픔을 대신하고 있었다. 권 여사는 지난 23일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확인하고서 실신한 뒤로, 식사는 물론 물조차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탈진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사저에서 봉하마을회관으로 이동하던 중, 인근에 있던 조문객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여사님"이라고 절규하자, 권 여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권 여사는 연신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입관식이 열리는 봉하마을회관으로 들어갔다.

입관식에 참여한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주지인 정우 스님은 "권 여사가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 남기신 것처럼 '다 비우고 편하게 가시라'고 마지막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앞서 권 여사는 지난 24일 조문객들에게 "36년간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갈 수 있느냐"며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하기도 했다.


태그:#노무현 서거, #권양숙 여사, #부엉이 바위, #투신, #합동분향소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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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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